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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Sep 11. 2023

아이러니

「계단 위의 악마」(조힐, 2010)를 읽고

―『이야기들』 (문학동네, 2022) 중 「계단 위의 악마」 (조힐, 2010)를 읽고

                                                                               

안정효는 <글쓰기 만보>에서 활자의 크기나 모양, 배열로 시각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방법을 체제(體裁)라 했다. 한국문학에서 체제의 활용이 서양에서처럼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타자기가 아닌 원고지 창작 때문이었다(445) 고도했다. 최근에는 문서 작성 발달로 우리나라에서도 시 작품에서는 종종 볼 수 있지만, 소설에서는 본 적이 없다.

이러한 면에서 이 작품은 호기심을 끌 만했다. 「계단 위의 악마」는 시각적 효과가 뚜렷하다. 4페이지 정도를 제외한 모든 텍스트가 계단 형식으로 배열됐다. 계단식 텍스트를 읽다 보면 내용에 따라 빠르게, 숨 가쁘게 마치 실제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읽는 듯하다.


이 작품을 쓴 작가 조 힐의 본명은 Joseph Hillström King으로 미국 작가며, 유명한 스티븐 킹 아들이다. joe와 hill의 조합으로 만든 예명도 재밌다. 아버지 명성에 기대하지 않으려고 성을 숨겼고, 첫 출간도 영국에서 했다고 한다. 다수의 상을 탔으며 작품으로 『20세기 고스트』, 『뿔』, 『하트 모양 상자』 등이 있다.     


소설 배경은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 절벽에 세워진 도시 포시타노다. 포시타노에서 팔 백여 개의 계단 위에 있는 마을에 아버지와 사는 주인공 칼비노는 아버지 따라 돌 짐을 나른다. 사랑하는 사촌과 아랍인을 죽이고 지옥으로 가는 계단에서 한 아이 만나 거짓말할 때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새를 받는다는 우화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관계나 존재의 아이러니 보여주며 모든 소재는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예를 들면, 아들 칼비노보다 고양이를 더 사랑하는 아버지는 결국 고양이를 피하려다 사망한다. 칼비노는 사촌 리소도라를 종교로 생각할 정도며 위로받고 싶어 한다. ‘교회 대리석 제단처럼 차가운 그녀의 목덜미를 자주 상상했다. 그 제단에 엎드려 절하듯 그녀의 목덜미에 이마를 대고 싶었다.’(723) 라고 한다. 하지만 리소도라는 칼비노가 제단 같은 그녀의 목을 움켜쥐어 사망한다.


또한 지옥으로 가는 계단은 생명의 탈출구이기도 하다. 칼비노가 아랍인을 죽이고 마을 사람들을 피하고자 들어간 곳이 지옥으로 가는 계단이다. 한없이 내려가는 계단은 욕망이기도 하다. 삶에 대한 욕망이며 지옥으로 가는 계단이다. 칼비노는 그 계단에서 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양철 새를 칼비노에게 준다. 그 새는 큰 거짓말을 할수록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내가 이 말을                                                                                                                                          할 때 세상에서                                                                                                               가장 구슬프고 아름다운                                                                                             선율을 지저귀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746쪽     

칼비노는 새를 가지고 다시 계단 위로 빠져나온다. 계단의 한끝은 지옥이, 다른 한 끝에는 세상이 있다. 죽음과 삶을 이어주는 계단이다.

칼비노는 거짓말할수록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새 덕분에 아랍인과 리소도라를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거짓말 때문에 칼비노는 부와 권력과 명예를 얻는다.


우리가 아는 윤리가 이 소설에서는 빗나간다. 거짓말하면 잘 살면 안 되는데 칼비노는 거짓말한 후에 세상을 쉽게 잘 산다. 거짓말이 필요 없어질 때쯤 새는 죽고, 칼비노는 모든 것을 갖는다.


거짓말은 칼비노가 하지만 결국은 새가 거짓말 유포자다. 사람들은 새의 아름다운 소리 뒤에 무서운 거짓말이 있는 줄 모른다. 이렇게 새는 악이며 악은 계속 양산된다. 칼비노는 이탈리아 총통 무솔리니가 연설하는 라디오에서 새소리를 듣는다. 무솔리니 연설과 새소리는 정치가의 연설과 그 이면에 거짓이 있음을 절묘하게 풍자했다.  혀 아래에 도끼 들었다는 속담이 있다. 말은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도끼가 될 수 있으니 신중하게 말하고, 말 잔치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타인을 믿는 것은 좋지만, 안 믿는 것은 더 좋다.’라고 말한 무솔리니는 군중을 휘어잡는 연설가로도 유명하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어 특징인 빠른 속도와 억양의 음악성을 연설할 때 잘 이용했다고 한다. 작가가 이것까지 염두에 두고 무솔리니를 등장시켰다면 성공적이다.     


계단식 체제의 텍스트는 시각적 효과가 있지만, 읽는데 오히려 방해됐는데 이러한 아이러니는 아름다운 포시타노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음습한 계단 설정까지 잘 나타난다.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책을 안 읽는 아이러니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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