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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재 May 02. 2022

내 친애하는 반려 후라이팬

반려(伴侶) : 짝이 되는 동무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반려'의 뜻이다. 과거에는 주로 배우자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요즘 들어서는 반려동물, 반려 식물이라는 말도 자주 들릴 만큼 인생의 동반자라는 의미로 폭넓게 활용된다. 그렇다면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에게는 반려 프라이팬이 있노라고.


  몇 해 전 결혼 준비를 하던 무렵 이런저런 주방용품을 잘 알지도 못하고 사들였다. 그릇 세트, 냄비 세트, 전기밥솥, 압력솥, 수저 세트 등등. 그중에는 프라이팬도 있었는데 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나는 가장 많이 들어봤단 이유로 코팅 프라이팬을 고민 없이 골랐던 것 같다. 그리하야 내 첫 프라이팬은 국산 브랜드 코팅 프라이팬 중, 소, 그리고 궁중 팬 이렇게 한 세트로 결정됐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집에 살면서 준비했던 그 주방용품들을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리바리한 상태로 샀던 것에 비해 다행히 거의 다 쓸만했다. 근데 하나, 코팅 프라이팬 삼총사를 볼 때마다 마음속 깊숙이에서 한줄기 이유 모를 의구심이 피어오르곤 했다. 


  내 첫 프라이팬의 겉면은 짙은 파란색이었고 반드르하게 코팅된 안쪽은 밝은 회색으로 두 색의 조화가 제법 산뜻하니 신혼 주방에 어울렸다. 몸체에는 달린 검은 손잡이 역시 플라스틱 소재라서 맨손으로 잡아도 뜨겁지 않았으며, 가스 불과 인덕션 둘 다 사용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을 쓸 때마다 내 마음은 썩 편안하지 않았다.


"프라이팬은 비싼 거 쓸 필요 없이 싼 거 사서 쓰다가 자주 바꾸는 게 최고야."


  사람들이 자주 하는 이 말의 행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코팅 프라이팬의 최대 약점은 짧은 수명이다. 코팅이 벗겨지면 유해 성분이 나와서 더는 사용할 수 없기에 금속으로 된 조리 도구로 바닥을 긁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조심조심 썼더라도 1년~1년 반이 지나면 버려야 한단다. 그런데도 코팅 프라이팬이 많은 주부의 둘도 없는 친구인 까닭은 단연 그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 때문일 것이다. 코팅 프라이팬은 머리 아플 일이 없다. 무엇을 굽든 달라붙지 않으며 지루하게 예열할 필요도 없고 설거지도 다른 그릇과 똑같이 쉽게 할 수 있다. 게다가 겨우 만 원짜리 한 장 정도면 산뜻하게 새 프라이팬을 들일 수 있으니 기분 전환에도 좋다.


  다들 이렇게 하는 걸 알고 있기에 나도 덩달아 코팅 프라이팬을 사서 쓰고 있긴 하지만 머릿속엔 계속 물음표가 떠올랐더랬다.


왜 코팅 프라이팬엔 음식이 달라붙지 않을까?     
코팅이 벗겨지기 전에는 유해 물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할까?     
이걸 버릴 땐 재활용품으로 버려도 되나? 
(아니요, 코팅 프라이팬은 복합 소재라서 재활용 안 되고 일반 쓰레기라서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려야 해요.)     
왜 내가 부친 김치부침개는 맛이 없나? 
(이때는 제 요리 실력 부족이라고만 생각했었지요.)


  그런 연유로 끝까지 코팅 프라이팬에는 정을 못 주고 줄곧 데면데면하게 대하다 일 년이 지나고 거의 이년을 바라보던 어느 날이었다.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 버렸다. 비록 예뻐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 손을 떠나면 썩지 않을 일반 쓰레기가 될 그것의 운명을 알았기에 측은한 마음이 들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미련하게 붙들고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지난 밤 설거지하고 마른 그릇을 정리해서 넣던 중 프라이팬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손가락으로 팬 바닥을 쑥 훑자 얇은 잠자리 날개 같기도 하고 양파 껍질인 것 같기도 한 질감의 무언가가 떨어져 나왔다. 말로만 들었던 코팅 벗겨짐을 목격한 것이다. 벗겨낸 얇은 막을 두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파르르 바스러지며 가루가 되었다. 오,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나, 언제부터 이런 걸 먹고 있었던 걸까?


