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빠랑 살꺼야
여름,
내 사랑 아빠의 생신이 곧 다가온다.
아빠는
4남 2녀 중 장남,
아빠가 여섯살 무렵에 진짜 본가로 들어가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작은 아버지 댁에
양자로 들어가서
50여년을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우리 아빤 ISFJ 인데다가
어린시절 슬픈일 들이 많아서
70이 넘은 요즘도
악몽을 자주 꾼다고 한다
아빠가 사자성어가 된다면
딱 맞는 네글자
전.전.반.측.
중학교 때 이 걸 배우자마자
아빠를 떠올렸다.
어릴 때 내 눈에 비친 아빠는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본인은 대기업을 착실히 다니시고...
같은 집에 사는
엄마는 완전 똑소리 나게 살림 잘하는 사람,
딸은 공부 잘하고 온갖 상을 휩쓸어 오는 사람,
아들은 말썽 없이 학교 잘 다니고 제 할 일 제대로 하는 사람
이라서 아무 걱정이 없는
평안한 집인데
본인 조카들 태어날 때마다 이름은 왜 지어주며
공부를 하건 말건, 대학 원서를 어디다 쓰건 말건
왜 거기까지 신경을 쓰는건지...
알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내 보기에 세상 걱정의 90프로는 덜고 사는 사람인데
없는 걱정도 만들어 내는 사람이었다.
이런 분의 딸로 내가 태어난 게
신의 실수였다.
밖에 한번 나가면
들어올 때까지
전화 연락 없는
함흥차사 스타일.
정리정돈과는 담을 쌓았고
한번 꽂히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정열의 엔프피니까
사람죽고 살고 외엔
큰 일이 뭐가 있냐는 신조가
엣프제인 우리 아빠와
맞을리가 없다.
어릴 때야 낮시간엔
일터에 계시는 아빠와 만날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낮 시간에도 뵐 수 있다.
따로 산지가 올해로 25년째인데
내 집에 올때마다
현관부터 양말 벗고 바지 밑단 겉고
청소기 쥐어 드는 우리 아빠는
지난 수십년간 나를 키우며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빠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건
마흔 넘어서의 행위이다.
매번 엄마한테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가 델고 살라고
누누히 이야기 했었는데
그 때는 진짜로
아빠가 절래절래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왜 그렇게 했을까
이해되는 측면이 생겼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게 하나도 없지만
둘다 F이기에
서로를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다.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다 커서 장가간 아들이 펑펑 울었을 때
아빠는 세상 잘 산 느낌을 받았지 싶다
45년전 아빠는
손가락발가락 다 있고
시원하게 울음을 터뜨린 나를 보고,
쪼그만 얼굴에 본인 처럼 오똑한 콧날을 가진 나를 보고,
안도 했다고 했다.
내가 태어나기 1년전
손가락발가락이 걱정인 아이를
태어난지 한달만에 형산강 다리에 묻고
두번째인 나마저 잃으면
본인의 생에 아이는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애지중지 나는
재수생 200일 시절
매일 배달되는 아빠의 편지로
하루하루를 버텨냈고
아빠는
내가 하고자 하는 건
나를 믿고 다 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셨다.
ISFJ는 1도 이해가 안되는 ENFP를 그렇게 키웠다.
이해가 안되지만.
이해가 안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