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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뱅크 Jul 15. 2024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이 있다면

금융생활 가이드


20년 동안 아이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세상이 있습니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그리는 미래 지구입니다. 인류는 원인불명의 증상 때문에 불임 상태가 됐는데요. 새 생명이 태어나지 않은 이후로 집단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다가올 날을 위한 연구도 투자도 하지 않은 채, 방화와 약탈을 일삼죠. ‘어차피 우리 세대가 이 세계의 마지막’이라는 인식이 모두를 무책임하게 만든 겁니다. 



공상 과학이 현실이 되었다


2006년에 개봉한 <칠드런 오브 맨>은 SF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부각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출산율 0명이라는 설정은 그야말로 ‘공상 과학’에 가까웠죠. 하지만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지금은 영화를 보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주요 국가의 출산율이 극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이 영화가 제작된 영국의 출산율은 개봉 당시인 2006년엔 1.8명을 넘었습니다. 2010년 이후 점점 떨어지며 2021년엔 1.53명을 기록했죠. OECD 평균인 1.58명보다 낮은 수치예요. 


한국은 더 심각합니다. 2024년 1분기 합계출산율 0.76명. 1분기 기준 사상 최저치인데요. 보통 1분기 출산이 1년 중 가장 많은 것을 고려하면 올해 연간 합계출산율은 0.6명대로 예상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죠. 



정말 경제에 치명적일까


출산율이 0.6명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요? 여성 한 명이 가임 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가 0.6명이라는 의미입니다. 100명의 여성이 있다면 60명의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이죠. 남녀의 비가 정확히 1:1이라고 치면 200명의 남녀가 60명의 아이를 낳는 건데요.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대체 출산율’은 2.1명입니다. 이와 비교하면 실제 출산율은 3분의 1 수준이에요. 인구가 빠르게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칠드런 오브 맨>에서는 출산율 감소를 재앙으로 묘사합니다. 실제로 여러 수치가 출산율 감소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어요. 통계청의 ‘2022~2072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72년 한국의 인구는 1977년 수준인 3,622만 명으로 돌아갑니다. 아울러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 1명이 노인을 1명 넘게 부양하게 되죠.


이런 상황 탓에 미래에는 젊은이의 허리가 ‘절단 나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건데요. 한국은행은 출산율과 생산성에 극적 변화가 없다면 2040년에는 경제성장률 또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까지 내놨습니다. 최근 들어 정부에서 출산율 제고 정책을 쏟아내는 이유죠.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


영화는 세계인이 왜 불임이 됐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미래의 세상이 얼마나 살기 팍팍한 곳인지 보여줄 뿐입니다. 인간이 귀한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계급을 나누는 데 열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난민들을 수용소에 구금하고, 고령자에게 자살하는 약을 배급하기도 하죠. 임신이 가능해도 아이 낳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세상이에요.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서 현실이 망가진 걸까요, 아니면 현실이 망가져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걸까요. 명쾌한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을 보며 우리는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산 지원책만큼 중요한 건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죠. 


글 박창영 
매일경제 기자. 문화부를 비롯해 컨슈머마켓부, 사회부, 산업부, 증권부 등을 거쳤다. 주말마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OTT 영화 리뷰를 연재한다. 저서로는 ‘씨네프레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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