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와 노란 사빈

by 지구 사는 까만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수시로 밀려들며 청청한 바다를 말고 있다. 무한히 넓은 풍경 속으로 식구들이 하나둘씩 첨벙첨벙 뛰어오기도, 자박자박 걸어 들어오기도 한다. 나는 풍경에 들어오는 손님을 바라보며, 커다란 파라솔 아래서 코코넛 음료수를 마신다. 기온은 뜨거운데 마음이 그저 따스해진다.


12년 전 엄마 칠순 기념으로 부모님과 오 남매 내외와 조카들까지 21명 모두가 함께 했던 태국여행. 한평생 농촌밖에 없었던 부모님의 풍경에 예쁜 모래사장이 등장하고, 가장 익숙하고도 귀한 자식들이 풍경 속에서 웃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나이의 손주들은 편안한 반바지부터 예쁜 수영복 차림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해변에서 놀고, 파라솔 아래에는 자식들이 과일과 음료수를 마시며 망중한을 부리고 있다. 곳곳에서 나는 고성의 웃음소리가 뜨거운 햇살과 파도에 녹아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그리고 큰 소리를 내진 않아도 풍경을 만드는 노부부가 있다. 날씨처럼 뜨겁고도 따뜻해 보이는 부부가 그늘이 수북한 곳에 나란히 앉아있다. 누가 봐도 현지에서 구입한 것처럼 생긴 파랗고 노란 상하 의복을 각자 입고서. 파란 옷을 입은 할아버지는 바닷물처럼 파랗게, 노란 옷을 입은 할머니는 과일처럼 노오랗게 선연한 웃음을 지으신다. 자신들이 만든 젊음들의 웃음을 바라보면서...


파란 옷의 할아버지는 익숙한 액체 덕에 붉고 좋게 흥건하고, 노란 옷의 할머니는 붉은 파란 옷 할아버지 옆에서 햇살처럼 노랗다. 노란 모래사장과 파란 바다, 붉은 노을. 노부부는 오늘의 바다를 닮았다.


오늘의 바다 아래 우리가 웃을 수 있음에, 오늘의 바다가 우리와 함께 여기 올 수 있었음에 우리가 감사하여, 파도가 밀려오는 듯하다. 파도와 해를 등지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눈부신 실루엣들이 파도 소리에도 소리 없이 아름다워, 바다 같은 부모님의 깊은 눈동자에 한동안 드리워져 있었다.


여행 마지막 밤, 스무 명이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 후 꺼진 촛불처럼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큰오빠가 당시에 줬던 꽃다발이 시들듯 아버지는 시들어갔고, 당시에 노래를 불렀던 꼬마가수들은 부쩍 자라났다. 그래도 그날에 읽었던 편지는, 편지에 든 마음은 변하지 않아 엄마와 우리와 조카들을 지켜준다. 태국의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빠져나온 우리가 새로운 풍경에서도 붉고도 푸른 옷의 바다를 기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