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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Oct 02. 2023

12시간 동안의 말타기가 나에게 남기고 간 건

즉흥러세명이모이면여행이즐겁다#3

드디어 말을 탄다!

 몽골 말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 올라탔을 때 무서움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다. 내가 이날 처음 탔던 말만 해도 내가 고삐를 잡자마자 한쪽으로 고개를 계속 돌리며 내 손길을 거부했다.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몸을 바로 하고 고삐를 잡아당겼다. 너무 한쪽으로 잡아당겨서 그렇게 구는 거라는 안나의 말에 두 손으로 고삐를 헐렁하게 잡아봤지만 그렇게 할수록 말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틀뿐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지금도 왜 그날 별안간 말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창 실랑이를 하다 이날 우리를 이끌어준 가이드이자 이후 친구가 될 우쮜가 내 말의 고삐에 달려 있는 줄을 잡아당기면서 1차전은 마무리 됐다.


 우쮜는 자신의 말을 타면서 나와 지헌이의 말을 이끌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말들이 서로 가까이 붙었는데, 우쮜가 타고 있는 말과 내가 타고 있는 말 사이에 다리가 끼는 건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꼭 이렇게 가까이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지만 말근육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잘못하면 다리가 돌아갈 것 같은 단단함이라고 해야 하나. 말은 공격 의사가 없더라도 갑자기 뒷발을 뒤로 찰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말 뒤에 있지 말라는 말이 제대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말을 타고 있는 몽골인들을 보면 기다란 장화를 신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대로 물어본 적은 없지만 대충 그 이유를 2가지로 생각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말을 타고 그대로 얕은 강이나 호수를 건너는 것이 이들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말을 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어서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처럼 일반적인 운동화를 신고 있으면 발이 꺾인 채로 오랜 시간 동안 버텨야 하기에 나중에 걷기가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나만 해도 후에 말이 돌바닥을 달릴 때 엉덩이가 너무 아파 일어서서 승마를 했는데, 오랜 시간 동안 발이 꺾인 그대로 힘을 주고 있었더니 말에서 내려올 때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아직 말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초짜인 우리는 그대로 우쮜가 가는 방향대로 이끌려갈 수밖에 없었는데, 말을 탄 그대로 물 위를 지나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튀는 건 당연하고 조금이라도 깊은 곳에 들어가면 발이 그대로 물에 잠기게 됐는데, 나는 뒤따라오는 안나를 따라 안장에서 발을 빼고 발을 최대한 높은 곳으로 올렸다. 그렇게 해도 첨벙첨벙 가는 말들의 움직임 때문에 젖는 건 막을 수 없더라.

 말을 타고 산 높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우쮜에게 부탁해 높은 언덕으로 갔다. 그리고 내려오려는데 지헌이가 혹시 혼자 타고 되냐고 물어보는 거다. 나는 허락받은 지헌이를 보고 단번에 나도 혼자 타고 싶다고 말했다. '넌 안돼.'라는 걱정 어린 안나의 말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주며 우쮜에게 줄을 받은 나는 두 발로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말이 움찔하더니 곧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4명이 타고 있는 안장 중에 내가 앉아 있는 안장이 제일 푹신하고 높았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이전에 안나 삼촌집에서 탔던 것보다 더 흔들거림이 느껴졌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말에 정신을 못 차리기 시작한 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온전히 나 혼자 말을 타는 것은 엄청난 자유였다. 말은 내가 고삐를 잡고 움직이는 대로 움직였다. 내가 멈추고 싶어 고삐를 잡아당기면 말은 멈췄다.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안 나와 우쮜가 보고 싶으면 고삐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됐다. 그럼 말은 고삐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았다.


 "어떻게 할래? 더 해도 되고."


 아직 달리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음에도 이미 나는 말에 푹 빠져있었다. 이미 처음 이야기했던 2시간은 훌쩍 지나있었지만 안나는 더 타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조금 더 타자고 말했고, 우리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말을 타고 산을 오른다는 건 초원을 오가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말이 위로 올라갈 때 뒤로 몸이 쏠리는 기분과 아래로 내려갈 때 확장되는 시야, 그리고 말이 땅을 디딜 때마다 저절로 움직이는 내 몸은, 내가 살아 있는 이 생명체와 함께 능동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바로 왼쪽에는 떨어지면 즉사할지도 모르겠는 절벽이 있는데 나는 이 생명체의 무얼 믿고 이렇게 몸을 맡기고 있는 걸까.


