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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May 25. 2024

대혐오의 시대

무엇이 그리 아니꼬우신가요?

최근 화두가 된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개조련사 '강형욱 훈련사'의 갑질 논란.


사건의 개요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강형욱 훈련사가 회사 내에서 직원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내용이다.


막상 내용을 들어보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삶을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기분 나쁜 일 정도 수준의 내용이었다(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직원은 그것을 갑질이라고 표현하였고 결국 강형욱 훈련사는 여러 이유에서 피해를 입고 다시금 해명을 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강형욱 훈련사가 마냥 잘했느냐? 그건 또 모르겠다. 실제로 본인이 해명한 바와 달리 실제로 어느 정도 갑의 입장에서 행동한 부분들은 있었을 수도 있고 직원이 피해를 진짜 입었을 수도 있다.


자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일반인들이다.


"뭐? 내가 문제라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그래 당신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필터링'의 개념이 부족하다.

과거엔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정보 습득이 어려웠다면 현대에는 지나치게 방대한 정보 속 내게 필요하고 정확한 정보를 캐치해 내는 것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넘치는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듣고, 보고 싶은 정보만을 습득하며 자신에게 편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즉, 대부분의 소식을 본인 '흥미'에 맞춰서 접하고 습득한다.


이번 사건도 그렇다.

처음 폭로를 들은 사람들은 '와 강형욱 실망이 크다', '개를 좋아해서 그럴 줄 몰랐지만 실망했다' 등 부정적인 여론이 주를 차지했다.

그러나 다시 강형욱이 해명하자 여론은 또 뒤집혔다.

'그럼 그렇지 강형욱이 그럴 리 없지', '페미니스트인 직원이 비하 발언을 더 써서 못 참은 게 맞다', '직원이 잘못했네' 등.


결국 자기들 보고 싶은 대로 듣고 싶은 대로 정보를 습득하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뭐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겠다는데 네가 뭔 상관인데?


그렇게 이야기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표출한다는 것, 그리고 그대로 당사자들에게 이 소식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악플'


자신에게는 가벼운 키보드질 몇 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 혹은 잊지 못할 아픔이 될 수 있는 문제.


물론 비판은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하면 건전한 비판을 통해 당사자도 스스로 성찰하고 보던 사람들도 이를 교훈 삼아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비판이 아닌 비난 일색이다.


이 사람들은 그냥 씹어 먹을 안주가 필요한 듯하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씹으면서.




대혐오의 시대.

나는 요즘을 이렇게 부른다. 물론 이는 나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표현하는 경우도 보았다.


대혐오의 시대, 마치 거창한 무엇인거 같지만 실상은 졸렬함이 가득한 세상.

별 것 아닌 것에 쉽게 비난을 가하고, 서로 대화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싸움으로 번지게 만들고, 결국에는 누군가가 상처를 입고 피해를 받아야만 끝이나지만 무한히 악순환하는 바로 그것 혐오.



정상적인 범주내에서 혐오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감정이기는 하다.

마치 내가 벌레를 보면 정말 혐오해하듯이 인간은 혐오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표출 대상이 잘못된 것이 바로 요즘 사람들이다.


물론 사람에게도 혐오의 감정이 들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싫어하는 직장 상사가 있다고 치자, 나는 이 작자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가볍게 커피를 마시는 것도 그 이상으로 말을 섞는 것조차 싫다고 생각할 수 있다.

허나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혐오의 대상과 함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대화도 나누며 살아가고는 한다.

왜냐고? 우린 인간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으며 본능에 충실하지 않은 유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혐오하는 사람에게 그 티를 낸다면 상대 역시 내게 불편함 혹은 비슷한 감정을 표출해 낼 것이고 그것은 서로에게 악영향만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감정을 숨기고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걸 숨기지 않는다. 아니 면전에서는 숨길지라도 0과 1의 세상 속에선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 분노, 혐오, 비뚤어진 애정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사람들은 인터넷에 쏟아붓고 있다. 그것도 그냥 쏟아내는 것이 아닌 타인을 비방함으로써 쏟아내고 있다.


정말 정말 정말 많은 혐오가 인터넷에 만연해있다.

특히 가장 최근의 화두는 아무래도 남녀갈등.


어느 시점에서부터 인가 남녀 갈라치기가 세상에 만연해버리고 말았다.

소위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여자들은 대부분의 남성을 비하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가 올라갈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타당한 이야기가 있는 반면 사실 이해가 안가는 논리가 대부분이라 꽤나 많은 비판을 받았었는데 이로 인해 가만히 있던 남성들 역시 긁혀버렸고 결국 그들도 여성에 대한 혐오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녀갈등이 발생했고 이는 점차 커져갔으며 최근에는 정말 심각한 문제로 발돋움했다.


