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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Jun 20. 2023

유혹, 당신이라면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중 제임스 설터의「방콕」(2021, 다른


옛 연인이었던 사람이 불현듯 찾아와 여행을 제의한다.  


제목 방콕은 여자 캐럴이 전 연인 홀리스와 함께 가고 싶은 여행지다. 여행을 제안하는 여자와 겉으로는 냉정하지만 속으로 흔들리는 남자가 갈 수 있는 곳이다. 방콕은 흔들리는 삶이며 불안한 마음이다. 여행자 같은 부유하는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방콕」은 우리 삶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소재를 간결한 대화체로 긴장감 있게 전개한다. 남녀 ‘사랑과 배신’이 소재다. 고서점을 배경으로 두 남녀가 대화로 이끌어가는 소설은 한 편의 연극 같다. 인간의 욕망과 사랑, 배신, 상처, 후회 등의 감정이 두 사람 대화에 놀랍도록 은근히 배어 있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묻는다. 좋은 삶이란 무엇이냐고?    


홀리스는 의류 소매점을 10년 동안 하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안정된 삶을 산다. 이에 반해 캐럴은 추억을 더듬으며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 그녀는 아내가 있는 홀리스의 집을 찾아가고, 홀리스의 사무실을 찾아온다.  


내 메시지 못 받았어? 여자가 물었다.

받았어.

전화 안 걸었잖아.

전화 안 할 작정이었어?

물론. 그가 말했다.          

두 등장인물의 대화로 인물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캐럴이 서점을 찾아갔듯 캐럴은 적극적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작품 끝까지 일관되게 한다. 홀리스는 갑자기 들이 닫힌 캐럴이 부담스럽다. 대화하고 싶지 않은 수동적인 모습을 일관한다. 한 걸음 물러나 겨우 물음에 답하는 모습이다. 홀리스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캐럴은 홀리스의 현재 아내인 팸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찾아갔던 이야기와 성적인 말까지 거침없이 한다. 그녀의 도발적이고 조롱하듯 한 말에 홀리스는 그녀를 나가라고 한다. 하지만 캐럴은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홀리스를 ‘크리스’라 바꿔 말하며 “날 사랑했어?”라고 묻는다. “당신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어. 함께 있으면 난 삶의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어. 누구나 꿈꿔 왔던 모든 것을. 난 당신을 숭배했어”라고 홀리스는 말한다. 사람은 사랑에 빠졌을 때는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은 것이 사랑임을 보여준다. 캐럴이 배반했다는 것을 대화 속에 팸을 등장시키며 우회적으로 말한다. ‘다른 남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헝클어진 침대를 발견하지 않아도 된다’고. 단편 소설에서 보여주는 살균된 문장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늘어지게 설명하지 않는 선명한 보여주기 묘사다.     


캐럴은 충동적인 일탈일 뿐이라며 “진정한 행복은 내내 같은 것을 가지는 데 있다는 걸 몰랐다”라고 말한다. 캐럴의 진심이 묻어나는 후회다. 이것은 시간이 흐른 뒤에 오는 자각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탈이 있기도 하다. 작가는 이 일탈 사건을 뚝 던지듯 집어넣어 삶의 본질을 꿰뚫으며 통찰해 보자고 말한다.          

 

홀리스는 과거에 캐럴을 사랑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하지만 현재 그녀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여행을 거절하지만, 그 말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작가는 이렇게 홀리스의 마음을 선뜻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캐럴이 서점을 나갔을 때 “방이 헤엄치고 있었다.”라고 작가는 홀리스의 마음을 알려준다.


홀리스의 선택은 어떤 색깔일까. 캐럴의 적극적인 구애를 거절한, 가짜 삶을 사는 바보일까. 아니면, 지금은 아내 팸과 아이를 버릴 만큼 캐럴이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일까. 삶과 그런 척하며 살아가는 삶 중 어떤 삶이 좋은 삶일까?   


파리 리뷰 인터뷰(2011)에서 설터는 캐릭터 이름은 옷과 같아 바로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캐럴은 대화 중에 홀리스를 크리스라고 부르는 장면이 3번 나온다. 이에 데이브 에거스는 해설에서 크리스라는 이름은 흔하고 시시한 이름이라고 설명하며 캐럴은 홀리스가 자신을 진정 사랑했는지 알고 싶을 때마다 이 이름을 쓴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이름의 의미까지 알아야 하는 상황에서 번역서 읽기의 어려움이다.     

 

책 서두에서 각 작품 뒤에 배치된 해설을 통해 ‘공부가 되는 함께 읽기’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대화체 소설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일은 존재조차 몰랐던 세계를 발견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수록된 단편집 「어젯밤」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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