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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Apr 03. 2024

4.3 사건을 기억해야 할 이유

대한민국에 새겨진 최초의, 그리고 최악의 상처

4.3 사건은 해방 공간(미 군정) 시기에 시작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벌어진 최초정부 주도 집단 학살 사건이었다.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좌익 분자를 색출해낸다는 명분으로 제주에 입도한 국방경비대와, 이북 출신자가 규합해 조직한 서북청년단은 실제로 남로당 세력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사살했다. 그들에게 남로당 소속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의지와 기준은 없었다. 그저 국가가 좌익 세력을 소탕하라 하니, 그리고 그 좌익 세력이 제주도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하니 보이는 대로 잡아다 죽였을 뿐이다.


그렇게 이는 한반도에 최초로 수립된 '민주공화국'의 첫 번째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나라가 좌와 우로 찢긴 게 전적인 '조선 민족'의 의지는 아니었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남하하는 소련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그인 것이 38선이란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공산주의 세력이 위협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스탈린은 혁명 동지들과 수많은 소련 인민들을 벽오지와 사지로 내몬 뒤였다. 다만 히틀러에 그 잔혹함이 가려졌을 뿐이었다. 어쩌면 미국이 급하게 38도선을 소련에게 제시한 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또한 공포에 질려 있었고, 오로지 '공산주의'만이 뇌리에 있어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하물며 사람 목숨이랴?


그렇게 한반도 역사에 편입된 이래로 늘 유배지 취급을 받던 제주도는, 일본의 군사 기지 신세를 면한 지 겨우 몇 년 안 되어 최악의 참사이자 재앙을 겪었다.

대만을 보라. 중화민국이 대만 섬을 접수한 지 고작 2년만에 대만 민중을 대상으로 벌어진 학살인 2.28 사건(1947년)이 발생하지 않았나? 그때 입었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대만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로 남았고, 이는 이른바 대만 독립 세력이 '탈중화'를 외치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 만약 6.25에서 대한민국이 패전하여 제주가 이 나라의 유일한 실질 관할 영토로 남았다면 제주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며 살아온 이들 '제주 독립'을 외쳤을지 누가 아나?그런 일이 현실이 됐다면 이는 그야말로 재앙 중에 재앙이었을 것이다.


슬프게도 4.3 사건은 반공을 명목으로 장기간 자행된 철권 통치로 인해 그 언급조차 불가능했다가, 세월이 흘러 2000년대 중반이 되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족한 후에야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국가의 정부가 자국 관할 지역을 상대로 벌인 대규모 학살은 어떤 식으로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아무리 이 나라를 구성하는 양대 정치 세력 중 하나가 그를 '국부'로 추앙한다 한들, 제주 4.3과 6.25 당시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살해는 그가 절대 자유민주주의의 아버지이자 국부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될 확실하고 명백한 이유다. 그가 이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란 사실과, 일제강점기에 전개한 독립운동을 폄하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이 그가 대한민국의 유력자로서 국가 지도자에 준한 위치에 있었을 때 벌어진, 그리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속된 이 참혹한 사태를 덮을 수는 없으며, 덮어서도 안 된다. 적어도 그에게는 이 사태를 수습할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밝은 면만 보려는 이들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하면 당연히 어두운 면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게 되며, 아프고 또 괴로워도 반드시 직면해야 할 상처를 치유하지 않음으로써 남아 있는 밝은 면마저 어둠에 잠식되고 만다.

지난 일을 돌이키고 그 잘잘못을 따지며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일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필수다. 지금에 이르러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란 신호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는 있으나, 그렇다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과거를,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그 일환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대의명분으로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과 결과가 잘못되었다면 반드시 지적하고 복기하여 고쳐야 한다. 명분보다 중요한 건 인간이고,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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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4.3이란 비극과는 별개로, 그 참상을 만드는 데 적극 동조했던 이들이 정작 자신들만의 이상과 입맛에 따라 사회와 대중을 조직하려던 이들(공산주의 세력이라고 간단히 쓰면 되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가산과 삶의 터전, 심지어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타지에 올 수밖에 없었던 슬픈 이야기를 안고 있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바로 '서북청년단'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이들 말이다. 비극은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음과,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도 한순간임을, 증오와 분노 모든 것을 삼키게 할 수 있음을 늘 기억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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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3일 오늘,

194743일을 기억한다.



*2024.04.04. 15: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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