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복싱을 배우는 이유. 모든 것은 기세다!
킥복싱을 배운 지도 3주가 되어간다. 9월에는 추석 연휴 때문에 일주일에 2번 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남편과 나는 나머지 날 동안 꾸역꾸역 갔다. 이제 나는 일명 ‘원투!’의 자세는 제법 잡혔다. 하지만 훅이 문제였다. ‘원투’가 상대방의 인중에 왼손과 오른쪽으로 펀치를 쭉 뻗어 치는 거라면 훅은 옆얼굴을 공격하기 위해 팔의 각도를 90도로 만들어 때리는 것이다. 손을 앞쪽으로 뻗기 시작해서 90도로 만든 팔로 옆얼굴을 가격한다. 이게 말은 참 쉬운데 똑같은 어깨 모양과 허리돌림, 발모양을 유지하면서 팔 모양만 바꾸는 것인데도 팔 모양 때문에 나머지 자세가 전부 엉망이 된다. 특히 나는 훅을 치면 왠지 팔이 짧게 나가는 기분 때문에 몸의 무게 중심을 자꾸 앞으로 두는 바람에 자세가 엉성하게 흐트러졌다. 관장님은 정확히 자세가 흐트러지는 원인에 대해 알려주셨다.
“몸의 중심이 자꾸 앞으로 쏠리잖아요. 그러니까 힘이 제대로 안 실리고요. 팔만 빼고 어깨랑 다리, 허리만 해보세요. 그 자세는 모두 ‘원투’와 똑같아요.”
익숙한 ‘원투’에서 팔 모양 하나 바뀐 것뿐인데 이렇게 어렵다. 그래도 ‘원투’ 자세는 잘했으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훅을 뻗어 본다. 거울 앞에 서서 계속 연습하다 보니 조금씩 자세가 나아진다.
다음날 독서 모임에서 내 킥복싱 후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근황을 전했다. 아직 배운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뭔가 자신감이 생긴다고. 길에서 싸울 일도 없고, 싸울 일이 있어서도 안되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런 상황에서 전처럼 크게 두렵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더니 한 사람이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예전에 내가 혼자 살 때, 거기가 1층 아파트 베란다처럼 되어있었거든요? 근데 씻고 나와서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데 베란다 창문에서 웬 까만 동그라미가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게 사람 눈인 거예요. 아래 집 남자가 배관을 타고 베란다 쪽으로 올라와서 블라인드 사이로 나를 보고 있었던 거였어요.”
“진짜요? 너무 소름 끼쳐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저라면 너무 놀라고 겁이 나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막 그쪽으로 뛰어갔더니 그 남자가 당황해서 후다닥 도망가더라고요. 아마 내가 두려워하고 숨는 기색을 보였으면 진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와 진짜 용기가 대단하네요.”
갑자기 나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가기 위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는 중에 그 많은 인파 속에서 누군가 분명히 나를 만졌다. 바지를 타고 오가던 그 집요한 행동이 내게 확실하고 분명하게 전달됐다. 나는 겁이 덜컥 나서 가해자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조차 없었다. 그저 인파를 뚫고 참담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옆 칸으로 이동했다. 모멸감과 공포심을 동시에 느끼면서.
그 무렵 인터넷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여자의 글을 보았다. 지하철에서 어떤 변태가 자기를 만지기에 주위 사람들 다 듣도록 그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어딜 만지냐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러자 그 남자가 급히 도망가는 바람에 경찰에 넘길 수 없었다며 아쉬워하는 여자의 글을 보며 내가 만약 그때 나를 추행하던 치한에게 소리를 질렀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나는 당시에 그 사람을 경찰에 넘긴다는 생각은커녕 그저 그 행위를 멈춰주기만을 바랐다. 상대의 잘못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스스로 피하고 말았으니 원통한 일이다. 그때 소리라도 질렀다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겁먹지 않았음을 표명했다면, 주변에 사람이 많았으니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치한이 당황해서 다른 곳으로 도망치거나 혹은 경찰을 부를 수 있지 않았을까? 황급히 도망치던 나를 보며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죄책감 없는 우월감과 상대를 마음껏 유린할 수 있다는 착각이 관습적으로 약자를 물색하는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을까.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소리라도 쳤어야 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내가 소리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베란다의 치한과 눈 마주친 지인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대처할 수 있었어요? 저는 무서워서 못할 것 같은데.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원래 그래요. 그냥 따로 생각하는 건 없어요. 그 순간에 그냥 행동이 나와요.”
“그런 기질도 타고나는 건가 봐요. 선생님은 원래 그걸 타고났고, 저는 그런 기질이 없어서 꼭 배워야 할 것 같아요. 킥복싱을 배우니 그런 상황에서 전만큼 두렵진 않겠다는 믿음이 생겨요.”
“맞아요. 그게 중요해요. 모든 건 기세죠! 운동을 한다고 진짜로 자기보다 큰 남자를 때려눕히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덜 두렵게 생각해서 대항하거나 도움을 청할 수 있으면 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네요. 제가 킥복싱을 하는 이유도 그런 것 같아요. 첫날부터 이상하게 자신감이 생기는 느낌이 좋았는데 그런 기세를 기르기만 해도 목적 달성하는 거죠.”
기세. 정말 중요한 말이다. 요즘은 기세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패션도 기세, 면접도 기세, 고백도 기세. 기세는 자신감이기도 하고, 용기의 다른 말이면서 어떤 일을 해내는 동력이기도 하다. 내게 킥복싱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기세를 기르는 연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소원이 살해당하거나 사고로 죽지 않고 자연사하는 거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살면서 그 기세가 꼭 필요하다.
독서 모임을 다녀와 집 안에 있는 전신거울 앞에 섰다. 다시 스텝을 뛰어 본다. 조금씩 잡혀가는 훅 자세도 계속 연습해 본다. 처음에는 그저 우습기만 했던 진지한 표정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나는 왜 40대가 되어서도 싸움을 잘하고 싶어 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은유의 《다가오는 말들》을 읽다가 작가가 인용한 독일의 철학자 레베카 라인하르트의 말이 마음속 깊이 박혔다. 《철학하는 여자가 강하다》에서 레베카 라인하르트는 남성과 여성의 본질을 규정하려는 왜곡된 성 고정관념이 남성에게 어떤 권력을 주고 여성을 어떻게 무력화시키는지 분석하며, 자기 삶의 권력을 찾기 위해선 말하고 행동하라고 독려한다. “선뜻 용기가 안 난다고? 당신이 말과 기호로 이 세상에 참견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똑똑히 보라.”라고 일갈한다.
과거 내가 타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혹은 스스로 약자의 자리에 서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됐을 때 주춤했던 순간들이 수도 없이 떠올랐다. 상대가 나를 약자라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순간, 머뭇거리지 않고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나의 말과 기호로 그 상황에 끼어들 수 있는 기세가 필요했다. 킥복싱을 배운다고 이제 와서 내가 MMA 선수로 데뷔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할 것이다. 만족할 만한 기세가 머리끝까지 차오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