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젤리 May 09. 2023

재밌다 내가 말했다, 슬프다 그가 말했다

제임스 테이트『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최정례 역,창비,2017)

                                                                            

나는 나의 재미있는 시를 좋아하지만, 여러분 마음을 아프게(break)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에서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다면 그게 최고입니다. 시에서 초반에 웃었다면 마지막에는 눈물에 가까워지면 그게 최고입니다.

     제임스 테이트 (파리 리뷰 인터뷰, 2006)     


     재밌다. 그리고 슬프다. 그의 시는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일에서 시작한다. 이미지도 선명하다. 쉽게 다가가 순간순간 읽다 보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이미 길을 잃은 지 오래며 갈수록 헤맨다. 어디에서 길을 잃었을까. 다시 처음부터 읽어도 잃은 지점이 불분명하고 이야기는 공중 부양한다. 그것은 마치 힘차게 땅을 딛고 서 있다가 갑자기 하늘로 순간 이동하여 헤매다 사라지는 느낌이다.

     읽어 가는 과정이 재미없다면 과연 이 긴 시를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다행히 시인은 끝까지 읽게 하는 마법을 쓴다. 평범함을 낯설게 감각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그만의 상상력으로 요리한다. 상상력의 바닥에는 슬픔이나 아이러니, 허무가 고인다. 그는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같은 시에서 재미와 슬픔이 함께 있는 것이 최고라 했는데 그의 시는 재미와 슬픔이 한 무대에 있다.      


     산문시 형식을 바탕으로 낯설게 엮어낸 아포리즘 같은 시,「물고기를 애도하며」는 스탠리가 어항 속 물고기들에게 시비를 건다. 다양한 물고기는 물고기답게 자기 일을 하는데 딴죽 건다. 아침에 후회하며 사과하지만 용서받지 못한다. 일상에서 자기 기분에 따라 남을 비방하는 것은 후회하는 일이라 말한다.

     「늘 부족한 마취 화살」에서 마을에 곰 한 마리가 나타나 피자나 햄버거를 먹는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마취 화살이 없다. 전날 미식축구 경기에서 모두 사용했기 때문이다. 곰보다 더 극성스럽고 인간을 해칠 수 있는 인간에게 모두 사용한 것이다. 곰은 먹이만 필요할 뿐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 마취 화살은 인간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곰보다 못 한 인간이다.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이러니도 있다.「승진」에서는 개처럼 일하여 승진했지만. 전생의 개만도 못 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인간은 늑대들‘처럼 서로 경계하고 승진하려 한다. 다른 것은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해 승진해도 고층 건물 작은 방에서 혼자 지내는 신세다. 사람들과 멀어질 뿐이다. 사람들과 같이 지내고 사랑받던 전생의 개가 더 좋을까.「의무에 묶여서」에서 나는 대통령으로부터 부탁받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정상적으로 행동‘해 달라는 부탁이다. 그런데 나는 정상적으로 행동할수록 ’커피를 고양이라 말하듯이 ‘ 비정상 적이 된다. 정상으로 사는 사람이 비정상이 되는 현실이랄까.

     삶 또한  바라는 데로 이뤄지지 않는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연민을 느낀다. 누구나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크리스마스 최고로 잘 지내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데 자살하겠다고 친구가 전화하기에 나중에 살아있으면 다시 하라고 한다. 여자 친구는 엄마로부터 ’그녀의 엄마가 아니‘라는 전화를 받는다. 크리스마스조차 마음대로 즐기지 못한다. 「새해맞이」에서는 망년 파티에서 사소한 실수로 죽음에 이른다. 예측할 수 없는 게 삶이다.


     이 시집은 동물 소재 시를 읽을 때는 동화를, 다양한 인물을 소재로 한 시는 엽편 소설을 읽는 거 같다. 동화나 소설 같지만, 아닌 이유는 시가 확실한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 순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가고 있는지, 잘 갈 것인지 모르듯이 그의 시는 걷잡을 수 없다. 산문시가 없었다면 그의 시가 가능했을까. 아니면 할 말이 많은 시인을 위해 산문시가 태어났을까. 내용뿐 아니라 문체도 낯설다. 등장인물이 나오고 성별이 확인되면 ’내가 말했다‘. ’그(그녀)가 말했다 ‘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마치 중독성 있는 가요 리듬 같다. 리듬 따라 자연스럽게 읽히는 재미도 있다.     


     제임스 테이트(1943-2015)는 미국 캔자스시티 출생으로 미국 초현실주의 대표 시인. 18권의 시집 중『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는 14번째 시집. 30여 권의 저서가 있음. 예일대 젊은 시인상, 전미도서상, 퓰리처상,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상, 윌러스 스티븐슨 상 수상    

      

  *** 시집 읽으면서 고흐가 생각났다. 그림 ’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사람 얼굴이, ’ 별이 빛나는 밤에‘의 주먹만 한 별 등이 현실적 소재지만, 코믹하고 비현실적인 면이 제임스 테이트 시와 닮았다. 이 시집 들고 프랑스 아를을 여행하는 상상을 한다. 즐거움이 배가 되지 않을까.***


    

                                                




                 <감자 먹는 사람들>

            <별이 빛나는 밤에>















작가의 이전글 진짜 궁금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