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토큰 증권(Security Token)을, "분산원장 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Digitalization)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부동산, 미술품 등 실물자산이나, 주식 등 금융자산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한 증권(토큰)을 의미하는데, 도입을 위한 법적절차가 완료되고 나면 코인처럼 투자회사가 발행하고 거래소(한국거래소 또는 증권사 등의 장외거래소)에서 유통될 예정이다.
[보도자료] 토큰 증권(Security Token)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 - 자본시장법 규율 내에서 STO를 허용하겠습니다(금융위원회, 2023.2.6)
토큰증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조각투자는 2010년대 후반 등장했다. 부동산 쪽에서는 2018년 설립된 카사코리아에서 '카사'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DABS'라는 디지털 수익증권을 도입한 것이 효시이다. 고객의 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고 수익을 환원한다는 점에서 카사는 부동산 펀드/리츠와 비즈니스 모델이 유사하다. 오프라인 위주로 이루어지던 고객 모집, 계약체결, 수익배분을 자사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행한다는 점만 다르다. 온라인 기반이라는 점에서는 P2P나 크라우드 펀딩과 유사한데, 기업이 아닌 부동산에 투자한다는 점이 다르다(국내 크라우드 펀딩은 부동산에 투자 불가). 아직 부동산 크라우드 펀딩이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카사코리아는 2019년 기재부의 혁신금융서비스(샌드박스)로 지정되어 한시적으로 영업을 개시했고, 카사코리아 이후 빌드블록(빌드블록), 루센트블록(소유), 엘리시아(엘리시아), 펀블(펀들), 파이퍼블릭(리얼바이) 등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등장하였다.
[KASA] 한국 최초의 부동산 디지털 수익증권 거래소(삼성증권, 2021.7.30)
[블록체인 생태계 3편] 프롭테크 - 블록체인과 부동산의 만남(삼성증권, 2021.7.30)
예창환 대표 "카사는 부동산 파는 회사 아니다"(지디넷, 2022.5.17)
증권사 떠난 크라우드펀딩 시장...IBK투자證 분투(딜사이트, 2024.9.20)
부동산 조각투자 운영업체의 수익원은 부동산의 매입/공모, 운용, 처분 3개 단계로 구분된다. 자산 매입 및 공모시에는 매입보수 1%(자산가격 기준)와 상장수수료 1.2%(공모금액 기준/1회 발생), 펀드 운용시에는 운용보수 0.2%(공모금액 기준)와 배당수수료 2.0%(배당액 기준), 처분시에는 매각수수료 7%(매각차익 기준)를 받는다. 추가로 투자자가 조각투자 수익증권을 플랫폼에서 거래하면, 거래금액의 0.2%가 수수료로 부과된다.
100억원짜리 건물을 조각투자로 매입해 공모한 후 1년간 운용하여 120억원에 매각한다고 하면, 조각투자 운영업체가 얻는 수익은 약 3.8억원(=매입/공모수수료 2.4억원 + 매각수수료 1.4억원)에 불과하다. 코인거래소에서 투자자끼지 코인을 거래하듯, 조각투자 플랫폼에서 2차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조각투자의 IT 구축비용이나 직원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쉽지 않다.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a) 투자규모를 키우거나 b) 자산 매각차익을 거두거나 c) 투자자 간 2차 거래를 유도해야 한다.
