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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다음 Apr 08. 2022

마음이 덜 자란 아이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섧은 어둠, 슬피 누워 지냈던 밤.


 고독은 새벽을 지나 빛 번짐 가득한 아침이 되었다. 내면의 섧은 어둠 속, 중간 터널에는 미미한 숨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가로등 빛은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살포시 걷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었다.


 아이의 터널 속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째깍째깍 흘러가던 시곗바늘은, 째까닥. 째까닥. 하고 속절없게 지나갈 뿐이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유의미하게 쓰느냐는 개인의 씀씀이에 따라 달린 것이었다. 그래, 난 새로운 곳으로 도망쳐 나다운 인생을 살길 원했다.


 그렇게 전학 온 첫날, 아이는 선생님의 소개도 없이 조용히 자리에 착석했다. 교복도 없어서 갈 곳 잃은 어린양 마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짝이 있었고, 사소한 농담 하나에도 꺄르르거리면서 해맑게 웃고 있던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래도 앳된 과거의 모습을 훌훌 털어내고자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물로 모든 생활을 지새웠고, 심장에는 검은 물감이 주로 얼룩지곤 했다.


 하여간 마음의 색깔이 다채롭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아이는 환히 웃으며 얘기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어떻게 웃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입꼬리만 올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되려 어색한 인상만 남겨버렸다.


 "넌 어디서 전학 왔어?"


 마음이 온전치 못한 아이에게 누군가 상냥하게 다가왔다. 삭막했던 주위가 밝게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라서 순간 눈물이 흘렀다. 한편으로는 옛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라서 마음의 벽이 생긴 지 오래였다.


 "왜.. 왜 울어?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좋아서"


 아직까지만 해도 마음 한구석에는 가시밭길에 찔린 흔적이 가득했다. 흐르는 피눈물은 잠시 멈췄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연고를 덧바를 수 있었다. 그리고 짧은 말 한마디에 반창고까지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순간의 감정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어 약간의 마음만 내어줘도 한없이 기뻤다. 언제나 늘 관심에 목이 말라있었다.


 하지만 행복이 찾아오면, 불행도 엇비슷하게 돌아오는 순간이 잦았다. 원래 그런 게 인생의 법칙인 걸까.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은 너무도 쉽게 아이의 곁을 떠나버렸다. 무턱대고 떠난 건 아니었지만, 어떤 이가 떠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별의 형태는 다양했다. 다툼의 이별, 침묵의 이별, 죽음의 이별 등등.


 어린 나이에 뼈저린 이별을 경험하고 난 아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학원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평소에는 막힘없이 풀렸던 문제가 오늘은 지렁이 글씨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흐려져 흰색 검은색 구분도 안 될 정도로 숨이 턱없이 막혀왔다. 그 자리에서 펜을 놓다 말고 쉼 없이 울음을 토해냈다. 다행히 강의실에 학생은 아이 혼자 뿐이었고, 선생님은 원장 선생님을 모셔와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갑자기 왜 서럽게 운 거니?"

 "사람은 언젠가 이별하는 게 너무 슬퍼요."


 "사람은 언젠가는 이별해야 되는 거야. 아직 네가 어리기 때문에 지금은 힘들 수도 있어. 하지만 선생님도 늘 죽음의 이별을 경험한단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거야. 그래도 이렇게 슬퍼하는 걸 보니 마음이 참 여리고 따뜻하구나. 편의점에서 맛있는 거 하나 사줄 테니 먹고 들어가자."


 원장 선생님의 말씀은 어느 하나 반박할 곳이 없었다. 열다섯 살의 마음이 덜 자란 아이에게 안식처가 되는 말이었다. 마냥 꿈과 희망만 심어주는 말이 아닌,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미소로 공감해줬던 선생님의 말씀. 그렇게 아이는 세상의 이치를 하나 더 배워갔다.


 이제는 계속 아파할 수 없었다. 찰나의 기억으로 매 순간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픈 마음은 잠시 저편에 묻어두고, 그때의 나잇대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고 싶었다. 그랬던 아이는 웬 댓바람이 들어 매년 단상에 춤추러 나갔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는 혼자 노래 예선을 보고, 축제 무대에 올라 발라드를 기똥차게 불러댔다. 소심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어쩌면 내면의 아이는 밝은 기운을 지녔는데, 그동안 알게 모르게 감추며 살아왔던 게 아니었을까.


 사실은 주눅 든 모습 때문에 놓치고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상황과 때에 따라서 얌전히 지내기도 했지만, 이렇게 지내보니 득과 실 중에 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사소한 순간에 용기를 내지 않으면,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아, 그때의 아이는 커서 대학생이 된 지금도 학교 축제에 나가서 노래나 부르고 있다. 어제는 사회봉사를 하러 나갔는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혼자 나가서 노래 불렀어요? 우와, 어떻게 그러지?"


 사실 버스킹 공연 나가기 10분 전까지도 도망칠까 벼르고 있었던 '나'였다. 하지만 이 기회를 포기해버리면, 앞으로 더 어려운 일들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냐며 나 자신을 나무랐다. 총 세 곡을 준비했는데, 처음에는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어색함이 묻어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환호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점차 용기 낼 수 있었다. 덧없던 모습은 짧은 순간에 갈수록 자연스러워졌고, 이내 관객들과 소통하며 노래 부르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싶었다. 내가 그리는 모습이 실제로 실현됐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느끼곤 한다. 가끔은 알 수 없는 생각들로 이것저것 얼렁뚱땅 시도해보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이게 바로 나의 매력이다. 타인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것을 빠른 실행으로 옮기는 게 나의 매력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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