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이 글이 게시된 시점부터 3주 뒤면 나는 퇴사인(백수)이 된다. 그리고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다. 가장 궁금할 이유부터 설명하자면, 크게 두 가지라 말할 수 있겠다. 첫째는 더 이상 일본 조직에 소속된 외국인으로서 일본에 체류할 이유가 내게 남아 있지 않다고 느낀 점, 둘째는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와 도전을 위함이다.
11개월, 숫자로 보니 참 짧아 보인다. 실제로도 짧다. 정사원의 근무 기간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인턴도 요즘은 1년씩 하는 마당이니. 하지만 어째서 나는 11년처럼 느껴진 11개월이었을까(...).
환경의 커다란 변화를 경험했고, 몇백 명의 새로운 이름을 외워야 했고,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 울며 고군분투한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에 적응하는 동안, 오래 보고 지낸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들은 말들이 있다.
너 혹시 우울증 아니야?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네.
그렇다. 정신적인 상담이 절실히 필요하던 나날이 있었다.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달 동안 기분 이상이 지속되었다. 만약 일도 인간관계도 익숙해지고 적응한다고 한들 괜찮아질까, 싶었지만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다. 돌아가도 또 같은 선택을 했을 거니까!(광기)
동네 어느 구석에 있던 몬자야키 식당.
더 이상 일본 조직에 소속된 외국인으로서 일본에 체류할 이유가 내게 남아 있지 않다고 느낀 점에 대해서.
쉽게 말해 언어의 장벽 앞에 굴복해버렸다는 이야기다. 하하. 공부도 생각처럼 안 되더라! 그래도 열심히 해 보자는 마음으로 화상 일본어도 하고 N1 교재를 다시 사서 공부해 보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일본어에 이리저리 치이고 상처 받고 온 대부분의 날들은 꼴도 보기 싫어진 게 일본어였다. 근성 부족, 그리고 일본어를 체득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부족한 것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이를 버틸 만큼 지금의 회사와 일을 좋아할 수 없었다. 거기다 따로 하고 싶은 것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머무를 이유가 어디 있는가, 라는 결론에 매일 이르렀다.
언어의 장벽에 대해서.
언어를 습득한다는 건 새로이 사회화를 하는 것이고, 어쩌면 정체성을 바꿔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느낀 바로는 그렇다. 현지에서 일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한국어가 가끔 나오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사춘기 시절 만큼의 정체성 혼란을 느꼈다.
좁고 구불구불한 철로가 좋았던 가마쿠라에서.
일본에 오기 전 한 가지 규칙을 세웠었다.
해외에서 살게 되어도 모국어의 맞춤법이나, 발음이 엉성해지진 말자는 것.
그런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오기가 생겼던 걸지도 모른다.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마치 모국을 몽땅 뒤로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나의 비뚤어진 시선을 용서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다른 해외 거주자들은 그래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허나 나는 한국과 한국어를 너무 사랑했고, 그래서 그런 혼란을 느낄 때마다 모국어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져 갔으며, 결과적으로 일본어를 피하게 됨(?)에 이르렀다.
언어에 대한 과잉의식(...)으로 인해, 나는 나의 사고방식과 정체성을 일본화시키고 싶지 않다는, 어딘가 해괴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이 언어가 늘지 않는 것에 대한 합리화인지 무엇인지조차 구분되지 않았다.
외국어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정사원으로 취직해서 잘 버틸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서도 브런치에 기고하고 싶었지만 1차 도전은 결과적으로 보면 실패에 가깝다. 나 같은 사람도 잘 성장해 간다는 것을 공유해 용기가 필요한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지만 아쉽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11개월 동안 많은 벽들을 넘었다. 그것은 장담한다.
홋카이도에만 있는 햄버거 체인점 럭키 삐에로. 야무지게 먹은 햄버거 특상 세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넘은 벽들에 대해서.
나는 회사 내 120여 명의 직원 중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11개월 동안 나름대로의 생존 방법을 터득해서, 일본인 직원들도 어려워 하는 부서의 일들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부서의 일손이 부족해지면 나를 1순위로 불렀다. 심지어 내가 담당한 부서에서는 리더를 맡아 전체적인 관리도 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거의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이곳저곳 많이 불려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원이 되었다. 과거에 나를 힘들게 했던 많은 업무들이 지금은 손에 익어 무려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11개월은 나에게 짧고도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그리고, 퇴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 조직 소속으로서 있는 것'을 그만둔다고 명시한 이유는, 한국 조직의 소속원으로서는 언제든 일본에 갈 의사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일본 회사에서의 생활을 그만둔 것이지, 그 외의 일본은 벌써부터 사무치게 그리우니 말이다.
올해 개봉한 명탐정 코난 극장판의 메인 무대로 등장한 고료가쿠.
퇴사 후
올해 3월에 이미 조기 퇴사를 최종 결정했었다. 그런데도 7월까지 버틴 이유는 단연 ★상여금★이다. 이 회사는 상여금이 상당한 금액으로 책정되므로 조금만 더 버티면 퇴사 후 생활이 조금이나마 안정될 수 있었다.
아무튼 모국에 돌아가 관심 있던 분야의 공부를 하고, 그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내 공식적인 퇴사 사유기도 하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잘 하고 싶은 것도, 도전해 보고 싶은 것도 많다. 이렇게 11개월 만에 그만 두고 돌아와 버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는 건 아직 좋은 점이 훨씬 많은 것 같다.
혼자 훌쩍 다녀 온 홋카이도. 라벤더 보러 가는 길에.
다만 한 가지 경계되는 것은 내가 안락함을 찾아 돌아가려는 건 아닐까, 싶은 작은 불안이다. 언어의 자유로움 하나가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심리적 안정과 신체적 안전에 큰 영향을 준다. 언어가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은 모국인보다 정보 습득이 느리다. 어느 구석에 적혀 있는 안내 사항을 쉽게 지나치거나, 뉘앙스의 문제를 고민하다 사소한 질문하기를 포기하고 정보를 얻지 못한다거나, 그런 작은 사유 하나하나로 모든 분야에서 많은 불이익을 경험한다(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모든 스탯을 언어 습득에 투자하시오...).
일본인을 이기려면 앞으로 최소 몇 년은 더 걸리겠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고난이도의 생활을 접고 가는 모국 생활의 난이도는 현저히 낮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좋은 점들을 이용해서 우선 뱀의 머리(!)가 되자고 다짐했다.
글 하나에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에서 어려움을 느꼈는지, 어떤 방식으로 힘들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버텼는지 쓰기는 어렵지만 이 글만으로도 충분히 귀국 이유의 설명(이라 쓰고 하소연이라 읽음)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일기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