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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유정 Sep 24. 2023

[여행] 차갑지만 따수운 블라디보스토크의 매력

블라드보스토크 여행기

※17년도에 떠난 세계여행 스토리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4월엔 일교차가 크긴 해도 낮에는 꽤 따뜻해서 여행하기 딱 좋지만 여전히 이곳은 찬 공기로 가득하다.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은 무표정을 넘어 화가 난 듯 보였고 날이 추워서인지 어딘지 모르게 황량했다. 블라디보스톡의 첫 인상은 그러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첫날 밤
<둘째 날 일정>
로딩커피(해적커피) → 블라디보스톡역&시베리아횡단열차 구경 → 아르바트거리 → 점심 → 해양공원 및 놀이공원 → 클로버하우스 → 혁명광장 → 숙소(휴식) → 저녁(DAB Burger) →숙소

 여행 둘째 날, 아침을 깨우는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기 위해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미국에 '스타벅스'가 있다면, 러시아엔 '로딩커피'가 있다. 스타벅스의 사이렌 로고처럼 로딩커피에도 여자 해적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그런 까닭에 '해적커피'로도 불린다. 아메리카노 한 잔은 1천 원 정도로 가격이 착했다. 호로록 마시기 좋은 구수한 보리차처럼 연한 커피! 동양인인 나를 친절히 대해준 로딩커피 직원이 커피향 만큼이나 기억에 짙게 남는다. 친절한 말 한 마디에 덕분에 몸도 마음도 스르르 녹아버렸다.

블라디보스토크역&시베리아 횡단열차 기차 앞
아르바트 거리

 옅게 깔린 구름과 쌀쌀한 날씨. 아르바트 거리 중앙에 위치한 분수가 켜져 있길 내심 기대했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분수도 안나오고 해양공원과 놀이공원엔 딱히 특별한 것이 없어 뭔가 아쉬웠다. 터벅터벅 길을 걷다 해양공원 저 멀리 바닷가 근처에 연인처럼 보이는 사람 두 명이 서있는 걸 보았다. 손 왜 안잡지? 조금만 더 가까이. 조금만 더 가까이... 하는 순간 머리긴 남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해양공원의 두 남자

 해양공원서부터 놀이공원을 지나 클레버하우스까진 한 15분 정도 걸었나. 도보로 다 이동이 가능한 작은 도시라 교통비를 아낄 수 있어서 좋았다. 클레버하우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 같은 곳인데, 현지인들에겐 일상인 곳이지만 여행자들에겐 그들의 일상을 최전방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이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오히려 오전에 갔던 관광명소 보다 마트 구경이 훨씬 더 재밌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저 생맥주 기계인데 당일 뽑은 생맥주를 원하는 만큼 페트에 담아 갈 수 있다. 다양한 러시아산 제품들을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여기야말로 배고픈 여행자의 파라다이스다!

대형 마트 '클레버하우스'와 생맥주 기계
혁명광장. 비둘기가 많아서 무서웠다.

그날 저녁 숙소에서 만난 홍콩 친구와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 잘 기억은 나질 않는다. 늘 그렇듯 "혼자 왔나요? 혼자 왔어요. 밥은 먹었나요? 밥 같이 먹을래요?" 같은 레퍼토리 였겠지. 동양인 여자 둘의 동행이라... 같은 아시아인이라 그런지 괜히 더 반가운 마음. 게다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만나는 새로운 인연이라 더욱 설렜다. 'Man Hoi Ying'이라는 친군데 부르기 편하게 자신을 '문해영'이라 소개했다.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은행원이라 그런지 계산도 빠르고 더 어른 같았다. 해영인 블라디보스톸에서만 1주일 여행할 계획이라고! 여행 할 때 큰 계획이 없으면 동행의 계획을 따르는 편인데 그 친군 항상 내 의사를 물어봤다. 똑같이 별 계획이 없었나보다. 호기심도 많고 사교상도 좋은 해영. 앞으로 남은 2일은 해영이와 함께 하기로 했다.

첫 번째 친구. 홍콩에서 온 해영
<셋째 날 일정>
숙소 → 점심(평양관) → 골목투어 → 독수리전망대 → 저녁(Grace Cafe) → 숙소

여행 셋째 날. 여행 2일차까진 혼자 여행하느라 심심했는데 마침 동행할 친구가 생겨 마음이 한껏 들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독수리 전망대다. 둘 다 오늘은 느긋한 여행을 하고 싶었고 딱히 계획이 없다보니 길을 걷다 보이는 놀이터에서 어린 아이 마냥 놀기도 하고 길거리 만두도 사먹었다. 이 만두는 '판세'라고 하는 러시아 길거리 간식인데 우리나라 야채찐빵과 비슷하다. 두꺼운 만두피 안에 소고기와 양배추가 가득한데 후추향이 강하게 나 약간은 이국적이지만 거부감 없는 맛이엇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소소한 여행

전망대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올 수 있지만 우린 걸어올라갔다. (내려갈 땐 케이블카 탐...)

블라디보스토크의 하이라이트! 독수리 전망대이다. 혼자 왔으면 재미없었을 것도 같은데 해영과 함께 와서 그런지 기분이 무지 좋았다. 서로 인생사진 찍어주겠다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함께 등을 맞대거나 마주보는 등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남겼다. 바람이 세게 부는 바람에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 날아가버렸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독수리 전망대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라라랜드 st)
넷째 날 : 체크아웃 → firstcity(디저트카페) → 개선문&정교회사원&영원의 불꽃 → 기찻길 → 식량구매(클로버하우스) → 숙소 → 블라디보스톡역 → 시베리아횡단열차 탑승

블라디보스토크 마지막 날. 숙소 바로 근처에 있는 보기드문 고퀄리티 디저트 카페에서 아침부터 씨게 당 충전 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 디저트 카페 'firstcity'

개선문과 정교회사원, 영원의 불꽃을 지나 바닷가쪽으로 가면 기찻길이 있다. 운영하는지 안하는지 모르겠지만 해영은 운영하지 않는 기찻길이라고 한다. 그래 난 널 믿어볼게. 그렇게 우린 남들 시선 신경쓰지 않고 신나게 설정샷을 찍고 있었다. 저멀리 파란 옷을 입은, 파란 눈을 가진 한 남자가 흐뭇한 미소로 우릴 계속 쳐다보더니 서서히 다가오더라. 우리가 원하는 각도로 사진이 잘 안나오자 본인이 찍어주겠다고 온 것이었다. 이상한 놈인가 싶어 경계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었고 내 카메라 훔쳐가면 어떡하지 내심 걱정하며 반신반의로 마지못해 카메라를 맡겼는데, 이게 뭐람! 갑자기 기찻길에 드러눕더니 필사적으로 사진을 찍어주더라. 그의 이름은 '왕'.

'왕'이 찍어준 기찻길 베스트샷
열정 넘치는 러시아 남자 '왕'

여행하면서 사람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다.. 이해해주기를! 이것도 인연이라며 셋이 셀카도 한 장 찍고 헤어지는 길에 왕과 하이파이브 했다가 손에 불날 뻔한 기억 ^^ 그리고 그는 쿨하게 제 갈 길을 갔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일상

돌이켜 생각해보면 블라디보스토크는 확실히 (내 기준) 노잼 도시다. 유럽과 아시아가 어딘지 모르게 묘하게 섞여 이국적인 느낌이 들지만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3박4일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하며 러시아에 대한 인식은 충분히 바뀌었다. 러시아는 위험해, 사람들은 쌀쌀맞고 무서워- 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다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어떤 도시를 여행하더라도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시베리아 횡단열차 위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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