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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arton 대표 박제연 Nov 26. 2024

슬픈데 눈치가 보여

슬픔에 종류가 있는걸까?

솜이는 강아지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데리고 다녔다.

집, 직장, 엄마집, 동생집, 공원, 자주 가는 음식점 등등. 내가 생활하는 모든 곳에 솜이의 모습이 남아있다.

어제는 차에 타다 말고 주차장에서 같이 차 타려고 나를 따라오는 솜이가 보였다.

항상 먼저 가서 엄마 기다리는 솜이

갑자기 눈물이 왈칵.

항상 뒷좌석에서 엎드려 있다가 내릴 때가 되면 기가 막히게 알고는 일어나서 내릴 때 되었다고 깽깽 짖었다.

상황에 따라 짖는 소리도 다르고 눈빛도 달랐다. 나만이 알아채는 솜이 언어다.

운전을 하면서 혼잣말로 솜이에게 말을 건넨다.

항상 출퇴근 같이 하는 차 안에서 얌전히 앉아있다.


솜이야, 잘 지내고 있지?

우리 솜이 너무 보고 싶어.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하고 많이 사랑해

우리 솜이 잘 지내야 해~


휴대폰 화면보호기에 수시로 솜이 사진이 나온다.

얼른 솜이 사진에 뽀뽀를 한다. 생전에 그랬듯이.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상황이며, 이해도 안 갔던 행위들이다.

혼잣말을 하고 사진에 뽀뽀를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에이고, 사진에 뽀뽀를 하면서 너무나 그립고.

미쳐가는 건가? 내 행동이 생경해서 어디에 말도 못하겠다.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줄줄 흐른다.

근데...

슬픈데 자꾸 이사람 저사람 눈치가 보여 슬퍼할 수가 없다.

뭘 그렇게 까지 슬퍼하냐고, 아직도 슬퍼하냐고. (물론 겉으론 안그러겠지만 속으로 그럴거 같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랬다.

솜이를 잃기 전엔 반려동물과 이별했다고 하면  <넘 슬프시겠어요...> 라고 위로 했지만 얼마나 어떻게 슬픈지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냥 그저 슬플 것이다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우리 애기들이 아직 어려서 이별이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슬플일인가.라고 막연히 생각했던거 같다. 가족 잃은 사람들도 많은데, 거기 비할바인가...뭐 이런 생각도 했던 거 같다.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브런치의 여러 글들도 예전과 다른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특히나 아픔을 기록하는 분들의 마음이 더욱 와 닿는다.

어떤 죽음이든 <호상이네> 또는 <그나마 고생 안하고 그렇게 간 게 다행이야> 이렇게 위로되는 건 없는 거 같다. 그저 위로하는 사람의 마음일 뿐인거다.

사람의 죽음이든 반려견의 죽음이든 가족에겐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찬바람과 통증이 돌아다니고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무기력해지는 그런 경험인 것이다.


이렇게 슬플 줄, 이렇게 아플 줄 상상도 못했기에 이 상황이 매우 당황스럽다.

나이 50이 넘어서 이런 감정이 들 줄이야... (갱년기 우울증이 겹쳐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슬퍼하면 솜이도 맘 편히 못 있을 거라며 주위 식구들이 그만 슬퍼하라고 한다.

그만 하고 싶다고 그만 둬지면 얼마나 좋을까.

솜이 가고 나서 일주일 정도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어도 눈치가 안보였는데 이젠 눈치가 보인다. 이젠 몰래 혼자 울고 있다. 그냥 내 슬픔을 내가 달래주는 수 밖에.

이번주엔 수락산에 가서 우리 솜이 보고 와야겠다. 수락산 자락 예쁜 곳에 우리 솜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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