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별을 세공하고

by 지구 사는 까만별




간조. 내 눈앞에서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드러난 뭍은 바닷길이 되어 누군가가 걸어가길 기다린다.

지금껏 내가 세상에서 디뎌온 무수한 발자국들이 길처럼 드러난다면, 글이란 조약돌이 특히 반질반질하게 빛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동경하여 머무른 걸음들은 진실을 말해주는 법이므로...


반질반질하게 동경해왔던 시간에 비해 본격적으로 내 길을 세상에 드러낸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막연히 언젠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사실상 꿈이 없는 사람과 다름없이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멀리 떠나면서, 내 삶에도 제한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모래시계에는 모래알이 쉼 없이 떨어지고, 언젠가는 한 알도 남지 않을 것이다. 부당하리만치 짧았던 이들의 시간을 슬퍼하는 대신, 내 모래알을 소중히 하자. 사랑했기에 더욱 짧았던 이들을 위하여.' 그때부터 우주에 미약한 나만의 먼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우주에 작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 우주를 깨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평생 고집하던 취향과 편견이라는 작은 세상을 부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작기에 단단하여 잘 안 깨지긴 한다만.


무수히 많고 단단한 편견의 알을 깨부수어야 글이 태어난다. 늘 좋아하던 것에서, 낯선 것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나만 몰랐던 거대한 우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돌아봐주길 기다려주는 낯선 땅이 있고, 낯선 땅에 의해 글과 내가 태어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미약한 내가, 한없이 동경하는 글로 가는 아득하고도 설레는 여정. 글을 쓰며 나아가는 발자국은 물을 통하지 않고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썰물을 기다린다.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뭍이 드러나면 누군가가 위로를 받으며 걸어갈 수 있는 바닷길이 될 수 있도록. 길이 햇빛에 반짝이는 날까지, 바닷물에 조약돌을 부수어나간다. 알을 부수어야 새로 태어날 수 있기에...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