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화지와 부러진 크레용

by 연우

아기 키우는 일이 꼭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는 것만 같았다.


어제 오늘 너무 다른 아기를 보며 허무하다가도.

그래 오늘 못해도, 이번 텀에 못해도, 언제든 새롭게. 다시 좋아지고, 나아질 수 있다고 안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새로 고침 버튼이 아니고. 새 도화지였다. 아기는 새 도화지를 한 장씩 꺼내어 제 안에 차곡차곡 모아 두고 있었다. 내가 해줬던 모든 것들이 어디로 다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고. 아기 안에 고스란히 쌓여 있다.


아기가 올려둔 도화지에 나는. 크레용을 잡아들고 조심히. 또 어떤 날은 엉망으로. 그렇게 매일을 그림그리는 기분이다.


곧 아기의 돌이다.

아기 안에는 도화지가 몇 장이나 쌓여 있을까.


기꺼이 매일 새 도화지를 펼쳐주는 고마운 아기와, 몇번이나 부러뜨리고 내던졌어도. 다시 꾸역 꾸역 그 크레용을 집어들고 그림을 그려보겠다 애썼던 나와 남편에게.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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