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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유리 Aug 16. 2022

꿈 사용법

내가 잠들었을 때도 나를 안내해주는 것

찌질했던 영화의 주인공이 갑자기 각성하기 시작한다.

마블 영화의 캡틴아메리카도 그렇고 헐크도 그렇고 스파이더맨도 그렇다.

어떤 그 무엇인가가 계기가 되어 그들은 깨어나서 자기가 온당 살아가야 할 것 같은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때였던 것 같다. 무너지던 내 삶에서 갑자기 방향이 바뀐 그 순간.

베트남 달랏, 다락방 같은 창문이 나있는 방갈로에서 나는 울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동생은 발꿈치도 예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생은 잘 사는데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깨어나는 동시에 '니 복은 기까진가 보다'라는 삼천포 시어머니 말씀이 귓가에 환청처럼 들려왔다.      

 

더 이상 희망 없는 결혼 생활에 하루 천 원으로 어렵게 버티며 고단하게 살았던 베트남 시절,

마지막으로 꼭 여행해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더위에 지친 프랑스인들이 휴양지로 개발해 놓은 고산도시 달랏. 한국에 돌아와 마지막으로 귀국 준비를 하였다. 비행기표는 왕복으로 끊고 한국에서 모아둔 돈을 찾아 간신히 여행비용을 마련했다. 7년 동안 살았던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1박 2일 여행을 하였다. 그렇게 어렵게 갔던 여행지에서 고작 나는 발꿈치를 비교당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서럽게 헉헉거리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호텔 가구 서랍에 있는 종이와 펜을 꺼냈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던 스무 가지 꿈을 써 내려갔다. 가장 슬픈 순간에 가장 희망적인 상상을 하지 않고서는 그 순간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인생의 찌질함과 작별하게 된 순간 말이다.


양자역학에서 물질은 퀀텀점프를 한다고 한다. 낮은 에너지 수준에 있는 아주 작은 물질(양자)이 높은 에너지 수준으로 이동할 때 그 이동은 연속적으로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계단을 오르듯이 뛰어오른다는 것이다. 퀀텀점프의 순간 심지어 그 물질은 사라지는 것처럼 관찰되기도 한다. 사람도 인생에서 두 번에서 다섯 번 정도 퀀텀점프를 겪는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순간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요즘 이순신 장군의 영화 <한산>핫한데, 거북선도 사실 꿈에서 본 것이라고 한다. 굶주리는 병사들을 위해 혹시 먹을 것이라도 구할 수 있을까 하여 해변을 산책하던 이순신 장군은 갑자기 입에서 불을 뿜는 거북이를 발견한다. 하도 놀라서 꿈에서 깨어나 바로 거북선을 그리게 했다는 기록이 난중일기에 전해진다. 적과의 수적 열세에서 고민에 빠져있던 이순신에게 꿈은 퀀텀점프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꿈에서 썰매를 타다가 썰매가 갑자기 빛의 속도보다도 빨라지자 주변이 하얗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꿈의 당사자는 청소년기의 아인슈타인으로, 이 꿈이 상대성이론을 고안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비틀즈의 <헤이 쥬드>도 꿈속에서 들었던 멜로디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인생의 퀀텀점프 순간을 알려주는 것이 꿈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서 꿈은 밤에 꾸는 꿈이다!) 내가 일명 발꿈치 꿈을 꾸지 않았다면 나는 어쩐지 그 자리에 그냥 그 모습으로 머물렀을 것 같다. 심지어 꿈은 내가 잠을 잘 때조차 나를 안내해주는 별빛 같은 존재이다. 꿈이 나에게 말해주려는 것을 섬세하게 감지해낼 수 있다면, 그렇게 꿈 사용법을 잘 알 수 있다면 나에게 찾아오는 몇 번의 퀀텀점프의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 꿈을 꾼 이후 나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나는 매일 밤 발꿈치에 로션을 바르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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