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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업지망생 Dec 22. 2023

삼시 세끼 이데올로기 1

세끼는 어떻게 먹어야 할까?

음식노동 연구를 위해 B를 인터뷰 한 이후 아이의 학교 식단표를 자주 보게 되었다.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에도 매주 보내주는 식단표를 잘 보지 않는 편이었다. 문득 새언니 집에서 현관문에 아이 어린이집 식단표를 붙여둔 것을 보고, 왜 이런 걸 냉장고도 아닌 현관문에 붙였을까 궁금해했던 일도 떠올랐다. 출근하면서 식단표를 확인했던 걸까? 무엇보다 나는 B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도 있었다. 


B는 인터뷰를 위한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이 그동안 써온 식단표를 여러 장 꺼내 보여주었다. 원래는 한 달이 지나면 바로바로 버리는 편인데 웬일인지 올해는 전부 모아두고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식단표를 매달 먼저 짜서 식사를 준비하는 이유는,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의 한 일화 때문이었다. B가 저녁 메뉴로 카레를 차려놓자, 첫째가 "어, 나 오늘 점심에 카레 먹었는데"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날부터는 어린이집 식단표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의 상태나 유통기한을 생각해서 미리 식단표를 짠 후 가급적 그대로 준비해 먹는다고 했다. 식단표를 짜고 식사 준비를 하면, 오늘 뭐 먹을지를 고민하는 시간(나에게는 고통의 시간이다.)도 줄일 수 있고 식재료도 모두 활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라 했다. 식단표에는 학교 식단표만큼 세세하게 메뉴가 나열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메인메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적혀있었다. 수요일은 특식이 나오는 날이어서 수요일 아침, 저녁은 한식 위주로 준다고 했다. 나머지 밑반찬류는 그때그때 있는 재료로 해 먹었다.


나 역시도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여러 번 있다. 저녁에 콩나물국을 끓였는데, 아이가 "어, 나 오늘 점심에 콩나물국 먹었는데" 하기도 했고, 닭죽을 끓였더니 "나 점심에 치킨 먹었는데" 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식단표를 볼 걸 그랬나 싶기도 했지만 식단표를 보는 습관이 생기지는 않았다. 나는 늘 "어~ 몸에 좋은 거니까 많이 먹어."라고 대답하거나 "아이고~ 몰랐네... 그래도 엄마가 했으니 먹어볼까."라고 말했고, 아이는 잘 먹어주었다. 그때는 식단 겹치는 것까지 어떻게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밥을 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B가 학교 식단과 가정에서의 식사(아침, 저녁) 메뉴나 식재료를 겹치지 않게 하려는 것은 자녀에게 가급적 매일매일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같은 반찬은 물론이고, 반찬이 다르다고 해도 같은 돼지고기로 반찬을 만들기보다는 소고기나 닭고기, 생선 등 다른 고기류를 가지고 음식을 하는 식이다. 


물론 이런 다양한 식단을 구성하려면 내가 가진 경제력과, 가족들의 음식 선호도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식재료의 상태(유통기한) 등을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를 포함하여, 가정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음식을 할 때 추구하는 다양함은, 음식, 식재료, 조리법, 영양소, 맛 등 식사준비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과정에서 보인다. 점심에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돼지불고기를 먹었다면, 저녁에 간장 소불고기보다는 생선구이나 닭백숙을 선택하는 식이다. 또 메인 메뉴와 밑반찬, 국의 조화도 필요하다. 배추김치를 먹을 때는 배추된장국보다는 콩나물된장국을 만들고, 돼지불고기가 메인이었다면, 그 안에 당근과 양파 등 다양한 야채가 들어갔을 것을 생각해서, 밑반찬에도 같은 재료보다는 감자볶음이나 부추무침이나 멸치조림 등을 준비하는 것이다. 또 짭조름한 양념의 반찬이 있으면 하나쯤은 새콤한 반찬이 먹고 싶은 법이다. 이런 식이면 사실 식재료를 보관하고 상하기 전에 활용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이렇게 다양하게 식재료를 활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라 영양소의 다양한 섭취를 보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끼 식사에서도 단백질, 탄수화물, 무기질과 비타민, 지방 등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아침에 꼭 단백질을 먹여야 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저녁에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때문만이 아닌 것이다. 나 역시도 아이의 아침을 간단하게 빵으로 차려줄 때에도 단백질은 꼭 먹여야 할 것 같아서 달걀프라이를 추가하고, 야채를 대신해서 사과나 바나나를 더 차려내게 된다. 


한 끼 좀 대충 먹으면 어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먼저 만났던 A의 경우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식사를 골고루 잘 챙겨주기 때문에 아침과 저녁을 잘 먹여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A는 둘째가 편식이 심했는데, 어린이집에서는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을 알고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나 역시도 식사 준비를 제대로 못 했을 때, 학교에서 잘 먹었겠지 생각하며 죄책감을 덜어버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주 오래간만에 외출할 일이 생겨 아이의 저녁을 남편에게 부탁했는데 남편이 저녁을 대충 해서 먹였을 때는 마음이 조금 언짢을 때도 있다. 이 언짢음은 사실 남편이 아이의 식사를 신경 쓰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매일 준비하는 나도 한 끼 소홀하게 챙기면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 준비하는 식사를 무신경하게 챙겨준 것이 못마땅한 데서 오는 것이다. 어쩌면 이 감정은 공정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 같다.