 산에서 내려와 평평한 평지를 갈 즈음에는 자신감이 점점 붙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제 마음껏 뛰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런 자신감. 나는 말을 달리게 하기 위해 '추!'라고 외치며 옆구리를 강하게 걷어찼다. 말이 조금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추!'라고 외치며 다시 한번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말이 뛰었다. 바람이 내 얼굴을 강타하고 엉덩이가 안장에 거세게 부딪힐 만큼 빠르게. 다그닥다그닥 소리가 내 바로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 났다. 안나의 멈추라는 말이 들릴 때까지 달린 나는 고삐를 뒤로 강하게 잡아당겨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고삐를 오른쪽으로 잡아당겨 말머리를 돌렸다. 저 멀리에서 안나, 지헌, 우쮜가 말을 타고 오고 있었다. 고작 몇십 초 사이에 이만큼이나 차이가 벌어진 거다.



비가 오네... 그럼 우비를 입고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다. 그저 지나가는 비겠거니 싶었지만 점점 거세지는 것이 쉽게 그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안나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이대로 다른 곳으로 갈래?"


 그러니까,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가 아니라 다른 숙소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소리였다. 그것도 말을 타고. 소위 말하는 '지금 당장 말을 계속 타야만 하는' 상태였던 나는 단번에 좋다고 말했다. 비가 오면 어떤가. 비를 맞고 가면 되는 거지.

 숙소에 도착한 나는 지헌이의 배려로 옷을 덧입고 숙소 사장님의 배려로 검은 우비를 입었다. 지헌이와 안나는 차를 타고 새로운 숙소로 가기로 했고 나는 두 몽골인 친구와 함께 말을 타고 가는 걸로 결론이 났다. 후에 친한 친구가 되는 우쮜와 현호. 이들 역시 한국어와 영어를 전혀 모르기에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그때의 나에게 그 사실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쮜가 새로운 말을 데리고 올 때까지 우비를 입고 기다렸다. 밖에서 기다리다가, 너무 오래 걸려 바닥에 드러누워서 비를 맞으며 기다리다, 그걸 발견하고 기겁하며 달려온 지헌이에 의해 차에서 기다리다가, 그러다 우쮜가 도착했다. (잠깐이라고 해서 잠깐인 줄 알았건만 건 1시간은 걸렸다. 우쮜가 나를 동사시키려고 했나 보다.)



 비를 맞으며 말을 타는 건 낭만이었다. 물론 낭만이라는 말로 끝날 빗줄기가 아니었지만 그런 환경에서 축축해진 말을 타고 추위에 덜덜 떨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나 자신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줬는지. 말이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따뜻한 김이 나왔고 비로 쫄딱 젖은 내 신발은 이미 질척해져 움직일 때마다 그다지 벗고 싶지 않은 소리가 났다. 우비가 막아주고 있으나 한기가 몸 안쪽까지 스며드는 게 느껴졌고 이미 몇 시간 동안 혹사당한 내 엉덩이와 발목은 통증을 호소했다. 나는 그냥 그 모든 현상들을 적당히 즐기며 무시했다. 이렇게 몇 시간 동안 말을 타고 가서 숙소에 도착한다면, 그곳에 도착한 내가 뒷감당을 해줄 것이니까.


 한참 동안 아무 대화 없이 걷다 보니 마을을 벗어났다. 서서히 비도 그치기 시작했다. 나는 나 스스로 고삐를 쥐고 말을 탔는데, 그러다 저 산 위를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 우쮜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호르뜬?"


 몽골어로 '빨리'라는 뜻이다. 이 날 우쮜가 나에게 이렇게 나에게 물을 때마다 내가 거절한 횟수는 0이다. 발목이 아파도 뛰고 싶었으므로.


