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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May 31. 2023

3년 만에 열린 체육대회, 추억 뒤에 감춰진 진실

코로나에 걸려도 웃을 수 있는 이유

  문제의 발단은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던 큰 아이 중학교 체육대회였다. 3년 만에 열리는 행사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온 학교가 떠들썩했다. 시작은 각 반마다 의상을 정하는 것부터였다. 개성이 강한 10대 소녀들이 원하는 의상은 다양했다. 결국 아이반 스물여섯 명이 한 가지 의상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데는 정확히 일주일이 걸렸다.

그다음은 종목별 각 반 대표 선수 뽑기. 같은 반끼리도 아이들의 경쟁은 치열했다. 줄넘기 선수를 뽑기 일주일 전부터 아이들은 저마다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은 물론 아침 일찍 등교해서 연습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각 반끼리 경쟁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른 반이 정한 의상부터 연습 상태까지 서로 견제하며 아이들의 승부욕은 점점 불타 올랐다.


  마침내 결전의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딸아이는 전날 밤에 세탁해서 미리 건조해둔 단체복을 경건하게 차려입고 돗자리와 얼음물 세 통을 들고 비장하게 학교로 향했다. “엄마 시간 맞춰서 꼭 와야 해.”라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아이를 보내고 나는 서둘러 집안일을 마치고 학교로 향했다. 맑고 청명한 날이었다. 다행히 대기질도 나쁘지 않았다. 300미터쯤 남았을까. 벌써부터 들려오는 쿵짝쿵짝 음악 소리와 아이들의 함성 소리에 내 심장이 다 두근거렸다. 설레는 기분은 순식간에 그 옛날 우리들의 ‘운동회’가 열리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아래위 하얀 체육복에 똑같은 실내화를 신고 청색 혹은 흰색 모자를 눌러쓴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일어내는 모래 바람 가운데 돗자리를 깔고 앉아 응원하던 가족들의 모습. 점심시간에 김밥과 먹을거리들을 늘어놓고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바꿔 먹어가며 신났던 그날의 기억들. 그때 운동회는 가족 소풍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물론 돗자리에 김밥 도시락은 없지만(아이들은 종이 울리면 학교 급식실에 가서 먹고 온다) 아이들의 뜨거운 열기만큼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끄는 것은 각 반 아이들의 패션이었다. 군복 바지에 ‘해병대’라고 쓰인 빨간 티셔츠, 복고풍의 몸빼바지(일명 냉장고 바지) 위에 ‘새마을’이라고 쓰인 녹색티, 주황색 죄수복등 각 반의 개성 있는 복장과 그에 어울리는 아이들의 깜찍한 몸단장은 어른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줄넘기 대회, 각 반 피구시합 그리고 달리기 예선까지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강렬한 햇살 아래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점심을 먹고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인 줄다리기 시합이 진행되었다. 목장갑을 끼고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토해내며 줄을 놓지 않던 아이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경기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체육선생님은 학부모들에게 결승전에서 승리한 3학년 학생들과의 시합을 권하셨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나를 포함한 몇몇 학부모들은 얼떨결에 줄다리기 시합에 참가하게 되었다. 아~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화를 신고 올걸.


  첫 번째 대결에서 우리는 3학년 아이들에게 처참하게 끌려가고 말았다. 아이들을 너무 얕잡아 본 걸까. 체육 선생님께서 다가와 “쟤네들 만만치 않습니다.”라며 경고했다. 남은 한 번의 기회. 학부모들은 앞뒤로 서로 돌아보며 결의를 다졌다. 우리가 누구인가. 저 아이들을 낳아 이만큼 키워 놓은 어미들이 아닌가. “아줌마 파워를 보여줍시다!” 어느새 우리는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마주 보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팽팽한 두 번째 대결 끝에 마침내 우리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아이처럼 서로 두 손뼉을 마주치며 환호성을 외쳤다. 상품으로 모두 크리넥스 휴지 꾸러미를 받았다. 모두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동심’이었다.


  마지막 순서는 우승자 발표와 행운 뽑기 추첨이었다. 희비가 엇갈리는 현장. 우승한 반들을 환호 속에 서로 손을 맞잡았지만 그렇지 못한 반 아이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축하와 응원의 메시지로 큰 환호와 박수를 아이들 모두에게 보내주었다. 그날의 행사를 모두 마치며 운동장에 서서 목청껏 교가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콧잔등이 시큰해져 왔다. 정말 오랜만에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마음껏 뛰어본 날이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아이는 열이 났다. 목이 아프다고도 했다. 아무래도 체육대회 때문에 무리가 됐지 싶어 학교는 하루 쉬기로 했다.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우리 아이 포함 5명이 아파서 등교를 하지 못했고 그중 코로나 확진자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우리도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아이와 나는 가까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나는 음성, 아이는 양성이었다. 결국 그다음 날까지 담임 선생님 포함 아이 반 인원 열세 명이 모두 코로나에 감염되고 말았다.


아이의 일주일 격리가 시작되었다. ”엄마, 우리 반은 체육대회에서 꼴찌였는데 일등이라도 해보고 이렇게 된 거면 억을 하진 않을 것 같아요. “ 아이는 허탈하게 말했다.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매일 카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아직도 그날의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이따금 아이의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친구들과의 수다 소리와 한바탕 웃음소리에 나는 생각했다.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지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우리가 누려야 할 것들을 놓치지 말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참, 나중에 아이로부터 전해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날 학부모와 3학년 학생 반과의 줄다리기 마지막 경기 중 우리 쪽이 불리해지자 체육 선생님께서는 반대편 몇몇 학생들에게 줄 잡은 손을 놓으라고 했단다. 어머님들이 이겨야 상품으로 휴지를 받아갈 수 있다고.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역시 아줌마 파워라며 아이들처럼 좋아했던 것이었다. 다시 생각하니 또 웃음이 터졌다. 앞으로 살면서 두고두고 꺼내어 볼 것 같다. 체육대회가 남기고 간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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