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Y Jan 30. 2024

예의(禮儀)

예의에 관한 짧은 생각

예의는 실질적으로 외피(外皮)를 요구한다.

달리 말하면, 예의에는 '가식'이 필수라는 것.

사실 유교에서는 예(禮)를 인(仁) 곧 인간다움의 외면화라 설명하지만, 그것이 서열 사회의 하급자에게 덕목(의 이름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규칙)으로 강요된다면, 그것은 그저 상급자의 심기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상하관계의 의미로서의)'질서'가 본위인 곳에서 예(禮)의 본의가 실현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다. 서로가 인간다움을 바탕으로 각자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 어떤 관계도 아닌 '인간'이란 명목이 앞서야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 앞에 다른 수식이나 직함이 선행한다면 예는 절대로 인(仁)을 기반으로 한 개념이 아니며, 그때부터 예의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사회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권위(위계)와 힘(위력)으로 강요되는 패권적 구속(拘束)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므로 현실 세계에서 누군가를 두고 예의 있는 사람이라 평하는 것은, 실제로 그가 얼마나 예와 인(仁)을 내면화했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가식적일 수 있느냐와 쉽게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인간이 진정한 예의가 무엇인지 일생을 연구하며 관찰하지 않는 이상, 차라리 타인에게 다른 페르소나(persona, 人格)를 치밀하게 내보이는 이야말로 예의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상황에서 예의란 그저 사회적 평가나 위신을 위해 쓰는 가면일 뿐, 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공자의 시대, 그리고 공자의 사상을 살펴보면 그가 말했던 예는 근본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개념이었다. 그가 예의 회복과 함께 '질서의 재정립'을 부르짖은 이상, 서열(주의)을 기반으로 한 예는 아무리 개별자에게 도덕과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들 반드시 가식으로 전락하게 된다. 힘을 지닌 이에게 도덕이 더 매력적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결론적으로 인간 사회에 위계가 존재하는 이상, 그리고 인간 개개인의 가치보다 그의 외적 요소(사회적 위치 등)가 더 강조되는 한 저 예의란 것은 인간다움의 척도라기보단 결국 얼마나 윗사람에게 좋게 보이는가 하는, 감정에 의거한 주관적 판단에 불과하다.


진정한 예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자기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할 때 시작된다.

작가의 이전글 반성(反省)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