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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Jan 01. 2024

Welcome Back to U.S.A_Day3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바쁜 현실과 잠시 잊고 있어서 놓쳤던 미국 이야기를 슬슬 마무리 지을까 한다.



 대망의 미국행 3일 차. 


 사실상 목적이었던 AUSA가 이날부터 행사를 시작했다. 나는 미리 등록을 해두었기 때문에 입장권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나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아버지는 아직 티켓을 수령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내가 직접 모시고 티켓을 받으러 가야 했다. 


 그래서 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나를 아버지가 계신 호텔 앞에 드롭하고 먼저 회장으로 출발했고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가고자 당신을 기다렸다.


 부수적인 이야기이지 나는 미국에 살던 당시엔 고등학생으로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그곳에 있는 스타벅스에 흥미가 없었지만 성인이 되고 카페인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었고 커피는 사실상 수혈에 가까운 내 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미국을 간다 했을 때 1순위로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스타벅스였다. 그러나 일행들과의 스케줄상 따로 스벅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이 날 아버지와 함께 박람회장으로 가면서 함께 스타벅스에 들려 커피를 한 잔 마실 시간이 되어 고대하던 스벅에 들르게 되었다.


 

본토의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라떼


  사실상 매장 안은 한국과 큰 차이는 없었고 맛도 그렇게 차이가 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드디어 본토의 맛을 맛보는군'이란 심리 덕분에 조금 더 맛있게 느껴지긴 했으나 막 무언가 '이거다!' 싶은 느낌은 없었다.


 그래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즐기는 아침의 여유가 좋았고 아버지 역시도 아들과 함께 오래전에 왔었던 미국에서 함께 커피를 즐긴다라는 점에서 즐거워하셨다.


 아 물론 솔직히 말해서 내 궁극의 목표는 원래는 바쁜 뉴욕 한복판에서 남들은 다 출근이다 뭐다 바쁠 때 홀로 스벅에 가서 베이글과 커피 한 잔을 즐기며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쓰는 게 목표였지만 그래도 본토의 스벅을 즐겼다는 것에서 만족감이 있다.




 그렇게 아버지와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도 됐지만 약 30분 거리를 함께 걸어가기로 하여 워싱턴 거리를 걸어갔다.


 참 놀랍게도 워싱턴은 이름값을 못하는 도시였는데 세계 최고 국가의 수도이지만 이름만 수도일 뿐 행정도시인지라 거주단지가 적었고 막상 있는 곳들도 솔직히 가난한 동네의 느낌이 강했다. 

 물론 느낌만 그럴 수도 있었으나 대부분 거주하는 사람들이 흑인들이나 아시아인이 많았고(절대 인종차별이 아니다) 길을 가면서 떨을 피는 모습을 보면서 아차 싶은 순간들을 많이 보고 느꼈다.


 아버지께서는 길을 가시면서 삿대질로 그들을 가리키는 걸 보고 내가 역정을 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부자가 함께 아침에 본토 커피를 한 손에 들고 길을 걸으며 '출근'을 하고 있자니 감회가 남다르긴 했다.


 컨벤션 센터에 도착해 아버지의 등록을 도와드리고자 줄을 서는데 아뿔싸! 사람이 너무 많았다. 대부분 정복을 입은 군인들로 그 옷의 디자인이며 색상이며 각양각색의 군복이 즐비한 모습을 보니 새삼 내가 미국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줄을 서있을 뿐이었다.

 

미군뿐 아니라 독일, 일본, 프랑스 그리고 한국에서도 많은 군인들이 참석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검사해보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MBTI로 보자면 E 성향이 100% 일 것 같은 아버지가 함께 서있던 한 미군에게 말을 걸었다.

Mr. STEWART

 스튜어트란 이름의 그 남자는 미군에서도 레이더 쪽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군인이었다. 참으로 놀랍게도 그는 처음엔 우리를 보고는 시큰둥하게 놀러 온 그런 사람 인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는데 아버지가 전직 군인임을 밝히자마자 Sir로 호칭이 바뀌었고 마치 자신의 상관을 본 듯 대하는 게 놀라웠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싹수가 없었다거나 그런 게 아닌 단지 우리를 관광객 비슷하게 인식해 관계자가 아닌 사람으로 생각한 듯했다. 


 또 놀라운 게 스튜어트는 내가 보았을 때 대략 50대에 가까운 나이였는데 지나가던 한 흑인 병사를 만나더니 서로 인사를 하는데 그게 마치 친구들 사이에서 하는 인사 비슷했다. 거기에 비록 Sir라고 흑인 병사가 계속 말은 붙이지만 둘은 마치 친구 관계처럼 보였는데 여기서 문제는 흑인 병사는 20대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감히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그림이었는데 이들은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서로 "Take care"이란 말만 하고는 서로 헤어졌다. 


 유교 사상이 지배한 한국에서는 참 상상하기 쉽지 않은 그림이었는데 이게 마냥 이 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3일간 자주 볼 수 있던 그림이었다. 이게 새삼 다시 16년 만에 미국에 다시 방문해 느낀 문화적 차이였다.



 

 박람회 행사는 무난히 진행되었다. 거의 앉아있지 못해 너무 빡셌다는 것을 제외하면 꽤 재밌는 행사였고 첫 날인만큼 어느 정도 맛보기(?) 느낌이 있기도 했다.


 행사가 종료되고 아버지는 우리와 같은 숙소를 쓰지 않으셨기 때문에 따로 호텔에 드랍해드려야했는데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해서 아버지와 함께 간 동료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근데 무려 메뉴가 파이브가이즈였다!!


 한국에서도 아직 먹어보지 못했고 미국 거주 당시에도 먹어보지 못했던 파이브가이즈를 드디어 먹게 된 것이다. 직접 평점이 높은 곳을 찾아 방문했고 나는 메뉴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2번째 걸로 가장 무난한 걸 주문했었다.


감튀 라지 시켜서 크게 혼났다 But 이게 미국의 맛이구나!

 미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까 방심한 탓일까 감튀를 라지를 세 개 시켰다. 아버지를 포함해 총원이 7명이었는데 감튀 라지 하나면 충분했을 정도... 결국 다 남기게 되었다. 


 그렇지만 버거 맛은 정말 황홀했다. 미국에서 약 6일을 있었고 그중에서 먹은 식사 중에서 가히 최고라고 평할만했다. 물론 행사 끝난 마지막날 함께 먹은 스테이크와 랍스터가 더 맛있긴 했지만 그건 어쨌든 비싼 거(?)이니까 그렇다 치고 일반적인 것 중에서는 가장 맛이 있었다 이게. 짜지도 않고 풍미도 있고 고기도 맛나고.


 다 같이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는 호텔에 들어가시고 나도 우리 에어비앤비 숙소로 돌아왔다. 모두가 긴장도 하고 앉아서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상황이라 지쳐서였을까 다들 맥주 한 캔씩만 하고서는 모두 잠자리에 들어가며 그렇게 미국 3일 차가 마무리되었다.



 고된 하루였다. 점심 식사도 하지 못했고 아침부터 종료까지 편히 앉아 있었던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기분만큼은 확실히 미국에 왔다란 느낌을 받은 하루였다. 늘 그리워했지만 오지 못했던 미국 비록 더 이상 학생은 아니었기에 하이틴 무비의 주인공이 될 기회는 없어졌지만 새삼 그리움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하루가 되어 기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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