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재 May 09. 2022

고기 안 먹으면 뭐 먹고 살아?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처음부터 온라인으로 만나려 했던 건 아니다. 셋이 각자 사는 곳을 지도 위에서 선으로 이으면 커다란 정삼각형을 그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열심히 그 가운데 타협점을 찾았다. 결국 셋 모두에게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낯선 지점을 약속 장소로 정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식사였다. 몇 달 전 출산한 친구는 일반식을 하고 있고 바디 프로필을 촬영하려고 몸을 만들고 있는 친구는 닭가슴살과 샐러드가 주식이란다. 나는? 채식을 한다. 한 시간을 달려갔는데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고작 차 한잔이라면, 차라리 줌에서 만나자고 우리 중 가장 똑똑한 친구가 제안했다.


  창밖으로 파랗게 어둠이 내리는 금요일 일곱 시, 설레는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줌으로 만났다는 어색함은 곧 사라지고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점점 더 말이 많아진다. 나는 어떤 근황을 전하면 좋을까.   

   

  “나 1월부터 비건 지향 시작했어.”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이 채식, 비건 얘기는 많이 들어봤어도 실제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신기해했다. 그럼 생선도 안 먹느냐는 질문에 채식주의자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 비건은 덩어리 고기뿐 아니라 육수, 생선, 우유, 달걀 등 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으려는 엄격한 단계라고 답했다. 아직 나는 스스로를 ‘비건’이라고 지칭하기엔 좀 부족하고 ‘비건 지향’의 단계지만.     


  “그럼 뭐 먹고 살아?”     


  그런 질문을 처음 들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난 말문이 막혀버렸다. 동물에서 얻은 식품을 빼고도 분명 이것저것 다양하게 잘 먹고 사는데 뭐부터 말하면 좋을까?     


  “두부 같은 거 먹나?”     


  내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다른 친구가 묻는다.      


  “어…. 두부도 당연히 먹지….”     


  떨떠름하게 대답해놓곤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하다. 물론 나는 두부도 먹지만 두부만 먹진 않는다. 가령 콩이라는 카테고리에는 무슨 음식이 들어있더라? 일반식을 할 때는 몰랐는데 비건 지향을 시작하며 찾아보니 콩은 정말 다양하게 요리에 활용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집에서 요거트를 만들어 먹곤 했는데 그 똑같은 방법으로 두유를 넣고 만들면 두유 요거트가 된다. 두유로 만드는 식물성 마요네즈도 있다. 요즘엔 시판제품도 많지만, 집에서 두유와 식용유를 1:1 비율로 섞은 후 머스타드, 소금, 설탕, 식초를 넣고 믹서로 갈면 간단하게 완성할 수 있다. 들깻가루와 두유를 넉넉히 넣어서 비건 크림파스타를 만들어도 아주 맛있다. 먹고 남은 두부는 얼렸다가 해동하면 색감과 질감이 전혀 달라진다. 그걸로 두부조림을 만들거나 작은 큐브 모양으로 썰어 볶음밥에 넣으면 씹는 맛이 쫄깃하다. 유부를 어묵 대신 떡볶이에 넣거나 김밥에 넣어도 잘 어울린다. 


  가끔은 낯설게 콩을 먹는 방법도 있다. 요즘 알려지기 시작한 인도네시아 전통음식 ‘템페’는 콩을 발효시킨 단단한 식감의 음식인데 도톰하게 썰어 살짝 구워 먹으면 이국적인 별미다. 콩과 올리브 오일, 향신료를 넣고 갈았을 뿐인데 손쉽게 완성되는 중동 전통음식 후무스는 마성의 음식이다. 거기에 찍어 먹으면 채소가 끝도 없이 입에 들어간다. 그뿐 아니다. 2010년대 미국 부호들의 지원을 받은 한 스타트업 업체는 실험실에서 밀과 감자의 단백질을 이용해 진짜 고기의 색, 질감, 냄새, 육즙까지 똑같이 재현해내는데 몰두했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는데 그 맛의 비밀은 콩 뿌리에서 발견한 ‘헴’이라는 성분이었다고 한다. 그 이름도 찬란한 '임파서블 푸드' 대체육 탄생 이야기다.


  하지만 이건 콩 카테고리 하나일 뿐이고 다른 카테고리까지 확장하려니 뭘 어디부터 설명할까 고민하던 중… 그만 화제가 전환되어 버렸다! 


  속상하다.  


