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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Aug 16. 2022

군대 같은 직장생활

2022년 8월 16일의 기록

2022.7.10 / 청도 와인터널 / sony a7r2 / sony 55mm f1.8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고 어느새 3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역시 상대적인 것이다. 하루하루를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바쁘게 살다 보니 하루 금 흘러가는데 일주일은 너무 더딘 느낌이다. 월요일에  출근해 하루 종일 긴장 속에서 일하다 보면 어느새 6시 반 퇴근시간이 되어 있다. 직원들에게 퇴근 인사를 하고 6시 47분 기차에 탑승하기 위해 부랴부랴 짐을 싼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기분전환되는 노래를 선곡한 뒤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는다. 약간의 오르막길을 지나고 나면 약 500m의 내리막길이 나온다. 마치 이 내리막길을 지나오기 위해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산 것만 같다.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는 자전거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되니 좋다.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약간은 후덥지근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싸면 송골 맺힌 땀들이 빠르게 증발해버린다. 노래 세곡이 끝날 때 즈음해서 기차 출발시간 3분 전, 기차역에 도착한다. 자전거를 접은 뒤 기차에 실을 준비를 마치면 진정한 퇴근 준비 끝. 드디어 퇴근 기차에 지쳐버린 몸을 싣는다. 렇게 하루는 마무리된다. 내일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오늘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힌다. 8시간 동안 가지고 있던 긴장감을 그제야 약간은 내려놓게 된다.




퇴근은 응당 직장인에게 즐거움과 해방감을 선물해 주지만 요즘의 나는 아주 약간의 즐거움만 느낄 뿐, 해방감을 느낄 수 없다. 특히 월요일 저녁 퇴근시간 그렇게 괴로울 수 없다. '아직 4일이나 회사를 더 가야 한다니. 내일은 또 어떻게 하루를 버티나'라는 걱정을 달고 퇴근을 하니 그럴 수밖에. 마치 매일매일 군대에 재입대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남은 4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렵고, 또 어떤 불합리한 요구에 응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인사발령으로 부서 이동만 했을 뿐인데 새로운 직장을 구한 것만 같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나의 주장과 의견이 관철되는 곳에서 근무를 하다 한 순간의 인사발령으로 나의 의견이 묵살되고 그저 지시대로 따라야 하는 곳에서 근무를 해야만 하는 이 상황이 처음엔 믿기질 않았다. 나름 8년 동안 근무하며 쌓아 놓은 업무 관련 데이터베이스들이 모두 사라진 것만 같은 기분이다. 8년이란 세월을 부정당한 느낌. 부당한 지시가 내려오거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겪을 때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팀장님들에게 넋두리를 하곤 한다. 이렇게 나의 상황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은 듯한 느낌이다.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안쓰러움과 따듯한 음성에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서 치유한다.

 

누군가는 '직장인 8년 차에 자기주장도 못하고 부당한 지시에 맞서지도 못하느냐. 그렇게 끌려가듯 업무 하는 것은 본인의 탓도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의견 또한 맞는 말이다. 내가 좀 더 직설적이고 용감하고 의사표현을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을 조금은 나를 이해해 줄 수도 있겠다. 부당한 지시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난무하지만 나 혼자 나서서 그것을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실제로 인사발령이 있었던 그날, 부당한 일들에 내 목소리를 높였지만 돌아오는 건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라는 일차원적인 업무지시였고 일주일 동안의 부서 내 공포 분위기만 감돌았다.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바뀌는 것 하나 없이 나의 스트레스만 더 커지는 것을 경험한 나로서는 다시 한번 내 목소리를 내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8년의 직장생활에서 내가 모든 이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업무를 열심히 했다는 보상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진상들을 상대하는 수고비를 버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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