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목소리가 있습니다. 비행기 멀미가 있어, 타국에서 누워 쉬는 동안 나는 옆방의 목소리들을 가만히 체험합니다.
타국의 활기를 머금은 목소리들은 이곳의 오후 햇살과 잘 어우러집니다. 홀로 누워서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퉁기고 있다 보면, 정정한 기운들이 경험한 설레는 오늘들이 들려옵니다.
시원한 구름 위에서 마셔본 따뜻한 커피와, 연초인데도 한여름의 뜨거운 날씨와, 낯선 땅에 내려서 고개를 둘러봐도 오롯이 가족들이 함께 웃고 있는 낙원. 21명 모두 출석한 그 버스에는 자식들이 저들이 낳은 자식들과 웃고, 그 웃음의 중심엔 노부부가 있던 이야기는 벽 틈으로 철썩철썩 밀물이 되어 스며듭니다.
농한기에 야자 무늬 반팔 옷을 사입고, 노부부는 문 너머의 끝없는 노크소리를 듣고 맞이합니다. 낯선 문을 열면, 낯선 공간에 정겨운 얼굴들이 있습니다. 겨울의 야자나무에도 이들과 이야기하면 다시 고향에 내린 것만 같습니다.
나른한 나는 오늘 문 너머에서 정정한 그들을 듣습니다. 오래전 고향의 장지문 너머로 들었던 것과 동류의 소리를 낯선 하늘 아래에서도 듣습니다. 약간의 어지러움과 이질적인 계절에서도 고향의 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잠이 듭니다. 저녁밥을 기다리다 따뜻한 방바닥에서 잠이 들어버린 어린 시절처럼...
잠이 들기까지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일어나면 다 같이 밥을 먹던 형용할 수 없는 따스함을 추억합니다.
십여 년 후 잠에서 깨어 문을 열었지만, 한 분의 목소리가 이제 영영 사라졌습니다. 내가 잠에 들 수 있었던 건 정정한 목소리가 있어서였는데, 정정하던 목소리와 편찮으신 목소리마저도 꿈과 함께 증발되어 버립니다.
만약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 문을 두드릴 겁니다. 몇 번이고 두드려서, 살짝 놀란 엄마가 영문을 물으면 잠시 안 좋은 꿈을 꿨다는 핑계로 두 분을 차례대로 꼬옥 안아 드릴 겁니다.
수시로 환한 미소와, 비행기 안에서 맛있게 식사하시던 모습,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즐거워하는 그 모습을 옆에서 한번더 아니 몇번이고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는 하이얀 와이셔츠에 남색 바지를 입고 흰 모자를 쓴, 아름다운 정원 벤치에 잠시 앉아 쉬고 있는 한 인상 좋은 할아버지께 다가갈 겁니다. 왜 왔냐고 묻는다면, 그냥 손을 잡고 웃을 거예요. 웃지 않으면 눈물을 참을 수 없을 테니까요...
시간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2011년 1월 어느 휴양지에 나의 숙소 옆 부모님방 철문이 해지도록 두드리고 싶습니다. 절실한 두드림에 문이 열리면 마치 처음 본 것처럼 활짝 웃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