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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LP창고 no.4

실연당하고 OOO 먹기..중경삼림OST

by 보라유리

실연당하고 진통제를 먹으면 효과가 있을까?


정답은 '있다'이다. 신체의 통증을 느낄 때와 마음의 아픔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똑같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이 아플 때 진통제를 먹는 실험을 했더니 정말로 유의미하게 아픔이 감소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실연당했을때 그렇게 찌질하게 아파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실연 당했을 때 진통제 말고 '유통 기간이 지난 통조림'을 먹는 사람이 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에 나온다. 이 LP를 산 이유는 딱 하나, 바로 그 장면 때문이다.


LP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LP를 많이 찍어내지 않는 음반 시장과,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한정반을 만들어내고 더 비싼 가격에 파는 유통구조 덕분이다. 비싼 가격에 망설이는 사이 LP는 어느샌가 슬그머니 품절되고 만다. 이 망설이는 기간이 LP가 '유통'되는 기간이고, OST의 경우는 더 짧다. 영화가 나올때 반짝 하고 나왔다가 영화가 들어가며 같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코 싸지 않은 가격에 구매를 망설이는 사이에 품절됐던 <중경삼림> LP가 작년에 리메이크 됐다. 옛날에 발매된 오리지널이 아니어 아쉽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음반을 열어보며 잠시 중고등학교 시절 유행했던 홍콩 갬성도 떠올려본다.


사실 '상한 통조림'과 끝부분 비행기표 신을 제외하고 영화줄거리가 가물하다. 그래도 영화음악 음악 전체를 듣고 있으니 영화 한 편을 귀로 감상하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너무 유명한 첫곡 <몽중인>이 상쾌하게 문을 열고 난 후 왠일인지 음악은 '이별 이야기' 아니랄까봐 단조 일색이다. 그러다 역시나 훌륭한 B면 첫 곡에서는 비장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다 급하게 태세 전환을 이룬 후 <캘리포니아드림>쯤 가면 '뭐 이까지것 인생 다 그렇지'하며 초월의 경지에 이른다. B면 맨 마지막 곡 Diana Washington의 <What a Difference a day made>가 오늘의 나의 픽! 왕가위 영화에 나오는 재즈 음악은 역시 예술이다.


사랑의 기승전결을 담기엔 음반이 너무 짧지만

사랑의 여러 모양을 담아낸 <중경삼림>ost를 듣고 있으려니, 나중에 실연을 당한다 해도 왠지 이 음반을 듣지 진통제는 안먹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LP

#그녀의LP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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