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blimer Dec 20. 2022

05 그대 아직 살아있다

나는 특별히 한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노력을 한다 해도 인도에서 길을 지나가다가 한을 만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대부분 여행객들이 찾는 여행지는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우연하게라도 마주칠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서울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길을 지나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야 정상이겠지. 애초에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했다. 사실 목적이 있어서 온 여행이라기보다는 여행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에 떠나온 여행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당의 메모판마다 내가 여기 있다는 짧은 메모를 남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여행을 했다.        

  







다양한 도시가 공존하는 인도에서도 다람살라는 참 특별한 곳이다. 꽤나 고지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도시 전체의 분위기는 기묘했다. 티벳 임시 정부가 있는 도시로 주로 티벳 망명자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티벳이라는 어감이 주는 느낌도 특별했지만 도시 어디를 보아도 티벳 승려들이 모든 장소에서 모든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 특별했다. 식당의 점원도, 숙박업을 하는 사장님도,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티벳 승려들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가 머물던 거리인 맥로드간지에서는 술을 판매하는 집을 찾기도 어려웠다. 인도 북부에 속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낮에는 덥지만, 밤이 되면 매우 추운 곳이기도 했다. 추운 밤이 되면 간절히 술 한 잔이 생각나곤 했는데, 이 도시는 알콜조차도 물로 변화시키는 기적의 도시였기 때문에 구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맛도 없었다. 



인도는 도시마다 특색이 비교적 뚜렷한 나라다. 모든 집들이 핑크빛인 핑크의 도시, 푸른빛인 블루의 도시와 같이……. 이곳 다람살라의 특색이라면 술이 맛이 없다는 것과 덕분에 티벳 승려들이 아주 많다는 정도였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티벳의 음식 중에 한국 음식과 비슷한 음식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만둣국 비슷한 음식과 티베티안 누들은 입맛에 정말 잘 맞았다.     






이 도시는 비교적 작은 도시여서 일주일이 지나자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관광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작은 폭포에 가기로 결정했다. 걷는 일에는 이제 비교적 익숙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걷는 일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서도 20분여를 쉬엄쉬엄 걸어서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는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작은 폭포에 불과했다. 물이 많은 철이 아니어서 더 초라해 보였을 수도 있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멀리서 보기에 웅장한 규모를 가진 폭포는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웅장한 폭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걸어온 시간 만큼 힘들었고, 힘든 만큼의 기대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폭포라는 이름이 무색해지는 규모의 동네 폭포였다. 할 일을 찾을 수 없어서 찾아온 곳이었지만, 여전히 다른 할 일을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발견했다.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든지 비슷비슷하기 마련인가보다. 폭포로 향하는 길가에는 누군가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낙서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낙서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발견했다. 


수많은 낙서 중에 누군가가 써놓은 의미 있는 낙서를 내가 우연히 발견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수많은 언어로 가득한 그 거대한 바벨의 벽에서 나는 익숙한 언어를 발견했다. 한글로 쓴 한 문장의 글이었다. 




그대. 아직 살아있다.     



누가 쓴 것일까? 한이 다녀간 것일까? 마치 내가 호텔과 음식점의 메모판마다 내가 여기 있었음을 기록했던 것처럼 한도 자신이 여기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지만 한이 다녀갔을리가 없었다. 그리고 한이 기록해둔 문장이라 해도 내가 한이 기록한 그 문장을 여기서 발견한다는 것은 오히려 실제로 그를 맥로드간지의 길가에서 만나는 일보다 더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 낙서는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나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대. 아직 살아있다고……”          

작가의 이전글 04 기묘한 채식주의자 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