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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분투 Jul 09. 2024

[업계] 해외의 책임준공 시장

부동산 PF 사업을 검토할 때, 금융기관인 대주 측에서 받는 서류에는 시공사의 '책임준공 확약서'가 포함되어 있다. 약정한 시한까지 건설 공사를 끝내고 준공 인가를 받을 것(책임준공 확약)이고, 확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대주단에 PF원리금을 변제한다는 약속이 포함된 서류이다.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대주단이 가장 큰 손해를 입는 경우는 건물이 완성되지 않아 헐값으로 매각되거나 이마저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대주단은 믿을 수 있는 시공사로부터 책임준공 확약서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PF대출을 취급한다. 


시공사의 신용도가 낮을 경우에는, 신용을 보강해 줄 제3의 기관이 필요하다. 시공사의 모회사가 연대해 책임준공을 확약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인데, 진흥기업의 공사를 효성중공업이, 이테크건설의 공사를 SGC에너지가, 동원건설산업의 공사를 동원그룹이, 강남건영의 공사를 제비스코가 연대하여 책임준공 확약서를 제출하는 경우 등이 이에 포함된다. 

 

모회사가 아닌 기업이 연대 책임준공 확약을 하기도 한다. 2023년 현대건설이 서울 서초구의 오피스 개발사업에서 웅진건설/무궁화신탁 등과 PM계약을 맺고, 사업관리와 함께 책임준공에 대한 신용을 보강하였다. 지분관계가 없는 기업 사이에 연대 책임준공을 한 사례로, 대형 건설사가 책임준공 보증시장에 진출하는 신호탄이 될지 관심을 모았던 건이다. 다만, 이후 유사한 계약을 추가로 진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 아직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확산될지는 미지수이다.  


현대건설 책임준공확약PM 사업 본격화, 중소건설사 돕고 사업도 확장(비즈니스포스트, 2023.8.30)


제3의 기업이 계약을 통해 책임준공을 연대확약하는 대표적인 케이스는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책준형 신탁)이다. 과거에는 시공사의 약정이 책임준공의 유일한 수단이었지만, 2016년 전후로 KB금융그룹의 KB부동산신탁과 하나금융그룹의 하나자산신탁이 책임준공 약정상품을 개발하면서 신탁사가 책임준공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부동산 호황기를 거치며, 신용도가 약한 도급순위 100위 이하의 건설사가 시공을 담당하는 사업에 책준형 신탁이 널리 적용되었고, 부동산신탁사의 효자 상품이 되었다. 


관련자료/기사 : 

신탁사 책임준공에 관하여(여의도 김박사, 2018.7.14)

부동산신탁시장, 회복세 속 실적 차별화(딜사이트, 2021.7.29)

든든한 최대주주 업고, 책임준공신탁 '주력'(딜사이트, 2022.6.20)


부동산신탁사의 책준형 신탁은 최근 부동산PF 사업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은 부실 위험이 높은 브릿지론이 부실의 진원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부동산 개발시장에서 가장 약한고리가 중소형 건설사임을 감안하면, 책준형 신탁을 통해 건설사 -> 신탁사로 이어지는 부실화 고리 또한 상황 주시가 필요하다. 특히 브릿지론이 '24년 부실화를 주도했다면, 본PF 단계에서 발생하는 책준형 신탁 부실화 문제는 보다 오랜기간 시장의 리스크 요인을 남게  될 것이다. 최근 책임준공 연대확약을 이행하지 못한 부동산신탁사와 대주단 사이에 손해배상 범위를 두고 소송이 벌어지고 있는데, 소송 결과에 따라 대주단과 신탁사 중 어느 한쪽은 재무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대주단-신탁사 소송전 후폭풍(딜사이트, 2024.5.22)

건설·신탁사 ‘책임준공계약 잠재손실’ 건설업계 위기 새 뇌관(전문건설신문, 2024.5.17)


소송 이후에도 남는 문제가 있다. 최근 악의 축으로 지목받고 있지만, 그동안 책준형 신탁은 중소형 건설사가 개발사업에 참여하는 수단이었다. 이미 지금도, 소송이후에는 더욱 더, 부동산신탁을 통한 책임준공 신용보강은 사실상 업계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별도의 보증상품이 없다면 중소형 건설사의 수익도 그만큼 쪼그라들 것이다. 정부에서는 건설공제조합을 통해 책임준공 보증상품을 확대하도록 하고 있는데, 보증 대상을 제한하고 있어 사실상 중소형 건설사가 이용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비교적 낮은 공사단가로 공사를 할 수 있는 중소형 건설사가 시장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 공사비를 낮추기 어려워지고, 부동산 개발사업의 수익성이 회복되기까지는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책임준공 줄이는 신탁사…건설공제 보증 대안될까(이투데이, 2024.5.12)


