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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y Little Brand Nov 30. 2021

불편함이 매력이 되는 브랜딩

카페 루루흐

이 글은 https://everylittlebrand.com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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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카페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물론 커피나 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지난번에 서울 카페를 소개했으니, 이번에는 무려 강원도입니다. 속초에 위치한 '루루흐'라는 작은 카페예요. 2019년에 오픈한 이 카페는 100% 식물성 음료와 디저트만 판매하는 '비건 카페'입니다. '노 밀크, 노 버터, 노 에그'가 루루흐의 모토죠. 그럼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부터 루루흐의 브랜딩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한 권의 책을 만들듯 브랜딩을 한다면

  루루흐의 인스타그램 계정부터 살펴볼까요? SNS 계정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제가 왜 이 카페를 작고 멋진 '브랜드'라고 소개하고 싶었는지 눈치챌 거예요. 먼저 폰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루루흐는 SNS에 올리는 게시물은 물론, 카페의 메뉴판, 포스터, 이용안내까지 모든 브랜드 콘텐츠에 정해진 폰트만을 사용하고 있어요. 비건 카페라는 정체성, 그리고 심플하고 조용한 공간의 분위기와도 아주 잘 어울리는 폰트예요. 그것도 제목, 본문의 폰트를 다르게 사용하는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죠. 저는 이 브랜드를 알게 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루루흐 하면 떠오르는 건 이 폰트예요. 심지어 어디선가 비슷한 느낌의 폰트를 볼 때면, '이 폰트 루루흐 폰트랑 비슷하네?'라고 떠올릴 정도로요.

  폰트뿐만이 아니에요. SNS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게시물의 레이아웃도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하나하나가 마치 디자인 매거진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처럼 깔끔하고 보기에 좋아요. 실제 카페 공간도 SNS 계정에서 느낄 수 있는 인상과 같습니다. 그리 넓다고 할 수 없는 공간이지만 테이블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어 잘 정돈된 인상을 주고 있어요. 공간을 구성하는 소품들도 마찬가지. 정말이지 상상하는 브랜드의 '톤앤무드'를 명확히 정하고, 그것을 모든 채널에서 한치의 빠뜨림 없이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현실과 타협하다 보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브랜드 오너는 카페를 운영하기 전에 북 디자이너셨다고 해요(인터뷰 기사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되니, 이렇게 멋진 폰트 플레이가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것처럼 이 공간과 브랜드를 만들었구나,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끄떡여집니다. 하지만 멋진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끝이 아니죠. 더 중요한 건 그것을 지켜가는 것. 작은 브랜드, 더 냉정하게 말하면 '소상공 자영업자'가 이런 엄격한 브랜드 관리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 진짜 눈여겨봐야 할 부분입니다.


저희는 꽤 불편한 카페입니다

  사실 루루흐는 다소 '불편한 카페'입니다. 여기서의 '불편한'은 부정적 의미라기보다는 '제약이 많은'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주시면 좋겠어요. 루루흐의 운영 방침을 한 번 읊어볼까요. 2인까지만 착석이 가능하고, 2인 이상은 테이블을 따로 앉는 것도 불가. 대화는 옆 테이블에 방해가 되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과도한 인물 사진 촬영 금지, 자리를 이동하는 사진 촬영 금지, 대관 촬영 문의 거절. 어떠신가요? 여기까지 듣고 나면, 누군가는 '내가 내 돈 내고 왜 저런 곳에 가야 해?'라고 하실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제약이 많은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루루흐는 '소음에 방해받지 않는 - 조용한 카페'로 운영합니다. 까다롭고 불편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이 점 역시 루루흐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결을 가진 사람이 많듯이 카페 문화도 다양했으면 하고, 무엇보다 저희가 좋아하는 취향을 지키고 싶습니다."

  기획서를 많이 쓰고 보신 분들은 이런 단어를 떠올리셨을 거예요. 바로 '디마케팅'이죠.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 이미지 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소비자에게는 판매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루루흐에게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간'이라는, 지키고 싶은 취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규칙들을 만들고, 지킬 수 없는 소비자에게는 찾아오지 말아 줄 것을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요구합니다. 당장 하루하루의 매출이 머릿속에 훤한 '소상공 자영업자'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결심일 거예요.

  그럼에도 루루흐에는 주말이면 긴 웨이팅 줄이 생겨납니다. 루루흐가 지키고 싶은 그 취향을 좋아해 주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죠.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간을 찾고 싶은 사람들, 그들은 까다로움을 감수하더라도 루루흐에 갑니다. 제약이 까다로워질수록, 그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브랜드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알아보기 쉽습니다. 이들이 진정한 브랜드의 타깃이죠. 거꾸로 타깃이 명확해지면 이 까다로움을 지켜갈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브랜드를 지켜가는 건 오너와 소비자, 양쪽 모두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여기까지 듣고 나면 굉장히 이상적인 브랜딩이라고 느껴지지 않나요? 브랜드의 취향을 엄격하게 지켜가고, 그것을 좋아하고 함께 지켜주는 고객만 받는데,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많이 와준단 말이야?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루루흐는 실제로 고객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합니다. 고객에 따라서는 루루흐의 제약들이 '불친절'로 와닿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브랜드 오너들도 그런 고객에게 다가가 규칙을 지켜달라고 안내하는 것이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닐 거예요.

  하지만 제가 가본 루루흐는 전혀 불친절하지 않았어요. 반대로 굉장히 친절하고 살가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브랜드 오너들이 까다로운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브랜드를 까다롭게 지켜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인 것이죠. 아마 저처럼 소심한 사람이 카페 주인이라면 못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들은 계속 그렇게 해왔습니다. 무려 2년이 넘은 지금까지요.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나서, 혹시 루루흐가 예전의 모습을 버린 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방문 리뷰를 검색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제가 갔던 그때와 같네요. 루루흐가 멋진 건 바로 이 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디까지 브랜드를 지켜갈 수 있을까? 그건 브랜드 오너가 취사선택해야 하는 부분이 될 거예요. 어떤 부분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부분은 어디까지는 타협하고, 어디까지는 지켜낼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이 있어야겠죠. 이건 브랜드의 철학이 얼마나 대중에게 수용적인가, 오너가 지킬 수 있는 범위가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달라질 거예요. 그래서 조금은 두리뭉실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지켜가야 한다고요.




  다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정들이 명문화되어 마치 성경처럼 신봉되는 브랜드 관리 사례가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그런 것들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특히나 거대 규모의 글로벌 브랜드라면 더더욱 그랬죠.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너무나 빨리 변하는 걸요. 게다가 작은 브랜드라면 그런 사례를 쫓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브랜드가 지켜가야 하는 것들은 분명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정의하느냐, 규정집으로 만드느냐 마느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오래도록 잘 지켜가는 것이죠. 루루흐처럼 말이에요.


*브랜드 인스타그램 : @cafe_ruruq

*이미지 출처 : 브랜드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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