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아레서점 Sep 30. 2021

"그게 무슨 서점인데?"에 답하기 (2)

무아레 서점 창업기 ep.2

온리 원(Only One)이 되는 방법


지난 시간에 이어 '어떤 서점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말하려고 한다. 어떤 기획이든 독창적이고 유일한 것이 되기를 모두가 바란다. 하지만 세상 아래 새로운 것이 없는 법, 어떻게 하면 온리 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1. 더 개인적으로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한 수상소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이 말의 원 출처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이다. 봉준호는 자신이 영화를 만들며 가슴속에 새기고 있는 말이라고 했다.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도 흐뭇한 얼굴로 그 말을 듣고 있는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흐뭇하고 찡한 마틴 스콜세이지 옹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소설을 쓰면서 여실히 느꼈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든 그것이 독창적인 이야기라는 말은 가장 구체적이고 세밀한 세계와 인물, 사건이 등장할 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을 설명할 때 "중소기업에 다니는 30대 여성"이라는 설명을 했을 때와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매운 주꾸미를 먹으며, 후임이 들어오면 퇴사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펌을 한 갈색 단발머리를 가진 여성"이라는 설명은 조금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세상에 없던 인물과 사건이 탄생하기도 한다.


나는 서점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서점은 모두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름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곳인데 언뜻 보면 그 서점이 그 서점처럼 비슷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건 파는 책들이나 운영방식이나 서가의 정렬 등이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들기 때문이고 서점의 보편적인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만들 수 있는 더 개인적인 서점은 뭘까란 고민을 했다. 나라는 사람의 특성을 반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소설을 좋아하니 문학 서점을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나 역시도 보편적인 서점의 모습에 기대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만들 서점은 공동주택 안에 위치해 있다. 
이 서점은 주택을 운영하는 회사가 자본을 내고 운영하는 곳이다.


오랜 시간 어떤 서점을 할지 고민하며 결국 이 두 가지가 핵심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어떤 종류의 서점을 한다고 한들 이 두 가지 요소는 서점을 관통하고 있을 것이므로, 이 구체적인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나 개인이 좋아하는 걸 하겠다는 게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 더 뾰족하게, 더 명확한 무언가를 가진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걸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혀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우리는 집을 테마로 한 서점이다.


2. 더 깊게

집을 테마로 한다고 범위를 좁히고 나서 나는 더욱 세밀하게 각론들을 만들어갔다.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독창적일까?"

그럴 것 같았다. 건축 서점 등은 존재하기는 했지만 수가 많지 않고 집을 테마로 한 서점은 들어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좋아할까?"

여기서는 큰 확신은 없었다. 고리타분하게 생각할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요즘 쏟아져 나오는 잡지, TV, 콘텐츠들이 집을 테마로 한 것이 많다는 게 위안이 됐다. 그리고 결국 집이라는 테마는 의식주라는 말처럼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르게 보고 싶어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집에 관해서 전문가는 아니고, 남들보다 대단한 지식이 있지도 않다. 나는 집을 짓고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는 한낱 직장인이니까. 그렇지만 회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대표님이나 다른 직원들을 통해서 많은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굳이 전문가가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책을 소개하고 집에 관계된 사람들을 연결해주기만 하면 되니까.


다음은 조금 더 생각들을 발전시켜보았다. 이 서점에서 다루는 '집'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무아레 서점은

● 집을 다룬다. 다만 좋은 집의 조건에는 집을 둘러싼 동네, 도시 등 이른바 '생활 기반 공간'을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공간과 관계된 삶의 양식들을 다룬다. 집에는 여러 가지 영역들이 포함되어 있고, 반려동물, 가드닝, 임대차 계약, 가구, 청소, 가족, 재택근무 등 많은 개념들이 함께한다. 이것들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
● 투자 수단이 아닌 현재의 더 나은 주거를 상상하고 연구한다. 집을 재테크 수단으로 보는 관점이 사실 강하기 때문에 나는 서점에서만큼은 거기를 빗겨 나고 싶었다. 
● 집을 테마로 하긴 하지만 집과 관계된, 혹은 집을 벗어난 활동들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은 폐쇄되어 있지만 열릴 수도 있다고 믿으며.

나는 내친김에 이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면 좋겠다는 일의 철학도 만들었다. 물론 이 철학을 지키고 실행할 사람은 일단 내가 될 테지만.

서점에서 일하며 우리는

● 우리의 고민과 맥락을 구성원과 외부에 투명하게 공유한다.
● 책을 파는 일 너머 새로운 영역을 상상한다.
● 자유롭게 참여하며 협업한다. 책과 공간, 그 외에 의미와 재미를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하여 함께 할 사람들을 찾는다.
● 느슨하지만 단단한 연대를 지향하며 서로에 대한 발전적인 피드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글로 쓰고 보니 별거 아니지만 이것들을 정리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많은 독립서점들을 돌아보고 사람들과 이야기한 결과물이었다. 그래 이정도면 더 개인적이고, 더 깊은 내용이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 단계로 가도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보면 긴 시간을 공상에만 빠져 있었으니 비효율적인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집과 마찬가지로 어떤 기획이든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지 않으면 반드시 흔들릴 때가 온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서점에 와서 참고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거라도 팔아야 서점이 유지가 될 거 같을 때, 다른 누가 와서 이렇게 하라고 조언 겸 공격을 할 때, 서점과 나를 지켜주는 건 이렇게 명문화된 원칙들과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이걸 잊지말자, 이건 나 자신과 책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다음 시간에는 무아레라는 이름을 짓게 된 과정과 공간 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정말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게 무슨 서점인데?"에 답하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