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다니면 '나'를 잃는다.
육아와 집안일이 모두 내 앞에서 '나'를 끌고 다닌다. 쌓여있는 설거지는 직장 상사처럼, "아직도 일(설거지) 안 끝냈어? 언제 할래? 이거 끝내야 다음 일(다음 끼니)이 진행하지!"라고 타박을 준다. 꽉 찬 쓰레기통, 밀린 빨래, 널브러진 책상 위 물건들 모두 뚝배기를 깨고 싶은 악랄한 직장 상사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원치도 않는 해야만 하는 일에 그저 내 던져 저서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꼴이다.
하던 '바깥일'을 잠시 멈추고 온전히 전업주부로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용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뭔가 덜 생산적인 일을 하는 듯한 느낌에 갑자기 짜증이나기도, 갑자기 화가 나기도 하는 요즘이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잠깐의 틈바구니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 책을 폈다.
최적화의 경로를 잘 살아온 듯해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기 삶에서 자아가 누락되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시대예보 : 호명사회⌟ p.130
"자아누락"이라는 단어가 눈에 확 꽂혔다.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씨의 ⌜시대예보 : 호명사회⌟에 키워드가 아닌, 서술어로 등장한 두 단어였지만, '자아'와 '누락'이라는 이 단어들의 조합이 책에서 말하는 최적화의 함정을 잘 표현하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했다.
책에서는 육아에 대한 최적화 예시도 말한다. 출산준비물품 엑셀 시트와 육아 필수템과 가격을 나열한 목록들, 아이 뇌발달에 꼭 해야 하는 하루 놀이 등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최적화된 예시들이 유튜브, SNS에서 나뒹군다.
전업주부 육아 전담 육아대디로 그 모든 정보를 접하면서, 내가 느낀 감각이 딱! "자아 누락"이다. 그런 정보들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아이를 육아하는 게 아니라, "육아"라는 하나의 태스크가 '나'를 끌고 가는 느낌이다. 그곳에 부모인 '나'의 양육관은 배제된다. 나뒹구는 정보에 뒤처지지 않으려 숨이 헐떡 거리게 쫓다 보면,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지 어리둥절한 표정과 함께, 지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나'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쳐버렸다. 집안일 말이다.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의 기본적인 집안일 역시, 밀리고 밀려서 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안일한테까지 '나'는 끌려 다닌다.
루틴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자발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해서, 내가 한다"는 감각말이다. 눈을 뜨고, 커튼을 열고, 창문을 환기시키고, 시원하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한숨 들이켜고, 바닥을 쓸고, 저녁에 해놓은 설거지를 정리하는 일상의 루틴을 다시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집안일이 내 앞에 있어서 내가 끌려다니지 않고, 집안일 앞에 서서 능동적으로 하루를 이끄는 '나'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루틴을 잡으려면, 저 악랄한 상사들의 태스크를 빨리 처리해야 한다. 밀린 빨래를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