 우쮜가 말고삐를 잡고 '추!'를 외쳤다. 야생동물이 즐비해 있는 곳을 가로질러 간다던가 나무가 이리저리 우거져 있어 앞을 잘 보고 고개를 숙이거나 피해야 하는 곳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갈 때 나는 한 손으로 안장을 꽉 잡은 채 앞을 똑바로 바라봤다. 혼자 말을 탈 때는 안장을 잡지 않는 게 중심잡기에 나을 수도 있지만(개인적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내가 조종하는 게 아닌 상황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모르기 때문에 안장을 꽉 잡고 내 몸을 지탱해야 했다. 달밤의 추위에 오들오들 떨기도 하고 대체 이 아이들에게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이상한 바디랭귀지도 하고 아주 쉬운 영어 노래를 부르며 얼굴이 얼얼할 때까지 말을 타다 보니 드디어 도착했다. 숙소로.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처참했다. 우선 옷이 없었다. 여벌 옷도 없는 주제에 비를 맞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과거의 나의 당당함. 물론 여벌 옷의 여부는 말을 더 타고 싶은 욕구와 비교할 수도 없이 사소한 문제일 뿐이지만 일단 추위에 덜덜 떨며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숙소 안으로 들어온 나에게는 조금 많은 문제였다. 나는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한 지헌이의 여벌옷을 양도받았다. 본인은 빼앗겼다고 말하곤 하지만 나로서는 처참한 내 몰골을 보고 연민의 감정이 생긴 착한 청년이 나에게 기증한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거다. 누구라도 내 몰골을 보면 그랬을 거다. 그만큼 게르 문을 열고 들어선 내 모습은 처참했다.

 몇 시간 동안이나 안장에 혹사당한 내 엉덩이는 저 딱딱한 의자에 차마 내려놓을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충격에도 고통을 호소했고 무언가를 꽉 잡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내 손은 퉁퉁 부어 젓가락질이 힘들었다. 앉는 게 힘들지만 걷는 건 그것보다 더 힘들어 간신히 앉은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반쓰테차이(만둣국)를 흡입했다. 정말 온몸이 아팠다. 승마가 전신운동이라는 말, 절대적인 사실임을 이렇게 몸소 체험하게 될 줄이야.

 당연하지만 내 신발과 양말은 물에 푹 담가져 소생이 힘들어 보였다. 나는 우선 신발과 양말을 화로 근처에 걸어두었다. 그런데 그걸 본 현호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면서 손수 신발에서 깔창을 빼고 그 안에 손난로를 집어넣고 화로에 올려놨더라. 심지어 양말도 게르 안쪽에 말려놓았다. 나도 내 신발을 건드리면서 해탈의 표정을 지어야 했는데 어떻게 남의 신발을 그렇게 정성스럽게 말려줄 수 있는지. 덕분에 다음날 말짱해진 신발을 신고 말을 탈 수 있었다. 땡쓰 투 현호.



 우리가 현호와 우쮜에게 어떻게 잘 거냐고 묻자 우쮜는 아주 당당하게 밖에서 잘 거라고 말했다.


 "말 옆에서 자면 따뜻해."


 밖이 이렇게나 추운데 밖에서 잔다니. 몽골인들은 대단하구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같이 오늘을 보냈고 내일도 보낼 친구인데. 더군다나 나와 안나가 한 침대에서 자면 침대가 하나 남지 않은가. 우리는 우쮜와 현호에게 안에서 같이 자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됐다.

 밖에서 술을 마시다가 실수로 술병을 깨버려 수습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일단은 열심히 듣고 말하며 안나에게 해석을 요구하고 곤드레만들레 진탕 취해버려 화장실의 반대편에서 화장실이 어딨냐는 질문도 하고(화장실이 문을 닫아서 밖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침대에서 잘듯 말 듯 눈을 뜨고 있다가 누군가의 '자도 된다'는 말에 픽 쓰러졌다. 그래, 아마 그렇게 잤던 것 같다.


