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평범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튀는 건 죽어라 피하는 요상한 버릇이 있다. 평범하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는 않은데, 쭈르륵 사람을 세워뒀을 때 딱 봐도 튀는 외형은 갖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성정을 반영하듯 튀는 악세사리나 신발, 가방은 쉽게 사도, 옷장 속에 걸려 있는 수 많은 옷은 대부분 무채색이다.
그런 나의 편력이 드러나는 음식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게 바로 계란말이이다. 나는 계란말이를 참 좋아한다. 계란 여러 개를 터트려 우유나 물을 취향에 맞게 적당히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은 뒤 버터나 기름을 두른 팬에 조심스럽게 말아서 예쁜 모양으로 내놓는, 그런 계란말이를 말이다. 대부분은 5~6개의 계란을 넣는 편이고, 물 대시는 고소한 맛이 나는 우유 넣는 걸 더 좋아한다. 물도 상관 없다. 혼자 먹을 때는 계란을 많이 젓지 않는다. 부드러울 필요가 없고 그저 푹신푹신하기만 하면 된다. 남들에게 내놓을 때는 체에 한 번 거른다. 체에 거른 계란은 계란말이를 했을 때 훨씬 더 부드러워진다. 나는 기름보다는 버터를 선호한다. 살이 조금 더 찌더라도 버터 특유의 풍미를 잃을 수 없다. 어릴 때는 계란말이를 잘 못 만들어서 결국엔 스크램블로 해먹곤 했다. 대부분의 실패 요소는 계란을 적게 넣고 기름을 적게 둘렀기 때문이다. 계란말이는 무조건 계란을 많이 넣어야 하고, 기름이나 버터는 충분하게 둘러야 한다.
사실 계란말이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반찬이기 때문에 딱히 특별한 점이 없다. 가끔 야채나 햄 같은 걸 섞지 않는 한 계란 특유의 맛 그대로이며, 다른 계란 요리와 비교해서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거의 모든 경우에 안주나 밥 반찬으로 먹게 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아침이나 저녁으로 밥하기가 귀찮으면 계란말이만으로 식사를 대처하곤 한다.
한 번은 중2병인지 무엇인지 한동안 이러한 계란말이의 평범함에 질려 계란말이를 멀리한 적이 있었다. 고의든 타의든 일주일에 한 번은 먹던 계란말이를 안 먹은지 꽤 됐다고 생각했을 때 즈음 티비에서 계란말이에 김을 넣고 마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일본 드라마였던 거 같다. 식탁에 계란말이와 다른 반찬들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고 노란 계란말이에 검정색 김이 대비되듯 말려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그 계란말이를 먹던 사람은 김이 들어가 있어 색다른 모양을 하고 있던 계란말이를 너무나 행복하게 먹었다. 게다가 덧붙여 역시 계란말이는 김이지! 하고 말했기 때문에 귀가 얇은 나는 역시 계란말이는 김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날 저녁 엄마를 졸라 먹어본 김 계란말이는 김이 질겨 잘 씹히지도 않는데다가, 계란의 비린내와 김의 비린내가 충돌해 묘한 맛을 냈다. 여하간 내 식성에 역시 계란말이는 김이지! 하고 말할 음식은 아니었다. 그 정도면 평범한 계란말이로 회귀해도 됐을텐데 이번엔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명란 계란말이를 먹게 되었다.
합정 근처에 있는 막걸리집이었다. 그 친구들이랑은 술을 자주 먹지 않았는데 평소에 술을 좋아하는 나는 막걸리라는 말에 홀려 뒤에 이어진 명란 계란말이 얘기는 듣지도 못했다. 같이 있던 친구는 명란젓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나 역시 명란젓에 호의적인 사람이었기에 안주 결정은 어렵지 않게 이어졌다. 명란 계란말이는 계란말이 안에 명란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명란이 통째로 들어가있다니. 당연히 알 몇 개가 계란말이 사이로 흩어져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을 깬 모양에 나는 감동을 먹었다. 그리고 바로 입에 명란 계란말이를 밀어넣었다. 덕분에 막걸리를 몇 잔이나 들이켰는지 모르겠다. 나는 명란이 원래 이런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 계란말이랑 비슷하게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와 계란의 비린내가 입 안에서 부딪혔고, 쓴 명란의 뒷만과 젓갈의 짠맛이 남아 혀를 괴롭혔다. 명란이 통재로 들어간 계란말이라는 건 내게는 너무 짠 음식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케찹을 잔뜩 찍어서 입에 밀어 넣었으니 애먼 혀가 수분을 찾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내 계란말이 모험도 멈추는 듯 보였으나 어느 3학년, 동아리 엠티를 눈치 없이 따라 간 날 후배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계란말이에 치즈를 넣으면 그렇게 맛이 있다는 것이다. 계란말이만 먹어도 술 안주로 완벽한데 치즈라니. 치즈라니! 누가 들어도 완벽하고 흥미로운 그 조합에 나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냉장고엔 안주인 콘치즈를 위한 치즈도 준비되어 있었으니 우리는 밤이 되다마자 치즈를 넣은 계란말이를 만들게 되었다. 치즈를 넣은 계란말이는... 뭐랄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맛이다. 특별히 맛있는 거 같지 않은데도 특별히 맛있다. 의아하겠지만 사실이다. 치즈의 풍미 하나만으로도 맛있다 탄성이 나오게 된다. 평범한 계란말이에 치즈 하나 덧붙였을 뿐인데 그 맛은 정말 맛있었다. 거기에 마요네즈도 곁들이면 정말 금상첨화이다. 치즈 계란말이는 대성공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 날 밤 30개가 들어있는 계란 한 판을 전부 다 치즈 계란말이로 연성해내야 했다. 특별히 맛있는 거 같지도 않은데 맛있긴 맛있는 치즈 계란말이를 만들려고 말이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두 번 다시 엠티에서 팬을 잡지 않았다. 선배들이 때로 아쉬운 소리를 했지만 모르는 척 몸을 사렸다. 식당 아줌마도 아니고, 30판은 너무 심하잖아요.
그렇게 나의 색다른 계란말이 여정이 끝이 났다. 나는 평범하고도 고슬고슬한 빛을 내는 계란말이에 정착했다. 살짝 케찹에 찍어도 맛있고, 마요네즈는 물론 돈까스 소스에 찍어 먹어도 그 맛이 퍼펙트하다. 오직 계란만 들어간 순수한 계란말이야 말로 평범하지만 평범하고 싶지 않은 내게 걸맞는 음식인 것이다. 평범한 게 싫은가? 튀는 것도 싫은가? 그래도 계란말이는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