엊그제가 처서였다고 한다. 두 번이나 초대 없이 찾아온 바이러스 손님 덕에 갇혀 있느라 이를 체감하진 못했다. 그런데 확실히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덥지 않은 것이 여름 볕이 어느 정도 꺾인 듯하다.
내 여름은 어땠나. 6월은 기말고사와 그 직후 보상심리로 인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놀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쌓인 고민거리에 만성 두통이 매일 같이 찾아와 들고 다니는 가방마다 두통약을 구비하고 다녔다.
시험 기간은 정말 끔찍했다.
7월엔 주말 풀타임 알바와 과외를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한 명만 하기로 한 것인데 어머님들의 입소문을 타 세 명으로 불어나 내 시간이 부족해 애를 좀 먹었다. 사실 정량적으로 따지고 보면 자유시간은 많았지만 나는 맘 편히 누워 있을 시간이 더 필요했다고.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친구들과 에버랜드도 가고, 술도 많이 마시고, 즉흥으로 을왕리도 가고 놀 건 다 놀았다. 방학 목표가 돈 벌기, 많이 놀기, +많은 자기개발 .. (안 지켰다) 이었는데 그래도 처음 두 개는 잘 해낸 것 같다. 10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지만 두 마리 정도는 잡은 것으로 만족. 아쉬움이 남지만 이미 지나간 걸 어쩌나. 아마 돌아가도 똑같을 것이다. 아 그리고 입학처 일로 전국을 쏘다니며 고등학생 대상으로 멘토링도 했다.
7월 중순쯤인가 갑자기 교환 학생을 가고 싶어 져서 충동적으로 토플 시험을 결제한 뒤 (환율 1310원일 때, 1340 뚫기 전에 결제한 걸 감사해야 하나 싶다 이제) 시험 하루 전에 시험 형식을 익히고 바로 다음 날 시험장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 토플과 죽고 못 사는 사이였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시험을 친 것이지만 스피킹과 라이팅은 크게 망쳤다. (점수를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알려주자 엄청난 놀림을 받았다--트리오로 매일 몰려다니던 제리 리오가 줌 화상통화에서 고소하게도 비웃어 주었다. 덕분에 영어 공부가 하고 싶더라.)
8월에는 많이 아팠다. 3월부터 7월까지 주 3~6회 정도 술을 마신 것이 그 원인이었다. 산부인과, 내과, 약사 선생님들께 정말 많이 혼났다. 내가 느끼기에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약과 죽을 열심히 먹으면서 회복에 집중했다. 그렇게 회복 좀 했다 싶더니 코로나 확진이 된... 비운의 면역력
8월은 대체로 안정적이었다. 친오빠 생일도 축하해주고, 과외도 학생들과 친해져서 재밌게 다닐 수 있었고, 주말 알바 사람들과도 친해져서 수다 떠는 재미에 출근할 맛이 났다. 친구들과 여전히 재밌게 놀러 다녔고, 몸이 회복할 기미가 보이자마자 술도 다시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술자리 vs 술 하면 이제 동등한 수준으로 좋다)
브런치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도 이번 달부터이다. 너무 잘한 일 같다. 내가 글을 적는 입장이 되니 다른 친구들의 글도 (나름) 열심히 보기 시작했는데, 친한 친구의 블로그 글을 캡처한 것을 여기에 올려볼까 한다.
마지막 두 줄은 내가 적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SY씨와 밤새 이런 고민을 도란도란 나누며 각자 생각을 정립했던 기억이 난다. 스무 살과 스물한 살의 플럼의 성장을 지켜보고 거름 역할을 해준 SY에게 너무 고맙다. 그립기도 하다. 더 이상 기숙사 룸메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밤들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말이다. 사람은 참 별 볼 일이 없다.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안쓰럽다. 이 글 역시 그런 목적이지만. 어쩔 수 없으니 순응하고 내 스물둘 여름의 간략한 기록은 여기서 마친다.
가을 기록은 9월 그리고 10월을 보낸 뒤 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