부동산 조각투자 시장 살펴보기(Dealbook, 2024.7.16)
연 26% 수익률 홍보하더니...카사 투자실익 5.7%?, 뉴스토마토, 2022.3.28
한국에서는 a) 차입 불가 b) 개발사업 불가 등의 규제가 있어 조각투자 운영업체가 사업을 확장하기 어렵다. 조각투자 이용자가 대부분 소액을 투자하는 개인이고, 자산 매입 시 차입도 불가하므로, 조각투자 업체는 리츠나 펀드 같은 일반적인 부동산 투자기구가 참여하지 않는 소액 물건 위주로 투자한다. 수억/수십억원에 불과하한 물건들을 모아 운영비를 감당할만한 투자 규모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개발사업에 투자할 수 없다는 것도 사업확대와 수익률 측면에서 아킬레스 건이다. 이로 인해 카사코리아를 포함한 조각 투자 업체는 규제가 덜한 외국 시장 진출을 함께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PF 등 개발사업, 조각투자 기초자산 활용 불가"(연합뉴스, 2023.12.14)
부동산 조각투자, 물류센터-중대형 오피스-해외로 영토확장, 조선일보, 2022.6.4
수익 구조도 개선이 필요하다. 일반 운용사 대비 부동산 플랫폼 비즈니스는 IT인프라의 구축/유지에 별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대신증권이 인수하기 전, 카사코리아도 70여명의 직원 중 절반 가량이 IT인력(대표도 전문 개발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부동산 운용사 대비 인건비 부담이 크고, IT 플랫폼 운영에도 비용이 들어간다. 결국, 추가적인 IT 인력/장비의 운영비를 상회할만큼 플러스 알파의 수익을 자산 매입/운영/처분단계에서 만들어내야 하는데, 리츠/펀드 대비 매입 경쟁력이 떨어지는 조각투자 업체에게는 쉽지 않은 조건이다.
2차 거래도 활발하지 않다. 하나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자체 거래 플랫폼을 보유한 카사코리아의 수익권 거래는 일평균 0.2~0.3%로 주식(0.7~0.8%)에 비해 낮다. 상장리츠 중 시가총액이 가장 큰 SK리츠의 일간 거래회전율도 0.2% 가량에 불과한걸 보면, 조각투자 뿐 아니라 부동산 투자상품 자체가 주식에 비해 거래빈도가 낮다. 현금흐름이 대부분 확정되어 있는만큼 가격 변화가 작아, 조각투자 수익권을 매입할 이유가 크지 않다.
STO 시장에서 예상되는 증권사의 역할과 수혜(하나증권, 2024.1.10)
또한 정부는 조각투자를 토큰증권으로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발생과 유통을 분리시키려 한다. 부동산 투자상품은 조각투자 운영사가 만들더라도, 2차 거래는 한국거래소 또는 증권사 등의 장외거래 시스템에서 담당하도록 할 예정이다. 장외거래서비스 인증을 받지 못할 경우에는, 현재 부동산 조각투자 운영업체가 거두는 수익에서 2차 거래 수수료가 빠지게 된다.
조각투자/토큰증권이 활성화되려면, 조각투자 기초자산을 확대해 조각투자 운영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일단 투자할 상품이 있어야 투자자도 모인다. 정부는 토큰증권 시장 활성화를 위해 조각투자 기초자산을 부동산, 미술품, 음악 저작권 등에서 여러 실물자산으로 넓히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정부 방침을 보면 부동산 개발사업 관련상품(개발토지, PF, 브릿지론 등), 복수 자산, 해외 자산(처분 시 해외법의 적용을 받는 자산) 등은 투자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나, 부동산으로 국한해 보면 예상보다 국내 STO 시장 성장세가 더딜 수 있다.
금융당국, 첫 원자재 조각투자 허용 검토(뉴시스, 2024.7.9)
신탁수익증권 발행을 위한 기초자산 요건 등 가이드라인(금융위원회, 2023.12.13)
토큰증권 시장 형성에 대비해 최근 증권사/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권과 조각투자 운영사, IT업체 사이의 사업 제휴가 활발하다. 특히 금융사가 조각투자 운영사 지분에 투자하기도 하면서, 토큰증권 유통을 담당할 장외거래 업체와 조각투자 운영사 간의 사업 네트워크도 형성되고 있다. 토큰증권 시장 형성 초기에 금융사의 자금지원을 통해 발행사의 자금난이 다소 경감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STO의 기초자산 시장이 확대되고, 그 과정에서 발행사의 수익구조가 안정되어야 시장이 계속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