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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Apr 17. 2023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저는 앵무새 집사입니다

코로나 덕분에 키우게 된 우리 집 앵무새 이야기

  “짹짹!” “짹짹짹 짹~~!!”

 

  우리 집은 매일 앵무새들의 지저귐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그것은 깊은 산속에서 이따금 메아리로 울려오는 산 새들의 호젓한 지저귐과는 다르다. 어서 빨리 이 답답한 새장 문을 열어달라는 듯한 다급하고 조급한 앵무새들의 호통 소리 같은 지저귐이다.


“일어나! 아침이잖아!!” “어서 빨리 새장 문을 열라고! 이 게으른 집사야!!”


  나는 이불속에서 앵이들의 잔소리를 견디다 못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새장 앞으로 간다. 그러면 이 귀여운 생명체들은 새장 문 바로 앞에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매달린 채 곧 맞이하게 될 자유에 흥분해서는 더 목청껏 떠들어댄다. 새 장 문을 열면 마치 전투기가 출격하듯(내 얼굴을 치고 나갈 기세로) 튀어나와 좁은 거실을 왕복으로 마음껏 비행한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이러한 광경에 나는 매번 헛웃음이 나온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래도 사랑스럽고 귀여워 죽겠어서.


  좁은 새장을 벗어나 집 안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앵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그 기쁨도 잠시. 이제부터는 전쟁이다. 아침을 차리는 중간중간 내 머리와 어깨에 들러붙어 온갖 참견을 다 해댄다. 아직 아기들인 보름이 와 달이는 먹어서는 안 될 사람 음식에도 호기심을 보이며 들이댄다. 나는 뒤통수에도 달린 눈을 작동시켜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때로는 호통을 치며 소란스러운 하루를 시작한다.


   앵무새를 키운다는 건 집 안 인테리어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식물이나 꽃을 들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여기저기 싸놓은 새똥을 치워야 한다. 제일 심각한 건 아차 하는 순간 모든 종이책들이 물어 뜯긴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2박이 넘는 여행은 포기해야 하며 매일 신선한 물과 모이를 갈아주고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과 새 장 청소를 감내해야 하는 수고가 동반된다.


  이런 고된 앵집사의 길로 나를 안내했던 건 다름 아닌 인스타그램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2022년 3월,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막내부터 시작해 내게로 옮겨온 코로나 바이러스로로 인해 나는 안방에서 홀로 며칠째 격리 중이었다. 종일 좁은 방 안에 갇혀 있다 보니 바깥세상이 궁금해서 침대에 누워 열심히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팔로우해 놓은 인친님들의 피드를 스크롤하다 어떤 사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마치 동화책에나 나올 것 같은 작고 예쁜 파랑새가 찍힌 사진이었다. ‘세상에~이렇게 예쁜 새도 있어?  인형인가?’ 나는 댓글에 새 종류가 무엇인지 물었고 모란 앵무새라는 답글이 돌아왔다. 평소 조류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심지어 싫어했다. 특히 발가락을)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그 파란 앵무새의 여운은 오래 내 마음에 남았다.


   나는 우리 가족 채팅방에 모란 앵무새의 사진을 올리고 장난 반 진심 반의 마음을 담아 ‘이쁘지? 우리 이 새 키워볼까?’라고 물었다. 평소 별명이 ’ 김추진‘인(추진력이 너무 좋아서) 큰 아이로부터 ’ 좋아!‘라는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아이는 그날로 네이버 앵무새 카페에 가입하더니 폭풍 검색을 통해 내가 본 앵무새와 비슷하게 생긴 아기 앵무새(암컷이다)를 분양받을 곳을 알아냈다. 다음날 아빠와 함께 나가 앵무새 용품을 산 뒤 인천까지 달려가 그 새를 분양받아왔다.


  아기새가 오던 날, 방에서 발이 묶여있던 나는 그저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자는 작은 아이의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내 심장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엄마! 빨리 나와봐!!”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쓴 뒤 떨리는 가슴으로 거실로 나갔다.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안 된 작디작은 파란 아기새가 새 장 안에 있었다. 마치 인형 같았다. 조심스럽게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 보았다. 한 손에도 잡힐 만큼 작았다. “안녕 멜로디!” 기다리면서 생각해 둔 멜로디라는 이름을 살며시 불러보았다. 그날 새까맣고 동그란 작은 눈으로 내 손바닥 위에서 나를 올려다보던 멜로디의 표정과 보드라운 감촉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렇게 나의 앵집사의 길은 시작되었다.


