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김승옥 문학상 수상집』 (문학과동네,2023) 중 「토요일 아침의 로건」(서유미)을 읽고
일어날 거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났거나, 막연히 불안했던 일이 갑자기 일어났을 때, 즉각 그 사건에 대면하기보다 의외로 순간 멍하거나, 더 거리를 두고 침착해질 때가 있다. 태풍 전의 고요처럼. 살면서 큰일을 겪게 되었을 때의 추상적 감정, 즉 절망이나 두려움을, 인물의 갑작스러운 뇌종양 판정이라는 구체적 상황으로 표현했다. 「토요일 아침의 로건」에서 작가는 인물이 절망적 사건에 발 담그기 전, 그 멍하거나 멈칫하는 순간 감정을 4주 동안의 시간으로 늘려 인물의 심리와 행동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김성호, 영어 이름은 로건이다. 50대 로건은 토요일 아침마다 스터디룸 카페에서 영어 선생님 젤다와 2시간 동안 비즈니스 영어 공부를 4년째하고 있다.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로건은 영어도 늘었고 회사 일에 만족하며 승진도 한다. 미국 지사장 발령을 앞에 두고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뇌종양이 발견된 후, 4주 동안 반복되는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이야기다. 일상적인 삶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디테일하게 인물의 변화 통해 잡아낸다.
토요일 아침은 대부분 사람에게 ‘휴식’이다. 하지만 로건의 토요일 아침은 업무 연속으로 영어 회화를 배운다. 덕분에 로건은 영어를 능숙하게 하게 되고 승진하며, 급기야 지사장으로 발령 났기에 영어 수업은 중요한 일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악성 뇌종양으로 미국행이 불가한 상황에서 영어 수업은 가장 먼저 필요 없는 일이 되었다. 자신을 확장하던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을 삭제해야 한다. 그 첫 번째가 젤다인 만큼 그녀와 수업하는 장면, 그녀의 행동, 습관 등에 세밀한 묘사가 집중되었다. 중요했던 영어 수업이기에 그만두겠다는 말을 선뜻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오리배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가볍게 흔들렸다. 묶고 있는 밧줄을 풀면 오리배들은 어디로 떠내려갈까. 영어 수업을 그만두게 되면 삶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그는 알 수 없었다. (106쪽)
로건은 영어 수업 중에도 계속되는 두통으로 두려움을 느끼지만, 더 큰 두려움은 수업 중단 후의 일상의 흐트러짐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반복이 고마운 삶의 아이러니다.
작가는 로건의 심리를 다음과 같은 상징으로 표현한다. 수업을 그만두겠다는 말과 함께 젤다에게 줄 리시안셔스 꽃다발을 준비했지만 전해주지 못한다. 이 꽃은 자른 상태에서 더 이상 피지 않으며 수명이 긴 게 장점이다. 이것은 로건이 비록 종양 판정을 받았지만, 수명과는 무관할 거라는 자신의 바람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그의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지 않고 오리배처럼 정박해 있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그의 옆을 지나 차례로 멀어질’(119쪽)뿐이다. 영어 수업을 정리하고 인제와는 다른 일상을 살아야 하는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없음은 흘러가지 않는 강물이고 정박해 있는 오리배로 상징된다.
로건은 지하철에서 영어책 오디오북이나 올드팝을 듣던 것을 피아노나 기타 연주곡으로 바꾸며 서서히 그만둘 결심을 한다. 그러다 결국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영어에서 완전히 마음이 떠나 영어 공부를 그만하겠다고 말한다. 로건의 시간은 결국 이렇게 바뀐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자 비로소 마음이 아팠다. (122쪽)
절망 앞에서 절망하지 않을 능력이 있을까. 로건의 시간은 이제 새로운 시간이 되고, 앞으로 막 딱 드리게 되는 지난할 수밖에 없는 그의 일상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