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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리 Jan 17. 2024

사실 나는 맥북을 좋아하는 갤럭시 유저

제4장 번역가가 일하는 법

나는 서로 다른 OS 기반의 노트북 2개를 사용한다. 하나는 Mac OS 기반의 맥북에어(Macbook Air), 다른 하나는 Window OS 기반의 에이수스(ASUS) 노트북이다. 에이수스는 번역 일을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사용하던 거라 꽤 오래되었고, 맥북에어는 번역 초창기에 구입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Window 운영체제의 노트북만 썼던 터라 번역 일을 처음 했을 때도 자연스럽게 집에 있던 에이수스 노트북으로 일을 했다. 하지만 점차 화면에 띄우는 문서와 웹페이지가 많아지면서 열어놨던 파일이 강제로 닫히거나 버벅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마우스 커서조차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번역된 단어가 출력되었지만 멈춘 모니터에는 글자 하나도 제대로 입력할 수 없었다. 타이핑하다 말고 갈 곳을 잃은 손가락들이 애꿎은 키보드만 톡톡 두드리며 기다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할 수 있는 일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멈춰 버린 화면만 쳐다보는 것이었다. 밥값 하는 일이 이렇게 속 터지는 일이라니. 작업 의뢰가 많아져서 기쁨의 미소를 짓다가도, 이내 갖고 있던 노트북으로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한숨이 푹 나왔다. ‘그래 이번에도 잘해보자!’하는 패기 넘치는 마음보다 ‘이번에도 잘 버텨줘야 할 텐데’ 하며 비실거리는 노트북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특히 온라인으로 자료 조사를 해야 할 때면 이유 없이 웹페이지가 멈추거나 창이 꺼져서 작업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약하고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바라보며 ‘힘들겠지만 이번에도 잘 부탁해’라고 무언의 텔레파시를 보내던 어느 날. 문득 ‘에이수스와 이별해야 하는 때가 왔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림잡아 보니 벌써 우리가 함께한 지도 7년이 넘어가는 때였다. 투정만 할 게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만 내가 속 터질 일도, 노트북이 골골거릴 일도 없을 것이었다.


여기저기 손때 묻은 노트북 겉면을 보니 거의 매일 온갖 온라인상의 온갖 잡일(?)을 해내느라 지칠 때도 됐겠다 싶었다. 나는 그렇게 에이수스에게 휴식을 주기로 하고 조금 더 빠릿빠릿한 성능을 가진 노트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렵 새로 나온 맥북에어 M1을 구입했다.


나는 지금까지 아이폰을 써본 적이 없는 오랜 갤럭시 유저이다. 갤럭시 휴대전화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예전부터 쓰던 것이라 익숙했기에 매번 손이 갔던 것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맥북에어를 산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나를 말리기 바빴다. 예쁜 디자인에 혹해서 샀다가 기능도 제대로 못 익히고 책상에 장식용으로 뒀다는 묵직한 경험담(?)을 나눠주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M1 모델을 선택했고,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Window OS 기반 노트북에 비해 버벅거리는 증상이 덜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정하긴 싫지만) 예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실용성을 1순위로 두는 내가 ‘예쁜 디자인’을 평가 기준에 두었다는 건 상당히 놀랄 만한 점이다. 심지어 M1에서는 번역 툴인 트라도스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나는 좀 무모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새 노트북과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작업 능률을 발휘하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렇게 내 손에 오게 된 맥북에어. 포장을 뜯자마자 선명한 사과 무늬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본격적으로 노트북을 만져보면서 독특한 프로세스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Window와 다른 단축키에다가 화면 구성은 왜 또 그리 낯설던지. 맥북은 절대 사지 말라고 하던 사람들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은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맥북에어 M1을 사고 나서도 한동안은 에이수스 노트북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M1과 함께 새 시대를 맞이하고 싶었지만 너무 낯선 Mac OS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한동안 나의 새 노트북은 박물관 전시품처럼 책상 구석에 놓여 ‘바라보기에 좋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맥북에어에 적응하는 낯선 시간보다 에이수스의 버벅거림을 버티고 기다리는 게 더 낫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느려져만 가는 Window OS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참을 인을 3번, 아니 300번을 새기고 난 후 나는 다시 맥북에어 앞에 앉아 눈물을 머금고(!) 단축키 공부를 했다. 


머리를 긁적이며 맥북과 씨름한 지 며칠이 지나자, 예전보다 조금씩 손가락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드디어 별 고민 없이 알아서 척척 단축키를 누르게 되면서부터는 머리 싸매던 스트레스를 거의 느끼지 않게 되었다. 타다닥 키보드를 누르는 내 손가락이 새삼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빠릿빠릿한 성능, 많은 문서를 띄워 놓아도 딱히 버벅거리지도 않고, 발열도 없는 맥북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크기와 무게도 적당하고, 마우스 없이 부드러운 터치패드만으로 많은 기능을 쓸 수 있으니 편리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손바닥에 마우스가 닿는 감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차가운 메탈 터치패드에 손가락 끝만 휘적이는 게 조금 아쉬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가끔 너무 빠릿빠릿한 맥북이 차갑고 정 없다고 느껴질 때면 블루투스 마우스를 연결해서 쓸 때도 있다. 무소음 마우스에 손바닥을 얹으면 눈치 보지 않고도 이리저리 손 전체를 움직일 수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지금은 에이수스와의 추억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맥북에어가 익숙하다. 문서 작업을 하다가 노트북을 그냥 닫아도 다음번에 다시 열면 작업하던 문서가 그대로 보이는 것도 좋다. 물론 Window OS 기반 노트북에서도 가능하지만, 자꾸 버벅대서 그런지 미리 저장해놓지 않고 노트북을 닫으면 불안하다. 노트북을 켜고 끄는 시간과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는 점이 나의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무엇보다 한번 충전하면 오래가기 때문에 충전기 없이 노트북만 하나 들고 밖에 나가도 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무게도 적당해서 평소 가방에 노트북 하나 넣고 다녀도 별로 부담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일하고 싶을 때 노트북을 펼치면 그곳이 내 일터이다.


진정한 맥북 고수들에 비하면 나는 고작 일부 단축키, 몇 개 안 되는 기능만 쓰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맥북에어를 만난 후 예전에 비해 더 효율적으로 번역 일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맥북에어와 대부분 작업을 함께하지만, 여전히 에이수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라도스 프로그램을 써야 할 때는 항상 에이수스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화면에 있는 웹페이지는 모두 내리고 오로지 트라도스 프로그램만 켜 놓으면 느리지만 그럭저럭 일은 할 수 있다.


언젠가 맥북에서 트라도스를 쓸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에이수스와는 미련 없이 작별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미사 참여는 잘 안 해도 성당 가는 건 좋아하는 날라리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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