  아기 멜로디는 사람손을 많이 탔다. 새 장 밖에 있을 땐 늘 사람에게 착 달라붙어 쉴 새 없이 놀아달라 보챘다. 옷소매 속이나 네크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놀다가 졸리면 내 손바닥 위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볼을 살살 문질러 주면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반대쪽 볼도 마저 내밀곤 했다. 우리가 외출하거나 밤에 잘 때는 안전상의 이유로 꼭 새장에 넣어두는데 그럴 때면 왜 자기만 새장 안에 들어가야 하냐는 듯 억울함을 호소하며 이리저리 도망을 다녔다.

식구들이 모두 밖에 나가있는 낮에 멜로디는 혼자 새장 안에 있어야만 했다. 안쓰러웠다. 외로워 보였다. 멜로디가 우리에게 온 지 삼 개월쯤 되자 식구 중 누구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는 멜로디의 짝꿍을 알아보고 있었다. 이건 마치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며 결심했던 우리 부부가 큰 아이 세 살 즈음 혼자 노는 뒷모습에 울컥하며 둘째를 결심한 그때와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로 데려온 아이는 리듬이다. 이번에도 우리 집 김추진 어린이는 폭풍 검색을 통해 구름 같은 하얀 아기 앵무새를 찾아냈다. 파란 하늘 같은 멜로디와 찰떡궁합처럼 보였다. 수컷인 리듬이는 소심하고 사람 손을 그다지 많이 타지 않았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멜로디는 리듬이 가 오자마자 너무 흥분하며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댔고 아직 어리고 겁이 많은 리듬이는 그런 연상녀의 적극적인 구애를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둘은 마치 바퀴벌레 한 쌍처럼 시도 때도 없이 애정행각을 벌이더니 어느 날 우리에게 두 마리의 아기새를 선물로 안겨주었다.


  아기새들은 내게 십여 년 만에 다시금 육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6시간마다 한 번씩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반은 먹고 반은 다 흘려버리는 아기에게 떠먹여 주는 것. 바로 이유식이었다. 한 달 정도 어미새가 알을 품고 부화를 한 후에는 사람이 이유식을 먹여야만 사람손을 타는 반려조로 함께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한 달 된 아기 새 두 마리를 위해 방 하나를 비웠다. 온도와 습도계를 달아 적정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3주 동안 여섯 시간 간격으로 하루 세 번 이유식을 먹였다. 자다가도 일어나 먹이고 밖에서 일하다가도 뛰어 들어와 먹였다.

처음에는 날기는커녕 잘 걷지도 못하고 털도 듬성듬성했던 아기새들은 시간이 갈수록 윤기가 흐르는 털로 가지게 되었고 날갯짓을 하며 작은 통 안을 퍼덕이더니 어느샌가 방안을 비행하고 있었다. 보름달이 뜬 어느 날 그렇게 아기새들은 다 커서 방에서 나와 거실을 훨훨 날아다녔다. 이름은 보름이 와 달이로 지어주었다. 내 손으로 이유식을 먹여 키워서인지 보름이 달이는 멜로디와 리듬이 보다 훨씬 더 내 곁에 오래 머문다. 아기들이라 아직 호기심이 많고 활발해서 보기만 해도 그저 흐뭇하다.

  

  하루는 친구가 16개월 된 딸을 데리고 집에 놀러 왔다. 아기는 처음 보는 앵무새를 홀린 듯 바라보더니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확신한 듯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나는 아기에게 앵이들의 보드라운 감촉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마침내 손바닥 위에서 간식을 먹느라 정신이 팔린 것 같은 달이의 등을 쓰다듬어 보라고 내밀었다. 살짝 쓰다듬을 줄만 알았는데 힘조절이 안 되는 아기는 손으로 새를 꽉 움켜쥐었고 놀란 달이는 그만 부리로 아기 손을 쪼고 말았다.

“으앙~~!!!”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당황했다. 보들보들 여린 아기 손에 콕 찍힌 부리 자국이 선명했다. ‘새를 살살 쓰다듬어 만져야 한다 ‘라는 매뉴얼은 당연히 아기에게 없을 터인데 애를 둘씩이나 키웠어도 이렇게 아기의 마음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래도 아기는 아직 그렁그렁한 눈물방울을 매단 채 새를 향한 눈길을 거둘 줄을 모른다. 그리고 가끔 웃는다. 아기 눈에도 새는 그저 이쁜가 보다.


  꽃 만지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매일 다양한 꽃을 만난다. 봄에 만나는 꽃 중 실크처럼 부들부들한 꽃잎을 가진 버터플라이가 요즘 한창인데  나는 늘 그 보드라운 감촉을 느낄 때면 우리 집 앵이들이 떠오른다. 다른 꽃들과 어우러져 있을 때도 그 이름처럼 팔랑거리며 날아갈 듯 가벼운 자태 역시 앵이들과 많이 닮았다. 오늘도 나는 일하다 말고 하늘거리는 버터플라이를 넋 놓고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왜 새를 키우는가? 그건 아마도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고도 새를 바라보며 웃던 아기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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