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도 끝이 뭉뚝해진 연필을 들고 아빠에게로 간다. 언니, 나, 여동생 우리는 이렇게 2살 터울, 딸 딸 딸 세 자매였다. 쪼르르 우리 방으로 가서 각자 필통을 열어 연필을 들고 아빠 앞으로 간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엄마가 저녁상을 무르면 아빠는 언제나 우리 세 자매의 연필을 깎아주셨다.
아빠 손을 거치면 연필 나무는 동그르르하게 잘 다듬어져 연필 깎이에서 막 나오는 연필 나무처럼 말끔했다. 한가운데 있는 연필심은 적당한 길이, 적당한 두께로 요리조리 잘 갈아 깎아주셔서 연필 깎이에서 막 나온 날렵한 연필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쓱싹쓱싹 필기감이 좋았고, 지우개로 지워도 깨끗하게 잘 지워졌었다.
손으로 돌려 깎는 그 샤파. 그 연필 깎이가 그 당시에 우리 집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아빠가 저녁마다 세 자매의 연필을 깎아주셨던 기억은 또렷하다. 내가 10살 되던 해,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집의 넷째. 남동생이 태어났다. 아빠가 커다란 분유통에 우리의 연필을 깎았던 것으로 기억되니 아마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까지도 우리 세 자매의 연필을 깎아주셨나 보다.
우리 집 소녀가 색연필이 자꾸 부러진다면서 울상이다. 새 색연필들은 하나같이 같은 길이, 같은 두께로 깎아져 있어서, 그게 그렇게나 잘 부러진다고.
45세의 젊은 우리 아빠처럼 내 아이의 부러진 색연필들을 깎아주었다. 색연필이니까 색을 칠하기 좋은 두께와 심지 형태로 색연필 심지를 정갈하게 정리해 주었다. 엄마가 깎아준 색연필을 사용해 색을 칠하니 훨씬 잘 칠해진다면서 소녀가 좋아한다.
소녀를 통해
우리 아빠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