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을 보면서 유독 마음이 멈추는 구간이 있다. 상연이 은중에게 착한 척하지 말라고 할 때, 너는 네 쪽에만 대의가 있는 것 같으냐고 할 때, 나를 비참하게 좀 만들지 말라고 할 때 같은. 그런 장면.
극에서 은중은 선한 사람이다. 나에게, 남에게 솔직하고. 그른 것을 보고 분노하고. 구태여 꾸미지 않아 되려 반짝이고. 사람과 사랑을 믿는. 그럼에도, 믿는. 그런 선한 사람.
언젠가 어떤 사람이 나에게 “너 그러는 게 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은 거야.“라고 한 적이 있다. 어린 날의 당혹감이 아직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은중처럼 나도 늘 착하게 살고 싶었다. 예쁘다, 똑똑하다는 칭찬보다 착하다는 말이 더 좋았다. 이 정도면 착한 본성을 타고난 편이라 여겼고, 살면서 착하지 않으려 할 때마다 모난 마음을 꽉 누르고, 하고픈 말을 꾹 참아가며 착하게 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저런 말을 들으면 언제나 마음이 아릿하다. 나의 착한 노력이 착한 척이 될 때, 위선으로 여겨질 때. 누군가를 향한 미움, 시기, 질투, 분노, 혐오 같은 마음이 내 안에도 있다는 걸 내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정말로 내가 착한 게 아니고, 착한 척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갑자기 나의 착함에 자신이 없어질 때.
누구에게도 나쁜 사람이고 싶지가 않은데, 가차 없이 “너는 네가 착한 줄 알아? 그건 착한 게 아니야. 너 때문에 내가 나쁜 사람 같아.” 따위 말로 내 마음을 시험하고 부정할 때.
상연이 은중에게 쏟아낼 때마다, 은중의 얼굴에서 내 마음을 보았다.
그러면서, 은중을 통해 위안을 얻었다. 착한 사람도 누구를 미워하고, 하고 싶은 말과 감정을 다 뱉어내고, 어두워질 수 있다는 걸. 그런 걸 다 한다고 해서 착한 사람이 아닌 게 되진 않는다는 걸 은중의 서사를 통해 느꼈다.
착하게 살자 작정하고 살다 보면 한 번씩 상연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날 선 모서리가 분명해서 눈이 가고, 어딘지 모르게 특별해 보이는 그런 사람을 보고 있자면. 나의 둥그런 구석은 매력 없고 평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착한 척하는 듯한 나를 촌스럽고, 재미없고, 밋밋하게 느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착하게 살고 싶다. 은중처럼.
대개 착한 척도 착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거다.
착하게 살면, 사람이 남고, 내 안에 사랑도 남는다. 그거면 다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