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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May 19. 2024

파니 핑크, 당신은 사랑 받고 있나요?

영화 <파니 핑크>, 도리스 되리, 1994

1. 사랑스러운 여자의 사랑이 언제나 달콤하지는 않다


"나 자신을 이렇게 팔 순 없"다고 말하는 파니 핑크는 겉보기부터 범상치 않다. 파니는 자신을 가리켜 "서른 넘어서 결혼할 확률은 원자폭탄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자조한다. 그러나 동시에 파니 핑크의 귓불에 매달린 해골—검은 복장과 대비되는 그 귀걸이는, 파니 핑크가 꽤 '그럴만 하다'고 관객들에게 속삭인다. 파니 핑크는 결혼하지 못해 마땅한 여자예요, 라고 고자질하듯이. 그렇게 영화는 시작된다.


파니는 서른이 넘었다. 결혼을 못했고, 당시 시대로 따진다면 노처녀다. 파니는 죽음 예행연습을 하는 모임에서 관을 직접 만들고, 그 관을 집으로 가져와 종종 누워 있는다. 파니는 사랑 받고 싶어 한다.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사랑은 정말로 결혼과 직결되는 것일까?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세상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파니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사랑의 탓으로 돌린다. 자신은 아무에게도 사랑 받지 못했음을, 그리하여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닐봉지는 구해주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파니는 좀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하다. 파니는 오히려 자신을 누군가로부터 구원 받고 싶어 하는 인물로 보여진다. 영화가 흘러갈수록 그 사실은 분명해진다. 파니는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다시금 움직이게 한 오르페오라는 점술사를 찾아가고, 그로부터 예언을 듣는다. 23과 관련된 남자만이 마지막 남자라고. 파니는 그 말을 믿는다. 믿기 때문에, 그리고 파니 핑크는 여태껏 사랑이 두려워 외면해 왔을지언정 결코 무시하진 않았으므로 자동차 번호판이 '2323'인 남자의 차량을 들이받는다. 파니가 그 남자의 차를 들이받았다는 것은 파니도 더는 자신의 사랑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으로 읽힌다. 파니는 외로움은 사랑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파니는 어떻게든 그 남자—관리인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쓴다. 파니에게 관리인은 단순히 마지막 기회인 것이 아닌, 어쩌면 파니가 평생에 걸쳐 찾아서 헤매온 단 하나뿐인 '사랑'처럼 보인다. 파니는 관리인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붙어먹는 것을 보고 나서야만 그 모든 게 자신의 달콤한 상상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파니가 보고 있던 관리인의 모습은 그저 파니가 바라던 유니콘 같은 남자였을 뿐이다. 여기까지, 우리는 다소 전형적일지도 모르는 로맨스 코미디 한 편을 봤다. 그리고 정확히 이 지점에서 영화는 재시작한다.


2. 다시 사랑하고 싶으니까


"한 번 더 사랑해 보고 싶"다고, 혹성의 존재들에게 말했었다고 주장하는 오르페오는 파니의 '재시작'을 돕는다. 파니는 관리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지만, 오르페오에게서 그 상처를 낱낱이 해부당한다. 파니는 오르페오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우리가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건 곧 그것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예언과도 같다.


파니는 오르페오의 허무맹랑한 말—그가 지어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전부 믿어준다. 파니는 오르페오와 사랑에 빠진다. 그것은 분명 사랑이다. 당신의 등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손으로 적고, 괜히 웃음을 터트리며, 한없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일까. 관객들은 파니 핑크의 사랑을 지켜보면서 그녀에게 허무맹랑한 오르페오의 말을 믿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연히 곱씹게 된다. 파니의 행동은 다소 무모하고 또 터무니없는 희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파니는 '사랑스럽다'. 영화는 점층적으로 파니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믿음으로 점철된 허무맹랑한 세계로 관객들마저 초대함으로써, 마침내 <파니 핑크>는 완성되는 것이다.


<파니 핑크>는 결국 사랑의 연속을 말하고 있다. 모든 인물은 사랑에 사랑을 거듭하면서, 화면 밖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사랑받고 있나요?" 사랑받는다는 것의 정의는 각자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파니 핑크가 말하는 사랑은, 종래에 비단 결혼이라던가 운명적인 남자만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파니 핑크는 그보다 앞선 곳에 다다랐다. 그녀가 처음부터 바라던 사랑은, 사실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곁에 머무는 것.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하여 당신이 나의 일부가 되어가는 여정. 파니 핑크는 오르페오를 꼭 자신의 일부,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영혼처럼 여겼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은 우리의 생각보다 다층적이고 찬란한 감정이라는 게 아닐까. 오르페오는 끝내 사라지고, 파니는 홀로 남는다. 그러나 이제 파니는 '사랑'을 안다. 파니는 더 이상 관짝에만 숨어 있지 않는다. 파니에게는 무엇보다도 뚜렷한 의지와 목표가 생긴 것이다. 파니는 오르페오를 통하여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야말로 오르페오가 가르친 적이 없는 종류다. 파니는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사랑을 일구어냈다. 파니는 그것을 아는 인물이다. 알고 있기에 파니는 관을 창 밖으로 떨굴 수 있었다.


이제 파니는 사랑받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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