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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Aug 25. 2024

낯선 교실문을 열고

  복직을 한 지 2주는 지난 것 같은 느낌이지만 오늘이 겨우 3일째다. 복직 이틀 전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 떨어지는 자신감, 이 일이 나랑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저번 주 금요일 나는 결국 학교에 갔다. 학교는 2학기의 시작으로 분주했다. 부장님은 내게 짧게 인사를 건네시며,


“그 반 아이들이 워낙 착해요. 그래서 아마 적응하기 괜찮을 거예요. 다만 그전 담임선생님이랑 너무 사이가 좋았어서 그게 좀 걱정인데 아마 선생님께서 잘하실 테니까 문제없겠죠.”     


  부담스러웠다. 개학 전에 인수인계를 받으러 갔을 때, 예쁘고, 어리고 열정이 넘치던 전 담임선생님을 뵈었다. 이것저것 인수인계를 받으면서도 ‘내가 저 선생님만큼 열정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역시 나이가 좀 더 어린 선생님을 선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티 나지 않게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을 부장님이 ‘틱’하고 다시 건드렸다.


  개학 첫날, 우리 반 반장이라는 학생이 친한 친구 한 명과 함께 내게 인사를 하러 교무실에 들어왔다. 합격!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전 담임선생님이 입이 닳도록 칭찬했던 인성이 좋다던 반장의 모습을 보니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양 마음이 놓였다.     


  학창 시절 매해 처음으로 새 교실 문을 열기 전의 기분이 떠올랐다. 어떤 친구들이 있을지, 과연 나랑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처음 본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선생님들은 또 어떨지, 들어가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마냥 긴장하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복직 첫날도 그랬다. 하루 이틀 이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긴장했다는 게 스스로 조금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새 직장으로 이직한 느낌이랄까.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낯선 교실 문을 열었다. 아이들도 내 마음 같았던 걸까? 문이 열리자 아이들은 새 담임선생님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잠시 얼음이 되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앗! 얼마 만에 받아보는 관심인가. 제발 그 눈부신 시선을 내게서 거두어 주기를 바라면서 저벅저벅 교탁 앞으로 걸어갔다. 신기한 것은 출석을 부르는 순간부터 신규처럼 떨었던 시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면서, 나는 차차 안정을 되찾았다. 관상은 과학이라며 우리 반은 느낌이 참 좋다는 능글맞은 멘트와 내 소개가 술술 나왔다.


  그렇게 복직하기 싫다고 외쳤는데 수업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나를 발견했다. 스스로 놀라웠다. 휴직 전만 해도 출근하는 내 모습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아서 분명 슬럼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년 반의 휴직이 시나브로 나를 충전했던 걸까? 다 휘발되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던 전공지식도 스위치를 켠 것처럼 반짝반짝 떠올랐다. 아이들은 전 선생님과의 시간도, 나와 새로 맺는 인연도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느낌이었다.


  개학 다음 날부터 학생들을 파악하기 위한 상담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한 명, 점심시간에 한 명을 만나면서 자기 속내를 털어놓기 쑥스러워하는 아이부터 선생님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아이까지 보고 나니 ‘고등학생이 이렇게 귀여웠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있는 2학년 초딩 아들보다 귀여운 것을 보니 오히려 내가 집에서 탈출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하긴 내 새끼가 아니면 관대해지는 법이지.. 당분간 상담 때문에 정작 내 아들은 등교도 못 시키고 아이보다 내가 40분 일찍 출근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어쩌겠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야 하는 일인 것을.


  내 복직 날, 아이도 개학을 했다. 복직을 며칠 앞두고 아이에게 내가 먼저 출근해야 한다고 했을 때 아들이 무섭고 싫다며 계속 징징대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개학 날 조금 늦게 퇴근을 해서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질문을 쏟아부었다.     

“오늘 학교에 일찍 잘 갔어? 무섭지는 않았어? 적응은 잘 될 것 같아?”      

아이는 씽긋 웃으며 대답했다.     


“재밌던데요? 엄마 잔소리 안 들어서 좋고?”     


흠.. 무섭지 않았다니 다행이긴 한데 묘하게 기분이 언짢았다. 벌써부터 잔소리 해방을 외치다니. 그래도 다 좋은 거겠지. 무서웠다고 우는 것보다야. 나와 아이의 개학날, 남편이 나보다 일찍 퇴근해서 오늘의 동동이를 브리핑해 줬다. 아이는 실내화를 두고 갔고, 학교 가는 길에 똥이 마려워 되돌아오는 바람에 지각을 했단다. 에어컨은 잘 끄고 갔는데 거실의 불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고 한다. 학교에 갔다가 되돌아오고 다시 학교에 가는 동안 계속 아빠와 통화하는 바람에 20분 동안 회사에서 눈치를 봤다고 했다. 


개학 다음날은 점심 상담을 하는데 아이에게 세 번째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전화 계속 오는 것 같은데 받으세요.”

“어? 어 그래 미안. 그럼 잠깐만 받을게. 여보세요? 동동아 왜?”

“엄마 나 학원 가기 전에 패드해도 돼요?”

“하.. 해. 해! 너무 오래 하지 말고. 알았지? 그럼 끊어.”

“그런데 패드 엄마가 감췄어요? 없던데요?”

“엄마 옷장 열어봐. 거기 있지?”

“아 찾았다! 엄마 왜 내가 모르는 곳에 숨겼어요?”

“어 숨긴 거 아니고.. 아무튼 15분만 하고 수영가 알았지?”

“네, 엄마 사랑해요!”

“그래그래. 나도. 이제 끊자?”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는 쭈뼛쭈뼛 상담을 이어갔다. 그래도 별 문제는 없었다.     

개학 날의 내 학생들과 아들의 표정을 보니 내 복직도, 아이의 홀로서기도 걱정은 없을 것 같다. 큰 문제만 없으면 되지. 암. 모든 문제는 다 소소할 것이다. 자 그럼, 오늘도 파이팅! 내일도 파이팅..! 겨울방학까지 계속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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