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다. 리'-사소하지만 다루고 싶었던 이야기 5
*본 게시글의 원문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artinsight)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6712)
2021년 10월 21일. 우리나라 최초의 자국형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발사되었다. 지난 2013년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발사체 ‘나로호’ 이후 약 8년 만에 연출된 진기한 장면에 TV를 통해 지켜보며 응원하던 많은 이들이 가슴을 졸였다. 당초 계획보다 3단 엔진이 일찍 중지되면서 최종 목표였던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지만 아쉬움이나 안타까움보다는 또 하나의 ‘가까운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는 의견들이 주를 이루는 듯 보인다.
사실 지난 2010년 첫발을 뗀 후 12년이 넘게 이어져 온 이번 사업은 매 순간순간이 어려움의 연속이었다고 알려졌다. 우주개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미국이나 러시아는 물론, 우주 산업계의 신흥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도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최대 난제로 꼽혔던 액체 엔진의 연소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설계 변경과 시험이 반복되었기 때문. 연구 과정마저 연속성이 부족한 프로젝트 형식으로 이뤄지면서 중간중간 혁신을 꾀할 시간적, 금전적 여유도 부족했다.
그러나, 국내 민간 기업들의 향상된 기술력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항우연)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의 헌신과 노력 덕에 우리는 마침내 새로운 역사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관측 로켓 과학로켓 1호(KSR-I)를 쏘아 올리며 우주산업 분야에 진출한 지 불과 30여 년 만에 전 세계에서 8번째로 75톤 급 액체 엔진의 자국 발사체 개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벌써부터 내년 5월에 이뤄질 2차 발사에 적잖은 기대를 거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미래 먹거리가 될 우주산업 분야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우주산업은 인류 최초의 우주개발 및 진출을 두고 벌어진 미국과 러시아(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우주경쟁’(Space Race)을 이르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도, 막대한 기술력과 노동력 그리고 천문학적 수준의 재정을 투입하고도 수익성은 크게 나타나지 않는 까닭에 주로 과학 탐사나 군사용 개발의 목적을 위한 국가적 사업의 형태로 극비리에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3D 프린팅 기술이나 로켓 재사용 기술과 같이 획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이 이어지고 그에 따른 민간 기업의 투자와 참여가 확대되면서 발사체 및 로켓 제작에 이어 우주 인터넷, 항공 운송, 우주 관광, 위성정보 산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업 비즈니스 모델이 이야기되고 있다. 누구나 우주에 대한 꿈을 자유롭게 꿀 수 있는 그리고 실현할 수도 있는 시대, 이른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우주재단’(Space Foundation)이 발행한 ‘스페이스 리포트’(Space Report)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우주산업의 전체 규모는 약 4470억 달러(한화 약 523조 원)에 달했으며 그중에서도 민간이 주도하는 상업적 우주산업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전체 시장의 약 79%를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에서는 오는 2040년 전 세계 우주산업의 시장 규모가 약 1조 1000억 달러(한화 약 1000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수치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에 비해 국내 우주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와 기술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2019년 기준 국내 우주산업 매출액 규모는 약 3조 8931억 원으로 이는 세계 우주산업의 2% 수준에 그치는 정도이며 주요 국가 간 GDP 대비 우주산업 예산 규모 순위에 있어서도 최하위권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와 달리 일찍이 인공위성 궤도 안착에 성공했던 중국과 일본의 경우 각각 한국의 약 12배와 약 5배에 달하는 우주개발 투자액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위성 및 발사체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업스트림(upstream) 분야뿐만 아니라 지구 저궤도 부근에서 소형(초소형) 인공위성의 군집 운영을 통해 위성정보를 생산하고 이를 가공하는 다운스트림(downstream) 분야에도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한다. 특히, 오늘날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 위기 문제를 비롯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로서 위성정보가 활용되는 경우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주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빼놓을 수 없다. 2013년 이후 국내 우주개발 관련 예산의 절대적 규모는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우주개발을 전담할 국가 조직조차 부재한 까닭에 산업으로서의 위상 역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항공우주산업개발 촉진법」, 「우주개발 진흥법」 및 「우주손해배상법」으로 대표되는 현행 법제적 장치들의 경우에도 우주 테마 ETF 펀드 육성이나 스타트업 발굴 프로젝트 지원과 같이 다각도에서 민간 기업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해외의 사례에 비해 구체성과 실효성이 부족한 상황에 처해 있다.
물론, 마냥 부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 6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2031년까지 산업체가 중심이 되는 공적 목적의 위성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하는 한편 우주 분야 상품·서비스 개발을 위한 ‘스페이스 이노베이션’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태이며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민간 기업에서도 우주개발산업에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들을 적용하려는 사업화 방안들을 하나둘 공개하고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품 국산화 과정을 비롯해 효율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고유한 우주개발 프로세스 개발 그리고, 국방·안보 관련 부처와의 소통은 과제로 남아있다.
7분 55초. 채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누리호는 많은 이들의 꿈과 염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의 모든 과학기술이 그래왔고 그것들의 역사가 그래왔듯 우리는 여기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끝이 아닌 시작을, 오늘이 아닌 내일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보다 더 높고 더 멀리 있는 곳을 향한 그 위대한 도전들을 이어갈 수 있게끔, 그래서 우리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수많은 가능성의 조각들을 일깨우고 빛낼 수 있게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