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어가는 작약에도 시선은 머문다
나는 늙는 게 싫다. 어떤 이들은 나이가 들면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애써 예찬을 하지만 아무리 멋진 말로 포장을 해도 나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저 서글픈 현실이다. 오십을 향해 가고 있는 사십 대 중반인 지금.. 삼십 대에서 사십대로 넘어갈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여자 나이 사십 대까지는 그래도 관리를 잘하면 몇 살 아래로 어려 보일 수 있고 ‘예쁘다’라는 말이 어울릴 수 있겠지만 오십이 넘으면.. 아무리 예뻐도 더 이상 ‘예쁘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다.(오십 대 이상 여성 여러분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곧 되겠지요. 오십이 넘은 여자가…ㅜㅠ)
오늘 아침에 머리를 말리다 또 흰머리를 발견했다. 이제는 한 두 개가 아닌 뭉텅이로 보이므로 이제 곧 ‘흰머리 염색’의 시련이 다가올 것 같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나는 늘 소스라치게 놀라며 행여 남의 눈에 띌까 얼른 짧게 잘라 숨겨버리기 바쁘다. 그리고는 피식 웃는다. 누가 본다고~ㅋ
그래도 가끔은 정말 멋있다고 생각되는 오십 대 이상의 여성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물론, 젊은 여자가 가지고 있는 생생한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들에게는 ‘우아함’ 혹은 ‘여유로움’이라 부를 수 있는 멋스러움이 있다. 차분해 보이는 머릿결과 매끄러운 피부 그리고 단정한 옷차림은 당연히 그런 이미지를 연출하는데 큰 몫을 한다. 그리고 그런 옷차림의 대명사는 나에게 있어 바로 ‘코트’이다. 두툼한 점퍼보다 날씬해 보이고 딱히 차려입지 않아도 어느 자리에도 처지지 않는 멋스러움이 있는 코트.
시들어 가는 작약을 본 적이 있는가?
작약은 아주 작은 꽃봉오리에서 점점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피어나 그 자태를 뽐낸다. 마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생기를 온몸으로 토해내 듯 활짝 만개 한 뒤 점점 그 꽃잎은 바래져 간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만은 그대로이다. 그래서인지 빛바랜 색상의 작약은 초라하기보다는 우아함을 지켜내는 듯 고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큰 화형과 짙은 향기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활짝 핀 선명한 작약도 물론 아름답지만 때로는 나이 든 우아함 같은 지는 작약의 모습도 아름다워서 나는 꽃 작업을 할 때 종종 일부러 그 색이 바래지기를 기다렸다 작품에 사용하기도 한다.
수줍게 피어나 화려함을 지킨 뒤 고고하게 지는 작약처럼 나이 든 여자의 고유성인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 나는 아마 내년 겨울에도 코트를 입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