달리는 법을 배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몸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주 아팠지만, 어제 마사지를 해준 덕인지 '말을 타지 못할 정도'는 아닌 거다. 분명 말 옆에서 자면 따뜻하다고 했던 우쮜가 이불에 둘러 쌓인 채로 덜덜 떨고 있는 것은 미처 보지 못했지만 현호가 밖에 있다는 건 인지했다. 어제 대체 얼마나 마신건지 곤히 자고 있는 친구들을 내버려 두고 쓰레기와 술병들을 치우고 나니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때부터는 아마, 언제 말을 탈 수 있냐면서 안나를 독촉하고 현호와 우쮜의 주변을 맴돌았던 것 같다.

 

 오늘의 일정은 이거였다. 테를지에서 유명한 호수 가기. 안나와 지헌이는 차를 타고 가고 나는 우쮜와 함께 말을 타고 간다. 말을 타고 호수까지 몇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럼 나는 적어도 그 시간 동안 말을 탈 수 있는 거다. 그 일정을 듣고 나니 신나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게 됐다. 아니 사실 더 기다리기 힘들었다. 당장 나에게 말을 대령하라 심정이 되어 주변을 알짱거리면서 잠자고 있는 개도 구경하고 혼자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를 귀찮게도 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이제 출발하자는 말을 듣고는 벌떡 일어났다.



 어제의 승마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목표를 명확히 설정한 채로 나 스스로 말과 함께 갔다는 점이다. 말고삐를 쥐는 것도 익숙해졌고 중심 잡는 것도 익숙해진 나는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페이스톡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어떻게 앉아야 내 엉덩이가 좀 더 편한지, 어떻게 말고삐를 쥐고 있어야 적당히 말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지 몸소 느꼈다. 또 어떻게 해야 너덜너덜해진 내 발목이 조금이라도 힘을 덜 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제 준비가 된 거다. 내 마음대로 미친 듯이 달릴 준비.

 어제도 몇 번 스스로 말고삐를 잡고 달려봤다. 밤에는 비록 내가 말고삐를 잡은 건 아니지만 우쮜를 따라 엄청난 속도로 산을 뚫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던 거다. 영상을 찍어줄 테니 한 번 달려보라는 우쮜의 말에 '추!'를 외치며 말의 옆구리를 강하게 걷어찼다. 그러자 말이 뛰기 시작했다. 거기서 멈추고 싶지 않아 달리고 있는 말의 뒤에 '추! 추!' 하며 더 빨리 달릴 것을 종용했다. 그러는 순간 말이 정말 '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그냥 빨리 걷기에 불과했다는 것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라 다그닥 거리는 소리를 냈고 내 몸이 이전보다 훨씬 높게 뜨기 시작했다. 말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렸고 눈이 시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우쮜가 '오땅'을 외쳤다. 다시 말을 느리게 달리게 하라는 소리였다. 말고삐를 잡아당겼음에도 흥분한 말은 좀처럼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손아귀에 힘을 주고 몸을 뒤로 젖히며 강하게 잡아당기자 그제야 속도를 줄인 말이 천천히 걸었다. 세상에나.


 호수로 가기 전 차를 타고 가던 지헌이와 안나를 중간지점에서 만났다. 이제 완전히 말에 익숙해진 나는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움직이는 차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뛰어다녔다. 앞을 보고 달리는 말의 방향을 틀자 말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뛰었다.

 말을 타고 이동하면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선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당연히 말도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차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길목이나 자갈이 가득한 호숫가를 내려다보며 갈 수 있는 거다. 넘어질 뻔한 말을 진정시킨 나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척 내민 우쮜는 이제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여유롭게 통화를 하거나 딴짓을 하며 앞서가기도 하고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도록 내버려 두기도 했다. 이건 마치 너도 이제 말을 탈 수 있는 일원이라 인정받은 그런 느낌.

 시골 사람들은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말을 타는 것이 거의 기본 소양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를 테면 내가 그렇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호숫가 위로 올라갈 때, 도로에서부터 어린 남자아이 한 명과 여자 아이 한 명이 각각 자신의 몸의 몇 배는 될 것 같은 말을 타고 내려오는 거다. 이 아이는 제대로 뛸 수 있을까 싶은 아이들도 말은 능숙하게 타는 것을 보면서 이곳의 생태계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호숫가에 도착했다. 하지만 사실 가만히 호수를 바라보며 아름답다며 우수에 젖은 감상을 내뱉은 적은 없었다. 호수는 그다지 내 목적지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호수 주변에 절대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은 이상한 덩어리들이 둥둥 떠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본 자갈밭의 호수가 훨씬 아름다웠다.)

