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여성들과 함께 누린 봄의 왈츠
4월부터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 여성들을 위한 클래식 음악과 꽃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작하기 전에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조금 서툴지만 한국말로 또박또박 인사하는 그분들의 모습은 어린아이처럼 상기되어 있다.
“오늘 오랜만에 직장 휴가 내고 왔어요.”
”꽃은 처음이고 클래식 음악이 뭔지 잘 몰라요.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
아이처럼 수줍게 말하는 분들. 아마도 오랜만에 일을 쉬고 누리는 문화생활이 아닐까 싶다. 나는 처음이어도 괜찮다고, 우리는 오늘 무엇인가를 배우러 온 것이 아니고 좋은 음악과 아름다운 꽃으로 즐거운 놀이를 하며 힐링을 하러 온 거라고 말했다.
인종, 문화, 언어등 모든 것이 다른 남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도 큰 아이 다섯 살까지 십여 년을 네덜란드에서 살며 아이를 키웠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고단함이 하루하루 얼마나 클지, 이렇게 한 번씩 숨 쉬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할지 알 것 같았다.
2004년 우리 부부는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 하루는 옆집에 사는 할머니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아임 프롬 코리아~” 할머니는 차이나에 있는 곳이냐며 되물었다. 한국 유학생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남편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유학생 아내들을 위해 더치어나 영어 클래스, 혹은 요리나 운동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지원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늘지 않는 더치어 실력으로 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끔 전화로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해야 할 때면 심장이 방망이질 치며 위축되었다. 의사소통은 더 불가능해져 늘 내가 손해 보거나 일이 잘못 진행되기 일쑤였다. 내가 학교에 다니게 된 이후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할 때면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해 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고 도와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입장이어야만 했다. 늘 당당해 보이는 그곳 사람들 속에서 나는 한 없이 작고 초라한 존재로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런 나에게 주말에 가질 수 있는 문화적인 경험은 더없이 소중한 위로였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한 유학생이었지만 의외로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의 폭은 다양했다. 학생이라면 단 돈 50유로(그 당시 한화로 약 7만 원)로 일 년 동안 거의 모든 뮤지엄을 횟수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뮤지엄 카드를 가질 수 있었고, 좋은 공연도 라스트 미닛(공연 당일 마지막 남은 좌석을 싼값에 파는 것)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세계적인 거장들의 공연을 정말 저렴한 값으로 마음껏 관람할 수 있었던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다.
달리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었던 우리 부부는 주말이면 뮤지엄 카드 한 장 달랑 들고 트램을 몇 번이나 갈아타며 뮤지엄 투어를 했다. 그렇게 누렸던 윤택한 문화생활은 우리에게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선물해 주었고 그곳의 힘든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비싼 레스토랑에 가거나 마음껏 쇼핑을 하지는 못해도 멋진 작품과 공연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초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올 3월 초에 수술을 받았다. 심각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일을 쉬고 당분간은 집에 머물러야만 했다. 3주 정도 시간이 흐르고 처음으로 동네 뒷 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느새 봄기운이 만연했고 한 겨울 척박했던 땅을 뚫고 야리야리한 들꽃들마저 피어있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더 이상 차갑지만은 않게 느껴졌고 그 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끼는 작은 꽃들이 마치 왈츠를 추는 것 같았다. 오스트리아의 왈츠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가 떠오르던 순간이었다. 척박한 땅 위에서도 희미하게 다가오는 봄을 느끼며 왈츠를 추는 꽃처럼 우리 인생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많기를 바랐다.
이주민 여성들과 함께 하는 이번 강의에서 소프라노 조수미가 협연한 2020년 KBS교항악단의 연주로 ‘봄의 소리 왈츠’를 함께 감상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며 흥얼거리는 분, 조수미를 알고 있다며 뿌듯하게 말하는 분, 음악이 엔딩을 향해 가며 마지막 클라이 막스를 끝내면 터져 나오듯 박수를 치는 분 등 모두 저마다의 느낌과 경험을 끌어안고 곡을 감상했다.
“여러분, 우리 이제 이 느낌을 가지고 꽃들이 왈츠를 추듯 한 번 꽃꽂이를 해볼까요?”
모두들 미소 짓는 걸 보니 꽃꽂이는 비록 처음이라 막막할지라도 어떤 느낌으로 꽂으라는 건지 이해한 듯했다. 간단한 이론 설명 후 각자의 꽃과 재료를 나주어 주자 모두들 꽃 앞에서 그만 녹아내리고 말았다. 너무 예쁘다며 연신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들이었다.
네덜란드에서 귀국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분명 힘들었던 기억들이 떠오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신기하게도 좋은 기억만 남는다. 그곳에 만난 좋은 인연들,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 그리고 그곳에서 마음껏 누렸던 문화와 예술의 경험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추억으로 남아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준다. 낯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 여성들에게도 부디 오늘이 그런 날이 되기를 바래어본다.
강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따뜻하다. 봄,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