한 끼에도, 하루 세끼에도 메뉴, 식재료, 맛, 영양소 등이 골고루 들어가야 건강한 식사라는 믿음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엄마는 어릴 적 먹었던 것은 감자밖에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며 어쩌다 달걀 하나가 밥상 위에 올라오면 그것이 최고의 식사였다고 말씀하셨다. 아빠는 동작이 느린 탓에 8남매에게 먹을 것을 다 뺏기고 늘 배가 고팠었다며 가끔 학교에 안 가는 날이면 해녀였던 할머니가 바닷가로 데리고 가 작은 전복 하나를 몰래 챙겨주시곤 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바닷가에 쪼그리고 앉아 전복을 먹었던 게 아빠가 단백질을 맘 놓고 섭취할 수 있는 유일한 식사였다. 그런 걸 생각 보면 경제발전을 통해 먹을 것이 풍부해지고, 영양학계에서 생산해 낸 영양담론들이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이러한 믿음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먹을 것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 어렴풋이 가졌던 다양한 음식에 대한 욕구, 다양한 식재료와 맛에 대한 욕구들이 경제력을 가지게 되면서 밥상 위에 그대로 재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중등교육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했고, 배불리 먹어본 적도 없었던 엄마도 우리가 먹을 밥상을 차릴 때는 밥과 국에 고기, 야채, 해산물 등 다양한 식재료로 밥상을 차리기 위해 노력하셨던 게 기억난다. 


며칠 전, 20% 할인행사를 하는 빵집에서 식빵을 사 왔다. 요즘은 빵도 비싸서 쉽게 사 먹지 못하는데 아이가 피자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피자빵 한 개에 3천 원. 6천 원짜리 식빵을 사면 집에 있는 재료로 피자빵 10개는 족히 만들어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다음날 아침 집에 있었던 스파게티 소스, 햄, 양파, 치즈 등으로 피자빵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비록 햄이긴 하지만 단백질에, 탄수화물에, 야채도 들어갔으니 이 정도면 되었다 생각을 했다.  


그날 저녁은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국도 반찬도 모두 만들기 귀찮아서 일본식 크림스튜를 만들었다. 일본에 계시는 남편의 이모님이 보내주신 고형 크림스튜가 있었는데 카레와 다른 비주얼이어서 계속 보관만 하던 거였다. 유통기한 날짜가 다 되어가서, *튜브를 검색해 보니 카레 만드는 것과 비슷했다. 고기와 야채 등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가는데 밥과 함께 먹는 것이 아닌 거 같아서 떡을 넣어 만들었다. 아이에게는 크림떡볶이 같은 거라고 말하고 주었는데 아이가 맛있게 먹어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중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날이 수요일이었고, 학교에서 어묵우동을 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는데... 또 하필 아침에 피자빵을 주지 않았던가. 아침은 피자빵, 점심은 어묵우동, 저녁은 크림떡볶이를 가장한 크림스튜. 참 다양하게 먹었는데 하루 세끼 다 밥이 아니었다!!!! 


"뭐야. 오늘 세끼 다 밥이 아니네!"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이가 깜짝 놀라며,


"엄마! 왜 나한테 욕을 써요?"


라고 한다.


"아니 욕이 아니라, 세 끼라고 했어. 그니까 하루 세끼. 아침, 점심, 저녁에 밥을 먹잖아. 그것을 한 끼, 두 끼, 세 끼라고 해~"


"왜 밥을 새끼(세끼)라고 해요?"


"그게 세 번의 끼니라는 뜻이야. '끼니'라는 말이 있어. 아침, 점심, 저녁에 먹는 밥을 끼니라고 해"


내가 확인한 삼시 세끼 이데올로기 안에는, 단순히 다양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믿음뿐만이 아니라, 밀가루 음식은 하루에 한 끼만 먹어야 한다거나, 적어도 한 끼 이상은 밥을 먹어야 한다는 믿음이 들어있었다. 더 나아가 라면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먹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이렇게 식단을 조절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 어릴 때부터 이렇게 식습관을 잡아줘야, 아이가 평생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나는 하루 세끼를 과자로 대충 때워도 아이에게만큼은 밥을 줘야 안심이 되는, 음식과 건강에 대한 여러 가지 믿음들이다. 


아이의 놀란 가슴이 조금 가라앉았을까. 남편이 욕실에서 나오며


"그래서, 그날 내가 먹은 밥이 뭐였나 보면서, '이 새끼 봐라~'라고 말하는 거야"라고 한다.


제발, 늙어서도 내가 해주는 세끼 밥 챙겨 먹고 싶으면 말 좀 가려서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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