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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Feb 02. 2024

“변화에 대응하는 종교 건축”

멍때림 채플

“변화에 대응하는 종교 건축” - 멍때림 채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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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침대에서도 일한다’라는 기사를 보았다. 집과 직장의 분리가 심적으로 모호해진 오늘날, 현대인의 뇌는 특정 부위만 가동되어 과부하되기 쉽다는 내용이다.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뇌는 24시간 작동하지만 상황에 따라 활성화되는 부위가 다르기 때문에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뇌의 다른 부분을 활성화해야 한다. 2014년 처음으로 멍때리기 대회가 열린 것도, 작년 대회에서 45대 1의 높은 참가율을 기록한 것도 전부 과도한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한 것이며 멍때림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바쁜 사회라는 걸 증명한다.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 중턱에 자리한 ‘멍때림 채플‘은 성직자의 이름이나 지역명으로 건물명을 짓는 보편적 방식에서 벗어난 이름으로 시대를 반영한다. 동시에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종교 건축의 변화된 모습도 담는다.


서양의 종교 건축은 우리나라의 것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의 종교 건축물은 종교인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환영함에도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반면에 서양의 경우 사람들의 인식 속에 종교 건축물은 공공성이 짙게 깔려있어 모두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현대인 누구에게나 필요한 멍때림이 교회 이름에 붙은 건 열린 공간과 열린 태도로 종교건축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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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떨치기 위해서 건축물에는 방해되는 요소가 있어서는 안 된다. 1층은 뒤로 물러나 건물이 떠 있는 듯하며 매끈한 콘크리트 벽과 단순한 정육면체가 세속과 분리하고 잡념을 흡수한다. 내부에서도 해당 경험이 이어진다. 건물의 오른편 계단을 오르면 뒷산의 산책로와 이어진다. 산책하며 편하게 들리게 되는 예배당에는 서해가 펼쳐진다. 천장에 달린 루버가 설비 시설을 감추어 공간을 단순하게 하고 한 단 높이의 낮은 단상은 공간의 위계를 없애 사용자의 부담을 줄인다. 남서 측 벽은 초록빛을 드리우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북서 측 벽은 오르간이 설치되어 최소한의 요소로 공간의 용도를 확인시켜 준다.


나무 벤치에 새겨진 마태복음을 읽으며 자리에 앉는다. 창의 왼편에 돌출된 차양막이 건너편 건물을 가려 풍경에 집중하게 한다. 서해의 푸른 빛을 감상하고 빛의 움직임을 보며 멍때린다.


채플에는 숨은 공간이 하나 있다. 2층 예배당 창문 위의 볼록한 덩어리이자 3층의 기도실이다. 돌음계단을 올라 복도를 지나 문을 연다. 건축적 산책을 하며 들어선 공간은 길고 어둡다. 그 끝에는 십자가와 이를 비추는 빛이 전부다. 단순하지만 무게감 있는 공간, 작은 공간임에도 알찬 구성이 생각을 떨치고 침묵하게 하여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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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리며 뇌가 말랑해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베개에 기대어 글을 쓰고 있다. 현대인의 삶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러한 공간이 우리 주변에 많이 생겨서 멍때리는 횟수가 많아지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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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코마건축사사무소 ( @atelierkoma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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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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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197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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