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도화지가 되어 반듯한 크레파스를 내미는 것
저녁은 오트밀과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였다. 한껏 오른 살을 덜어내려 오트밀을 찾았던 건데, 본의 아니게 다른 것도 사부작 먹어치웠다. 먹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지만, 먹고 나면 영 불쾌한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꽉 찬 속을 꺼뜨리기 위해 황급히 집을 나섰다.
오후 6시에서 6시 반, 그리고 7시 사이. 실오라기처럼 단숨에 지나가는 구름을 쳐다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적어도 내 시야에 들어온 색채들은 거짓말하지 않아서 좋다. 한 가지 색으로 형용할 수 없지만, 붉은색으로 겹겹이 물든 하늘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찰나의 순간을 한 아름 간직하려고 습관처럼 휴대폰 카메라를 찾았다.
'아 맞다, 걷기만 한다고 휴대폰 두고 왔었지..'
이렇게 필요할 때만 하나씩 중요한 걸 빠뜨린다. 감정이 빛바랜 하늘 같아서 꼭 찍고 싶었는데, 막상 보내주려니 아쉬웠다. 대신 눈으로 자연의 모든 것을 담고 나니 언제 아쉬웠냐는 듯 굴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빠르게 걸어 나갔다.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벼웠다.
혼자 어딘가를 걷는 행위는 인간관계를 고찰할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이타적인 마음을 세상에 흩뿌리고 나면, 넘겨졌던 조각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나를 향한 미소, 배려, 소망 등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과의 인연을 각별하게 여기는 내 모습이 좋았다.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상대방에게 퍼주는 일이 허다했다. 그저 웃으면서 고맙다는 몽글몽글한 언어들이 달콤했던 것 같다.
가만 보니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나의 이타적인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게 도움되지 않는 관계들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사실 거대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숱한 표현만큼 모조리 반응하지 않아도 되니, 곁에서 잔잔히 머무르기만을 원했다. 하지만 떠나갈 사람들은 먼저 떠나가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먼저 떠나가게 만들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 이유에 경악을 금치 못한 날들이 많았다.
다행히 나는 괴로운 인간관계에 빠져도 금방 일어서는 힘이 있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건의 크기가 클수록 일정 기간 동안 멘탈이 흔들릴 때도 있다. 어쨌든 일부를 제외하고, 조금만 아파해도 다음 날이면 활기를 찾는 내가 신기했다. 마치 도화지에 그림 그리던 와중 물을 엎질렀지만, 다시 새 도화지를 들이는 것과도 같았다. 아쉬워도 엎지른 건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도화지를 새 걸로 가져올 때면, 아쉬웠던 감정이 싹 사라진다. 한편으로는 혈흔 가득한 마음도 먼 구석에 존재하리라. 그러나 독기 품은 도화지라고 생각하면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다. 생각하는 만큼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 즉 어떤 인생을 그려나갈 것인지 고민해본다. 해외여행도, 세계 일주도 해본 적 없지만, 여러 갈래의 목표를 두고 여정하는 일은 즐거운 것 같다.
그래서 이 여정의 보따리를 이곳에 조금씩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정신건강사회복지사의 꿈을 갖고 있지만, 사실 부업으로 글쓰기와 유튜버를 희망한다. 벌써 한 가지는 적당히 이룬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나아가 글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대상은 일부러 정하지 않았다. 연령대, 소속 상관없이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던져주고 싶다. 대신 저마다의 해석은 자유임을 알린다.
내가 꿈꾸는 일은 분명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바람을 모아 오늘도 새하얀 도화지에 슥슥 그린다. 사실 브런치 작가도 먼 미래라고 느껴져 처음부터 포기하려고 했었다. 유명인이 되지 않아도 글을 사랑하는 마음은 충분했기에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 1월부터 준비했지만, 첫 번째 제출한 원고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홀로 괜찮다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때는 주변 사람한테도 부지런히 글 써서 브런치 작가가 될 거라고 말했다. 기억상으로는 연락하다가 한 사람한테 직접 말했던 것 같다. 다짐하는 건 바로 말하는 성격인데, 내가 동네방네 떠들진 않았던 걸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에게 응원받는 걸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 그래서 결과적으로 두 번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응원받았던 사람에게 또다시 축하의 말을 받았다. 많은 사람이 축하해주지 않아도 한 사람의 진심이 담긴 축하는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다짐하고 싶은 말이 있다. 더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기적으로 느껴지겠지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착한 가면을 쓰고 있다. 바로 내가 그랬기 때문에 이토록 더더욱 다짐하는 걸지도 모른다. 내게 아닌 사람은 자연스레 유영하듯 보내면 되니까. 그렇게 걸러져 남은 사람들에게 정성을 보이면 될 테니까.
인간관계와 일상 그 사이, 그중 내로라하는 도화지들은 저마다 아픈 구석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물이 엎질러져도 훌훌 털고 나와 같이 일어나면 어떠겠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창백한 도화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하얗기만 해도 마음껏 그릴 수 있는데, 어떤 이유로 창백하다 못해 쓸 수 없게 된 거냐고. 그런 이들에게 특별한 도화지가 되어 반듯한 크레파스를 내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