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눈 속의 구조대』(2019, 민음사)를 읽고
그가 돌아왔다, 그가 나타났다, 어느 것이 맞을까.
88년 2,000원. 제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 이어 『서울에서 보낸 3주일』, 『길안에서의 택시잡기』 이후 몇 년 만인가. ‘시집을 냈다고? 언제?’ 19년도 출판이라니, 한때 삼중당 문고를 사며 그의 작품에 푹 빠졌던 만큼이나 그를 푹 잊고 있었다. 가끔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그 이름을 확인했을 뿐이다. 80년대 후반에 시로, 90년대는 소설로 바람을 일으킨 그의 시와 소설은 파격적이고 자유롭고 재밌었다. 많은 혹평과 호평에 상관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게 했다.
이번 시집도 변함없이 시어로 쓰면 안 될 거 같은 언어는 거북하고 파격적이다. 자본주의를 비꼬고, 사회 비판과 자기 비하 등 그의 시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이다.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부제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처럼 요리 서라 할 만하다. 재료 무게뿐 아니라 요리 법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지금은 흔해 빠진 햄버거가 그때는 특별식이었다. 그 시절 날자 잡아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먹었던 기억이 있다. 오죽하면 ‘명상’까지 하겠는가. 그러면서 시인은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라고 비꼰다. 이렇게 요리한 햄버거는 다음 시집 「햄버거 먹는 남자」(『길안에서의 택시잡기』)로 등장한다.
오늘 저녁에도 어머니는 잊지 않고 햄버거를 사 오실까
그는 어머니가 계시는 아케이드로 전화를 한다
-중략-
저녁이 되어 어머니께서 햄버거 두 개를 사서
돌아오셨다. 그는 한 개를 먹고 한 개는
냉장실에 넣어 둔다
「햄버거 먹는 남자」 중에서
이제 햄버거는 명상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이 됐다. 일용하는 양식이기도 하다. 햄버거는 30여 년 넘게 우리 생활 깊이 파고들었고 지금은 특별식도 아니다. 세계 120여 개국에 있는 햄버거 대표 브랜드 맥도널드가,
2018년 3월 30일
맥도날드 경희대학교점이 폐점됐다
어찌 이 날을 울지 않고 지나가랴?
온통 맥도날드가 널려 있는 세상에
맥도날드가 없는 동네라니
우리는 노스트라다무스가 되었다.
「시일야방성대곡」 중에서
맥도날드가 없으니 종말이라 말하는 화자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찾아온” 장소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식 자본주의와 먹거리가 얼마나 우리들의 생활에 침투해 있었는지를 날카롭게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며 또한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걱정도 한다. 화자는 ‘보리수’ 같은 장소를 잃었다고 운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현실은 바뀌었다.
전 시집도 이번 시집도 화자는 시와 시 쓰기, 더 나가 문학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한다. 84년 시를 발표 후 35년이 지났어도 습관적이 아닌 노력하고 성찰하는 모습이 보인다. 시집을 “너무 뻣뻣하여 화장지로조차/ 쓸 수 없는 재생불능의 종이 뭉치”(「시집」)라며 엉터리라고 일갈도 하고, “소설가놈들 따분해/ 시인놈들 따분해/평론가놈들 따분해/ 극작가놈들 따분해/ 글 쓰는 것 따분해”(「글 쓰는 것 따분해」, 『서울에서 보낸 3주일』)라고 작가를 비판도 한다. ‘시인 장정일 씨 얼굴이 똥빛이’된 이유는 한국문학 책 월부수금을 받으러 온 수금원 때문이다. 수금원을 피해 도망가기 직전에도 화자는 시를 쓴다. “월부수금원이 무섭다”(「조롱받는 시인」, 『길안에서의 택시잡기』)고. 문학이 경제적 도움이 되지 못해도 시인은 시를 썼고 지금도 쓴다.
독자는 시를 건성으로 읽는다
그렇지 않다면
방금 읽은 시에 나오는 숫자의 합을 대 보라
「시」중에서
독자도 건드린다. 독자들도 열심히 읽으라 한다. 이번 시집에서는 시에 대한 고민과 시인에 대한 시가 많이 나온다. 결국 그는 독자나 평가에 상관없이 ‘나는 내 멋대로 시를 쓰자고 결심’ 한 듯 썼다. 특히 K2의 변주가 재밌다.
30여 년 전에 쓴 시들이 흙으로 쌓은 느낌이라면 ‘눈 속의 구조대’는 콘크리트로 쌓은 느낌이다. 더 단단하고 세련됐다. 장정일이 돌아왔고, 장정일이란 시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