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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an 29. 2024

백신 접종 ; 떠난 이들, 그리고 남겨진 이들

한 사람의 목숨도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것,

방역의 주된 논리였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그 효과가 제대로 검증되지조차 않은,

'필요' 또는 '의도'에 의해 긴급 승인된 백신 접종을 국가가 사실상 강제했다.

그 결과, 적잖은 사람이 원인 모를 병환으로 고통을 받거나 심지어는 사망했다.

'한 사람'을 살린다는 명목 하에, '다른 한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을 외면했다.

백신 접종을 통한 이익이 부작용 등의 해악보다 월등히 크다는 근거였고, 이를 몇몇 전문가라는 이들이 뒷받침했다.


시간이 지났다. 그때로부터 벌써 2년.

사람들은 방역에, 코비드에 관심조차 없다.

각인된 공포만이 각자의 마음 어딘가에 남은 채, 언제고 튀어나올 준비를 할 뿐.

그러는 동안, '억울한 희생자'를 낳으면 안 된다며 방역을 합리화한 이들은 백신 피해자에 대해 그 어떤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오히려 사회적으로 인정과 대우를 받으며 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언론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살필 생각을 않은 채, 건수만 잡히면 늘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그들의 말을 받아적기 바쁘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나?

'한 생명'의 가치가 '다른 한 생명'을 대가로 지켜지면, 그걸로 됐다고,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국가가 노력했으니, 힘을 다했고 애를 썼으니 '그깟 인과관계도 불분명한 사망자/피해자'들은 외면하자고 해도 되는 것인가?


과학기술의 수혜자로서, 이를 부정할 마음, 딱히 없다.

다만,

검증되지 않은 것을 '신기술'이란 명목으로 포장해 사람들에게 강제한 이들,

과학의 이름을 빌려 인간의 삶과 사회를 통제한 이들,

과학을 빙자해 정치에 깊게 개입한 이들과,

그 '과학'을 힘입어 국가 폭력을 정당화한 세력이 언젠가, 반드시 살아서 응분의 대가를 치르길 바랄 뿐이다.


그들이 폈던 논리가,

무고한 한 사람을 살리겠다는 호소가,

실은 수많은 이들의 생활에 칼집을 냈고, 누군가의 삶을 파탄냈으며, 다른 무고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게 그 잘난 K-방역의 본질이었다.

왜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그저 국가주의와 정치병에 빠져 맹목적으로만 현상을 바라보는가?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이가 백혈병을 위시로 한 희소병에 걸려 죽고,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한 이가 난치병에 걸려 죽었을 때

기업의 논리가 이러했다.

'인과관계 불분명'.

참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단 논리는, 늘 해를 끼치는 이들이 피해자를 상대로 펴 온 전형적인 논리였음을 생각한다면,

감히 함부로 펼 수 없는 것이다.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맹목적 지지,

타인의 존재를 위협으로 간주하는 태도,

그리고 과학의 탈을 뒤집어 쓴 '의견'과 '주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오늘도 피해자와 유족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


사실 지난 방역 시기 동안,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전면으로 추동한 건 다름아닌 국민의 삶과 생명을 책임진다 국가, 그리고 학자적 식견 및 과학적 근거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정책 수립에 기여한다소위 '전문가 집단'임을 또한 잊어선 안 된다.



아직도 방역 타령이냐는 분들께선 구독을 취소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이 방역이 뭐가 문제인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않는 한, 안 그래도 미래가 불투명해진 이 나라에 더더욱 장밋빛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글의 발단은 해당 기사에 달린 한 댓글임을 굳이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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