 우리는 우리를 태우고 그 먼 거리를 이동하느라 지친 말을 쉬게 해주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만 해둔 채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말에서 내리자마자 발목이 욱신거렸지만 애써 무시하며 안나와 지헌이가 타고 온 차에 기어들어갔다. 호숫가고 뭐고 지금 여기서 걸었다가는 발목이 아작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요령이 생겼다고 해도 승마 2일 차에 불과한 애송이인 나로서는 멀쩡하게 걷고 멀쩡하게 뒹굴거리고 있는 우쮜가 신기할 뿐이었다. 그렇게 힘들면 쉬어도 되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 그렇게 아파 죽을 것 같은 상태여도 우쮜가 이제 말을 탈 수 있다고 말하면 당장이라도 일어나 비틀비틀 말로 직행했을 거다. 아드레날린 앞에서 고통 따위!

 물론 이건 아드레날린이 나올 만한 행위를 할 때 괜찮다는 말이다. 다음 날 나는 발바닥을 최대한 바닥과 일관되게 닿지 않으면 절대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바닥에 물이 닿을까 봐 발끝에 힘을 줘서 바닥을 짚었다가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우쮜는 나와 안나에게 말을 맡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안나는 우쮜가 타고 있던 말을, 나는 나와 이 여정을 함께한 말을 타며 호숫가를 뛰어놀았다. 이 말들을 하나의 특징이 있었는데, 그건 한 마리가 뛰기 시작하면 다른 말도 뛴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인지할 수 있는 거리가 되면 공명하듯 따라 뛰었다. 처음에는 우쮜가 타고 있던 말이 '대장말'이라서 그러나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두 말 모두 공평하게 서로를 따라 했으니.


 "어떻게 아침에 컵라면 하나만 먹고 이렇게 움직이지?"


 지헌이가 그렇게 말하기 전까지는 내가 오늘 먹은 것이 없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호숫가에서도 한참을 즐긴 후에야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이제 가자고 말했다.


흔한 차 밖 풍경



자유롭게 달린다는 건

 끝내주는 이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끝내주는 12시간이었다.

 미친 듯이 말을 타고 싶다는 말을 틈만 나면 해댔던 나는 이 날 이후로도 계속해서 말 타고 싶다는 말을 해댔다. 아는 맛이라 더 괴롭다고들 하지 않나.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걸 말 그대로 '동경'하고 있었던 나는 이제 그 맛을 알아버렸고 그 자유를 알아버렸고 몸의 괴로움을 이겨낼 때의 쾌감을 알아버렸다. 미련해 보일지도 모르고 조금 무서워 보일지도 모르는 초짜의 일단 부딪혀보자 식 승마는 그렇게 성공을 거뒀다.

 나는 이제 지나가다가 보이는 말을(당연하지만 주인의 허락하에) 자신만만하게 탈 수 있고 말을 잘 듣지 않는 말을 달랠 수 있고(정확히 말하자면 엉덩이를 때리면서 말을 들으라 독촉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잠깐만 맡아달라며 말고삐를 내밀면 다소 긴장하면서도 두 말을 잘 데리고 있을 수(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빌기는 하지만) 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나에게 주는 만족감이란.

 말말말! 말을 타고 싶다. 말을 타고 달리고 싶다! 애교 부리는 말과 얼굴을 비비면서 행복을 느끼고 싶다. 이런 행복을 느끼게 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그리고 드디어 몽골에 온 궁극의 목적을 달성함에 기뻐하며, 다음에도 또 말 타러 올게요!


안나최고


* 물론 말은 탄다는 행위는 굉장히 위험한 행위다. 우리가 타는 말들은 전부 길들여진 말들이기에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난폭한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말은 애초에 겁이 많은 동물이고 방심한 사이 말에서 떨어졌다가 죽은 사람들도 굉장히 많으니까. 그러니까 방심은 금물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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