  알고 있었다. 내 잘못이 컸다. 코팅 프라이팬의 짧은 수명을 알고 있었음에도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걸 버리고 새 코팅 프라이팬을 사고, 그것을 또 버리고 또 새로 사고.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런 짓을 몇 번을 반복해야 하는 건지 가늠도 안 된다. 요즘은 백세 시대라던데 앞으로 몇십 번이나 이런 찝찝한 이별을 하고 싶지 않았다. 뜨겁게 달구고 볶고 젓는 과정에서 부지불식간 이런 바스락거리는 것이 녹아 나올까 봐 불안했고 재활용도 되지 않는 이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힘겹게 욱여넣어서 버리는 일도 이번 한 번이면 족하다. 그래서 나는 코팅 프라이팬과의 영원한 이별을 위해 프라이팬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프라이팬은 크게 세 종류가 있다.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코팅 프라이팬은 싸고 가볍고 달라붙지 않는다. 대신 코팅이 벗겨지면 더는 쓸 수 없기에 수명이 짧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스텐 프라이팬은 유해 물질이 나오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으며 설거지도 까다롭지 않다. 반면 만드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들고 사용하기 전 3~4분가량의 까다로운 예열 과정이 필수다. 무쇠로 만든 무쇠 주물 프라이팬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가마솥으로 밥을 짓고 그 뚜껑을 뒤집어서 전도 부쳐 먹었다고 하던데 바로 그걸 계승한 게 무쇠 주물 프라이팬이다. 무쇠 팬으로 한 요리를 먹으면 자연스레 몸속 철분 보충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몸체와 손잡이까지 무쇠라는 단일 성분이기 때문에 버리면 고철로 버리면 재활용될 수 있다. 또한 무쇠의 열전도율이 높아서 바삭바삭한 부침개가 가능하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헉 소리 나게 무겁다는 것과 (솥뚜껑을 한 손으로 든다고 상상해보라!) 독특한 세척 과정이다.


  여기까지 듣고, '아 안 되겠다. 나는 스텐이나 주물은 못 쓰겠다. 코팅 팬 못 잃어' 하는 분들에게는 진지하게 영화 <다크 워터스>를 권한다. <헐크>와 <비긴 어게인>으로 유명한 배우 마크 러팔로 주연의 이 영화는 '테플론'이라는 코팅제를 판매한 미국의 대형 화학 기업 듀폰과 그 달라붙지 않는 편리함에 중독된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난 충격적인 실화를 따라간다.


  듀폰사(社)는 1938년 불소와 탄소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퍼플루오로 옥타노인 애시드(PFOA)를 개발한다. 그 PFOA를 활용해서 만든 불소 탄화수지에 '테플론'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판매했는데, 달라붙지 않는 비 점착성이 특징이었다. 그레고아르라는 사람이 테플론을 프라이팬에 코팅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의 아이디어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테플론 코팅이 된 프라이팬은 금세 모든 주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날개 돋친 듯 판매됐다. 유명 브랜드 '테팔'의 시작이다. 테팔이라는 이름도 Tef(테플론)+Al(알루미늄)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테플론 속 PFOA가 엄청난 유독 물질이며 발암 물질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뒤늦게 밝혀졌는데 그땐 이미 공장 주변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근처 하천을 식수로 마신 주민들이 질병에 걸리고 기형아가 출생한 후였다. 영화에서는 마크 러팔로가 주인공 변호사로 나와 거대 기업과의 소송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를 보고 난 뒷맛이 개운치 않은 건 이것이 실화를 기반으로 한 내용이며 우리도 그동안 많은 적든 코팅 프라이팬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살았기 때문일 거다. 그래도 다행히 듀폰사를 상대로 피해자들이 낸 소송은 결국 승리했으며 그 후로는 테플론을 제조할 때 PROA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판매하는 코팅 프라이팬에는 PROA가 없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그래도 과연 안전할까? 유독 물질 PROA가 빠졌지만, 여전히 코팅 프라이팬의 원리는 테플론이라는 화학물질이 얇게 한 겹 입혀진 것이다. 그게 과연 인체에 유해한지 무해한지 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여기까지가 코팅 프라이팬을 쓰는 이라면 알고는 있어야 할 내용이다.


  코팅 팬에 결별을 고하고 고심 끝에 내가 선택한 건 무쇠 팬이었다. 무겁다는 건 팔 힘을 기르거나 두 손으로 들면 될 것이고 복잡하다는 설거지 과정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 같았다. 조리 과정에서 저절로 철분이 더해진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끝내주게 바삭바삭한 부침개가 가능하다는 후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만난 내 첫 무쇠 프라이팬은 미국산 '롯지'라는 브랜드의 10인치 팬이었는데 진한 검은색이었으며 그 자태는 투박함과 시크함을 두루 갖췄다. 3만 원 정도의 가격은 코팅 팬에 비하면 비쌌지만,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해볼 만한 투자였다. 다만 실제로 들어보니 진짜 헉 소리 날만큼 무거웠다. 매력적인 생김새만 보고 도전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이지. 얍, 하고 속으로 기합 한 번 넣었다.