짧게 내 생각을 적고 가자면

'모든 인간은 차이가 있고 다 다르다'라는 것이다.

이들은 그 차이를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서로 갈라서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한 가지, 인류 역사상 가자 오래된 혐오이자 갈라치기가 바로 '인종'이다.


흑인 차별, 아시아인 차별 주로 백인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던 차별이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당장 시야를 좁혀서 한국만 봐도 넘치는 게 인종 차별이다.


[어떠한 이유가 있다 -> 누가 누군가를 싫어한다]


이런 메커니즘의 경우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들에게는 그것을 싫어할만한 경험이 있고 타당한 근거가 있다.


인종 차별에는 그런 타당한 이유가 깃들어 있지 않은 편이다.

백인들을 봐라 그들은 자신의 권리 향상을 위해서 흑인을 무차별적으로 대했다.

그러나 흑인과 백인의 차이는 생물학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과거에도, 지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내가 최근 가장 싫어하는 부류는 바로 중혐이다. 물론 중국을 싫어할 순 있다, 그러나 내가 싫은 것은 '무지성 혐오'이다.


중국에는 좋지 못한 문화적인 것도 그런 모습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런 것을 싫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일단 중국이라고 하는 순간부터 싫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야 이거 중국 거던데?"

"으 개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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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봐 사람을 죽였대"

"아 중국 개싫어 극혐"

"응? 이거 한국인데?"


이런 수준이다.

그냥 일단 중국을 혐오한다. 이유도 없다. 그냥 중국이라서 싫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앞뒤 문맥을 파악하려고도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려고도 안 한다. 그냥 중국이면 싫어한다.


처음엔 나도 그러려니 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시간이 흘러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체 왜?라는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다. 처음 그 이유를 들었을 때 답이 너무 우스웠다.


"그냥 중국이잖아"


그들에게는 적절한 이유도 타당한 근거도 필요가 없었다. 그저 혐오의 대상이 필요했을 뿐.

이런 게 만연한 게 바로 인터넷 속이다.


누군가가 A라고 말을 하면 A는 틀리다고 말한다.

그럼 B가 맞냐라고 물어본다면 B도 틀리다고 한다 다른 누군가가.

그럼 뭐가 맞냐고 물어보면 C가 맞다고 한다.

그럼 C도 틀리고 D가 맞다고 한다.

그럼 또 D는 틀리고 A가 맞다고 한다.


그냥 모두가 정답은 모르고 자기만 맞았다고 한다.

내 기준엔 모두가 틀렸다.




되게 오랜만에 브런치 글을 썼다. 

한동안 소설 집필로 바빠서 신경을 못썼는데 뭐... 어느 정도 핑계이긴 하다. 놀 시간 줄였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으니.


언제부터인가 생각했던 혐오에 관해 써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오늘 다시금 기사를 보다가 생각이 나서 끄적여 보았다. 쓰기 시작하고나서부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몰입해서 나 역시도 감정적으로 글을 쓴 것 같아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대혐오의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표현하는 말로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삶이 척박해지고 정이 줄어들고 오직 자본과 쾌락만을 추구해 가는 삶의 모습이 안타까운 현실 속 늘어나는 혐오가 솔직히 보기 안 좋았다.


높아지는 자살률과 낮아지는 출산율, 줄어드는 인구 속 세상은 점차 발전하고 살기 편리해지지만 그만큼 황폐해져 간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더 이상 이웃 간의 정은 없어 보이고 돈 앞에서는 낭만도 의리도 사라져 가고 있다.

꿈을 좇기보다는 돈만 쫓아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래서 세상이 변해가고 있지만 나만 과거에 남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했다.


나도 종종 댓글을 보거나 뉴스 등등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고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무지하지?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가르쳐주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다 보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맞나?'


그리고는 천천히 뒤로 가기를 눌렀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싸움판 구경도 재밌다. 서로 누구 말이 옳고 누가 틀렸네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참 우스워서 보는 재미가 있다.

인터넷이란 게 그냥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건가 싶을 정도.


물론 인터넷상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자주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렇게 세상은 점차 누군가를 미워함으로써 쾌감을 얻는 그런 시대가 된 건가 싶어 안타깝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닌 사람들도 많고 더 아름답게 사시는 분들도 많다.


그저 왜 유독 더 심해졌는지에 대해 안타까울 뿐.


대-혐오의 시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선, 나를 제외하고는 깎아내리지 않고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혐오함으로써 내 혐오를 표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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