   내 부족한 말재간 때문에 친구들이 비건들이란 풀이나 씹어 먹고 흰 두부를 우물우물하며 맛없음을 견디는(아, 물론 생채소와 두부도 천천히 음미하면 음청 맛있습니다만) 이미지로 딱 오해하게 생겼다. 더 한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변에 나의 비건 지향을 알릴 때마다 “도대체 뭐 먹고 사니?”라는 질문이 당연하게 오곤 한다. 하지만 한 번도 똑 부러지고 명쾌하게 나의 만족스럽고 풍요로운 새 식생활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 퍽 약이 오른다.


  그래도 조금 변명하자면, ‘고기랑 동물성 식품 말고 뭐 먹고 살아?’는 내 부족한 말재간과는 별개로 짧게 대답하기 정말 쉽지 않은 질문이다. 비건들은 산에 사는 산토끼처럼 인간들과 다른 특별한 것을 먹고 사는 게 아니다. 스테이크, 삼겹살 등 덩어리 고기로만 이루어진 몇몇 메뉴를 제외하면 비건들도 일반식을 하는 사람들만큼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가령 일반식을 하는 사람들이 김치볶음밥을 먹는 동안 비건식을 하는 사람들 역시 김치볶음밥을 먹는다. 물론 거기에는 동물성 식품을 넣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래와 같이 간단히 대답하면 어떨까?     


  “나는 햄이 들어가지 않은 김치볶음밥을 먹어.”     


  오십 점짜리 대답이다. 들어가야 할 것을 제외했다는 정보만 담겨 있어서 맛의 공백이 절로 느껴진다. 햄이 빠진 김치볶음밥이라니 어감부터 얼마나 심심한가! 이런 대답은 일반식을 하는 사람에게 비건을 하려면 신념을 위해 맛의 일부를 기꺼이 포기해야 하는 걸로 오해토록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니다. 비건 식생활이란 동물성 식품을 배제하는 것일 뿐 맛까지 포기할 필요도 없고,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럼 어떻게 대답해야 적절할까?     


  우선 버섯(새송이나 팽이, 표고 다 좋다. 단, 느타리는 수분이 많은 편이므로 꽤 오래 볶아야 함) 뿌듯하게 한 줌과 대파 두어대, 마늘은 좋아하는 만큼 준비한다. 버섯은 결을 살려 찢고 대파의 흰 부분은 송송, 푸른 부분은 큼직하게 어슷하게 썰고 마늘은 편으로 썬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바닥이 달아오르면 버섯, 대파, 마늘을 넣고 센 불에 수분을 날리며 볶는다. 혹시 냉장고에 양파나 부추가 있다면 조금 썰어 넣고 같이 볶아도 좋다. 어느 정도 수분이 날아갔을 때 ‘백설 돼지불고기 양념’(의외로 비건!)을 한 스푼 넣고 계속 볶는다. 점점 지글거리며 매콤달콤한 버섯 두루치기 같은 모습이 되어간다. 이윽고 버섯이 졸아들고 채소들이 팬에 살짝 누르면서 감칠맛 나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불을 끄고 집게와 가위로 버섯과 채소를 사정없이 잘게 잘라준다. 맞다. 두루치기 집 후식 볶음밥이 더 맛있는 점에서 착안한 오프닝이다.


  대파와 마늘이 듬뿍 들어간 세미 버섯 두루치기로 팬 속의 감칠맛을 끌어올린 후에야 비로소 김치가 등장한다. 잘게 썬 김치를 팬에 투하한다. 이때 비정제 설탕을 좀 추가해서 김치의 신맛에 어울리는 단맛을 더해준다. 김치에 투명하고 짙은 주황빛이 돌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오래 볶는다. 그리고 맛있는 볶음이 완성되면 불을 끈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을 넣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고루 섞는다. 밥과 재료가 충분히 섞였으면 이제 다시 불을 켜고 볶는다. 비건 지향을 하기 전에는 굴소스를 넣어 간을 맞췄는데 이제는 간장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한가지 비장의 재료가 더 있다.


  김을 살짝 구워서 바스락바스락 부수어 올리는 것으로 볶음밥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김가루를 넣는 순간 바다의 깊은 감칠맛이 볶음밥에 더해진다. 동물로 만든 굴소스가 전혀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뒤적거려서 김가루와 볶음밥을 섞어 준 후 가스 불을 끄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또르르 두르면 진짜 완성이다.     


이런 볶음밥을 먹습니다만….


  난 사실 이런 TMI 가득한 대답을 하고 싶어서 첫마디를 무엇으로 시작할지 공들여 고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사이에 늘 이미 화제가 넘어가 버린 건 어쩌면 당연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친애하는 반려 후라이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