  그러나 첫 일 주일은 그 기합 소리가 도로 쏙 들어갈 만큼 힘들었다. 잘 길들여진 무쇠 팬은 음식이 달라붙지 않는다던데 도대체 '길들인다는 것'이 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세척 과정은 어찌나 독특하고 복잡한지. 왜 세제 없이 물로만 닦아야 한다는 것이며 세척 후 물기를 바로 닦아 내고 가스 불에 올려 말려야 한다는 깨알 같은 주의 사항도 귀찮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왠지 약이 올라서 반대로 행동했다. 일부러 더 자주 꺼내 썼다. 그렇게 차츰 시간이 흐르자 나는 조금씩 무쇠란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무쇠는 기름과 불을 좋아하고 물과 비눗기를 싫어한다. 심플하게 말하면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얇게 들기름을 한 겹 바르고 불로 뜨겁게 달구어주면 그게 바로 일종의 코팅이다. 그걸 반복해서 겹겹이 쌓이게 하는 과정이 바로 '길들이는' 것이었다. 혹은 기름진 요리를 자주 하는 것으로써 길들일 수도 있다. 세척할 때는 헌 옷을 자른 천이나 키친타올로 기름기를 먼저 닦아 낸 후 따뜻한 물로 불리고 부드러운 수세미로 씻어 낸다. 세제를 안 쓰니까 기름기가 남지 않냐고? 아까 말했듯 그 기름기라는 것은 무쇠 팬에겐 코팅이다. 비누로 무쇠 팬의 기름기를 쏙 빼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길들이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 도로 아미타불이다. 그리고 세척 후 물기를 닦아 바로 가스 불에 말리는 건 물을 만나면 녹스는 무쇠의 성질 때문이었다. 한 번은 귀찮아서 물기를 덜 말렸더니 그다음 날 어김없이 녹이 슬어서 식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무쇠의 매력 포인트! 철 수세미로 박박 밀면 녹이 벗겨지며 부활한다. 물론 처음부터 길들이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겠지만….


  그냥 만 원 주고 코팅 팬 샀으면 또 한동안 걱정 없이 썼을 텐데 굳이 고생을 사서 하던 날들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쇠 팬을 쓰려고 꺼냈는데 어, 오늘 뭔가가 달라 보인다. 뭐랄까, …예뻐졌다.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다시 봤는데 역시 예쁘다. 원래 있던 무뚝뚝한 애는 어디 가고 화사한 애가 새로 왔나 싶었을 정도로 달랐다. 바닥이 검고 반드르했으며 뭔가 깊은 윤기가 돌고 있었다. 살짝 손가락 끝으로 어루만져 보니 끈적임 하나 없이 매끈했다. 난 무쇠 팬 전문가도 뭐도 아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아주 잘 길'들'여'진' 상태다.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라는 게 무슨 뜻이야?”

“요즘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있지만, 그건 ‘관계를 맺는다’라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너는 아직 수천수만 명의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게 없는 또 하나의 소년일 뿐이야. 그러니까 난 네가 없어도 돼. 너 역시 내가 없어도 되겠지. 네가 보기엔 나 역시 수천수만 마리의 다른 여우들과 똑같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 될 테고,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여우가 되겠지.”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中


  아무 생각 없이 쓸 수 있는 편리한 물건이야 한가득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물건은 어디까지 물건일 뿐, 그것에 인간적인 감정을 품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무쇠 프라이팬을 긴 시간을 들여 길들이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의 지극히 인간적인 부분까지 열어 버린 것이다. 그에 화합하듯 이 녀석은 예뻐졌고 마침내 내게 와서 하나뿐인 여우, 아니 프라이팬이 되었다. 그날 우리가 함께 호흡을 맞춰 김치전을 부치자 정녕 내 손으로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빠'삭'빠'삭한 인생 김치전을 만나는 쾌거를 거두었다.


  그 이후로 잘 길들여진 무쇠 프라이팬으로 한 모든 요리가 성공적이었다, 라는 해피엔딩은 없었다. 길들여진 상태란 건 한 번 완성되면 불변하는 것이 아니더라. 매번 내가 어떻게 불 조절을 했는지, 어떤 타이밍에 얼마만큼 기름을 둘렀는지, 어떻게 세척하고 건조했는지에 따라 계속 변했다. 마치 계속 돌봐야 하는 동물이나 식물처럼. 그래서 나는 계속 프라이팬의 표정, 아니 표면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어느 날은 잘 길들여져서 해사하게 웃고 있을 때도 있고 어느 날은 무한도전 딱따구리 명수처럼 빙구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날도 있다.(진짜다!) 그런 날은 십중팔구 무심코 불이 너무 셌거나, 기름을 부족하게 둘렀거나, 제대로 세척을 못 한 것이다. 하지만 심기일전해서 정성 들여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예쁘장하게 윤기가 돌고 있는 모습으로 돌아와서 코팅 팬 따위는 범접 못 할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무쇠 프라이팬과 함께 한 날들이 어느새 삼 년이 훌쩍 넘었다. 그사이 우리 집에서 버려진 프라이팬은 하나도 없었고 기분 탓인지 몰라도 나는 빈혈 한번 없이 튼튼하게 살고 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넘어 무쇠에 매력에 듬뿍 빠진 나는 국산 안성주물에서 나온 작은 사각 팬도 하나 들여 잘 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첫정을 준 롯지 10인치 팬을 가장 사랑한다. 우리는 서로를 길들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인생의 동반자가 될 반려 프라이팬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작은 소망은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이 무쇠 팬을 쓰다가 더는 이 팬을 들 수 없게 될 때 어느 요리를 좋아하는 젊은이에게 여전히 창창하게 잘 길들여진 이것을 물려주는 것이다. 고것 꽤 멋진 계획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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