결국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책임준공 시장에서도 새로운 사업모델이 필요하다. 신탁사를 대신할 수 있는 기관(공공기관, 대형건설사, 대형금융사) 누군가가 신탁사가 담당하던 신용보강을 제공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해외 사업모델을 통해 New Biz의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보험사가 책임준공을 약정하는 경우가 많다. Surety Bond일종인 Performance Bond를 발행해 시공사(Contractor)의 부도 또는 책임준공 미이행시 공사 발주자(Owner)에게 손해를 배상한다. 손해를 배상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1) 시공사의 부도를 막기위해 재정을 지원하거나 (2) 자체적으로 대체 시공사를 지정하거나 (3) 발주자를 대행해 새로운 시공사를 지정하고 관련 비용을 지불하거나 (4) 책임준공 미이행에 따른 발주자의 금전적 손실을 보장할 수 있다. 가장 통상적인 방법은 (3)이나 (4)이다. 은행이 Bank Guarantee를 발행해 Performance Bond와 동일한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책임준공도 일종도 보험/보증상품이다 보니 보험사가 취급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다. 


관련자료 : 

Construction Bond Guide(Clark Willson)

Performance Bond and Bank Guarantees(PWC, 2016)


Performance Bond의 상품형태는 다양하다. 크게 보면, 무조건적 손해보상에 가까운 unconditional bond와 특정조건을 만족할 때 보상이 이루어지는 conditional bond로 구분된다. 또한 100%, 50%, 10% 등으로 보상비율을 달리할 수도 있는데, 보상비율에 따라 요율이 달라진다. 손해액의 100%를 보상하는 경우, performance bond 발행비용은 공사비의 1~1.5% 가량이며, 50% 보상은 0.7%, 10% 보상은 0.2%를 기준으로 사업의 규모, 시공사의 신용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국내의 책임준공 상품은 시공사/신탁사와 대주단 사이에 약정이 이루어진다. 영세 시행사가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시행사보다는 대주단의 PF대출 확보가 사업의 진행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대주단이 책임준공 여부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기 땜문이다. 책임준공 약정 수준도 매우 강한편인데, 천재지변을 제외하고 약정 시한 내에 책임준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시공사와 신탁사는 대주단의 PF대출 원리금을 대출 만기 이전에 차주인 시행사 대신 지급할 의무가 있다. 시공사와 신탁사의 신용도만 우수하면 대주단 입장에서는 책임준공 또는 대출금 상환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반면, 해외의 책임준공, 즉 performance bond의 구속력은 국내에 비해 약하다. unconditional bond가 아니라면, 시공사가 부도날 경우에도 바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선 시공사의 부도 여부를 확정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이를 결정하는 주체는 시공사/보험사이다. 시공사가 채무를 불이행하거나, 하도급사에 대금을 연체하거나, 공기를 맞추지 못했을 때, 발주자는 보험사에 performance bond의 이행을 요청한다. 보험사는 실사에 착수해 공사 진행과 시공사의 상황을 점검하는데, 일정한 요건이 만족되면 시공사가 '부도'를 선언하고 보험사에서 보상 절차에 착수하게 된다. 문제는 조사 과정에서 발주자가 자신의 의무를 다했고 시공사가 계약서에 명시된 의무를 불이행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손해액 전체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사지연/실패의 이유가 계약서 이외의 사항에 의해 발생했거나, 공사대금을 늦게 지급하는 등 발주자의 과실이 있을 경우에는 보험사에서 손해보상을 거절할 수 있고 지루한 소송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performance bond의 보상대상은 대주단이 아닌 발주자이다. 대주단 입장에서는 시공사의 책임준공 미이행으로 인한 대출 원리금 상의 손해를 보험사에 직접 청구할 수 없고, 차주인 발주자에게서 받아내야 한다. 발주자가 보험사에서 충분히 손해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발주자가 대주단에 원리금 지급을 거절할 경우에는 대출금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책임준공 미이행시에도 대출만기 이전에 시공사/신탁사로부터 대출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으므로 연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performance bond의 경우에는 시공사의 부도 이후 보험사가 실사를 통해 손해보상 여부를 확정하는데 시간이 소요(계약내용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통상 약 2년)되므로 대출원리금에 일단 연체가 발생하고 이후 이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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