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할 것이 있다. 현재 나의 정신 건강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일을 시작하고 이렇게 됐으니, 굳이 표현하자면 사회초년생의 우울증 같은 걸까, 싶다. 사실 이렇게 될 걸 일본에 오기 전부터 이미 알았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결국 나의 선택이었다. 이번만큼은 조금 푸념과 같은 글이 되더라도 이해해 달라.
꽤 근사한 동네였던 도쿄의 니시아라이.
나의 선택에 대한 미련한 자존심과 창피함, 그 창피함을 상쇄할 다른 준비의 부족함, 목표했던 미래의 불확실성, '일' 자체에 대한 무기력함, 언어의 장벽은 베이스. 이 모든 게 뒤엉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입사 이후, 주변 사람들의 연락을 점점 피하게 되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일과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여 모든 에너지를 쏟느라 정신이 없고, 그러다 보니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며 쉬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쉬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이 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도쿄 우에노 공원 근처에 있는 시장.
처음에는 이 우울감의 방문이 익숙했다. 한국에서도 온갖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전전했을 때마다 초반에는 깊은 우울감에 잠겨 하루하루를 보냈다. 보통은 일에 관한 이유들─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경, '돈'을 번다는 압박감, 그냥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 때문에─, 그런 것들로 말이다. 보통은 한 달 즈음 지나면 점차 괜찮아졌다. 그래서 이번에도 한 달만 버티면 나도 생기를 찾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일을 시작하며 생긴 우울감은 서너 달이 지난 지금도 영 가시질 않고 있다.
근무 시간에도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퇴근 후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리는 날도 많았다. 어떨 때는 으앙, 하고 아이처럼 주체할 수 없는 통곡이 터져 나왔다.
분명 일터에서 버거운 일이 있었을 거다. 언어의 장벽, 그로 인해 무시 당한 일들, 상처 받은 일, 업무 내용이 버거워 전혀 따라가지 못해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던 일, 창피를 당했던 일 등. 거기에 적성이라든지 타국 생활의 외로움, 거기다 소외감까지 더해지면, 음.
얼마 전 도쿄 전역에 눈이 펑펑 내렸다.
전처럼 긍정 에너지 가득했던 나로 돌아가려 노력해보긴 했다. 최근 2주 간은 회사에서 네 번이나 상담을 받았다. 반은 의무였지만. 상사와 한 번, 직속사수와 한 번, 사내 상담 부서와 두 번. 일본에 온 후로 줄곧 외로움에 시달렸고(이것은 틀림없다), 회사 내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길 갈망해왔다. 상담을 받고 있는 동안은 회사 직원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로 마음이 녹아내린다. 상담을 마치고나면 한결 살아갈 만도 하다. 동시에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느껴져 더욱 압박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새삼 외로움이라는 감정에도 통증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외로움은 감정이 아니라 통증의 영역이라고 말한 기안84의 말에 수십 번 고개를 끄덕인다.
조용하고 깔끔한 동네 도서관 열람실. 자리를 잡는 것도 아날로그스럽다.
일본에 온 지 벌써 네 달째가 다 되어간다. 그 네 달 동안 나의 우울감이 자라나는 데 많은 것들이 영향을 주었다. 어느 것들은 해결이 되었고, 어느 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탈출할 수 있었고, 어느 것들은 새로 생겨났고, 어느 것들은 머그잔 바닥에 눌러붙은 커피 찌꺼기처럼 오래도록 은은히 남아있다.
최근 우울증 자가진단 테스트를 해보면 내 점수에 우울증이라는 답이 채점되는데. 있는 그대로 체크를 했음에도 놀랄 정도로 높은 점수가 나와서 신기할 정도다. 그놈의 일이라는 건, 사람을 한순간에 우울증 환자로 만드는 것인가?(...)
나름 알차게 사 먹은 점심.
입사 이후부터 인생에 즐거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과 회사 자체에 대한 회의감. '나를 잃어가는 듯한' 회사 생활에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내게 열정이 남아있는지, 행복을 느낀 적이 있는지 모르게 되었다. 발버둥칠수록 조여 오는 족쇄에 갇힌 느낌.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괴로움, 다음 스텝을 생각하고 준비할 물리적인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한 현재의 상황 때문일까.
지나갈 때마다 오렌지 냄새가 공기를 가득 메운다. 진짜 오렌지 주스 자판지와 컵케이크 자판기.
퇴사를 하더라도 그냥 '내가 하려고 하던 일이 아니라서', '도망치기 위해서'가 이유가 된다면 다음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분명 다른 차원의 힘듦이 있을 터다.
여전히 이 우울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말 오랜만에 이틀 연속의 휴일이 주어졌기에 그나마 에너지를 얻고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었다. 우울에 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종종 게시될지 모른다. 혹은 모든 글자를 은은히 적셔놓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