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에도 이름이 있다

by 지구 사는 까만별




이름을 바꾸고 싶은 이유가 있나요?

이전에 나의 이름 위로 흘러온 삶들을 쭉 생각하다 나는 스스로 답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이름 위로 흘러간 이전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감사하다. 나의 이름 아래서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소중한 아이도 만났다. 그러나 나의 이름은 특별한 나의 선물들처럼 귀하게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감사한 나의 삶에 어울리는 이름을 받으리라... 막연한 목표를 마음에 숨기고, 평범한 이름을 두른 채 살아왔다.


현실에서는 태어난 순간 자신의 이름을 정할 수 없을지라도, 인터넷에서는 정할 수 있다. 몇 개의 이름을 거쳐온 후 나의 이름은 ‘까만별’이 되었다. 웹이라는 우주에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발광하지 않아 눈에 띄지는 않으나 분명히 현존하는 존재. 눈에 띄지 않는 시민들도 마음에는 미약하게나마 온기를 품고 있음을 담아, 일 년 전부터 글로 조금씩 감정들을 투사해왔던 거 같다. 마치 외계인들을 향해 인간의 존재를 보내는 과학자들처럼.


지구에 사는 외계인들에게 나의 존재를 보내기 이십여 년 전, 나는 내 뱃속에서 아이를 발견했다. 머리가 큰 '확인 생물체'에게 이름을 지어줄 기회가 생겼다.

‘이 아이는 나처럼 평범한 이름 때문에 고민하지 않기를...’ 불러오는 배를 향해 조용히 불러온 태명은, 아이가 세상에 나온 뒤에도 한자를 입고 이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현재.

지금도 내가 지어준 이름 위에서 마음껏 살아가는 확인 생물체에게, 나의 이름을 부탁했다. 웹뿐만 아니라 지구에서도 까만별은 '이름'답게 살고 싶었다. 눈에 띄지 않는 별들에게 끝없이 문자를 보내는 자신다운 이름 말이다. 다만, 개명 전 삶의 고마움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름의 앞글자만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조수석에서 고민하더니 명사를 던졌다. 흔하게 밝고도 빛나지 못했던 까만별은, 먹을 통해 어둡게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 딸아이에게 내 삶을 밝혀주어 고맙다고 말하자, 아이는 엄마의 삶을 돌려준 것뿐이라고 말했다.


개명허가 결정문이 옴으로서, 삶을 얻은 사람과 삶을 씻은 사람이 서로 이름을 선물 받은 관계가 되었다. 처서를 지나온 바람이 창문 안으로 들어와 때 맞추어 나의 두 번째 생일을 축하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